본문 바로가기

생활

영화 어 디퍼런트 맨 줄거리 후기

 

어 디퍼런트 맨
A Different Man

감독: 에런 심버그
각본: 에런 심버그
출연: 서배스천 스탠, 레나테 레인스베, 애덤 피어슨
장르:  드라마, 블랙 코미

임상시험 치료로 외모가 완전히 달라진 남자.
새로운 얼굴과 그로 인해 달라진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신경섬유종증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어 디퍼런트 맨'을 봤다.

영화의 줄거리는 얼굴이 다소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에드워드의 삶을 다룬다.

 

 

영화의 포스터나 스틸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에드워드의 얼굴은 많이 다르다.

그리고 영화의 대사에도 있었던 '차별적 언행을 삼가려는' 노력을 무시하면 그는 얼굴은 보기에 좋지는 않다.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차별적 언행대로 써볼려고 했지만 난 그런 건 못해...)

 

그러나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연기도 하고,

이웃이 다정하게 대해주고,

외모로 인해 위축되어 있는 듯 하나 치료도 받고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불안감으로 엄습하는 것은 그의 집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일 뿐.

 

외려 그의 얼굴에 대해서는

봐, 알고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보니 아무렇지 않잖아.

익숙해지면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과 같잖아.

단순 노출 효과처럼.

같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에드워드의 모습으로 벌어질 수 있는 삶만 비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후반부로 가면 그는 임상실험을 받고 치료되어 평범한 얼굴이 된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내용을 전혀 모르고 봐서

그가 다른 얼굴로 괴로워하면서 고어하게 변할 때

정말 죽은 거 아니야?

그 뒤의 내용은 그의 이전 모습으로 반전 아닐까

싶었는데 당연히 그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치료로 변한 에드워드는

저 치료됐어요 하고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이름도 숨긴다.

에드워드는 죽었다면서.

그래서 이름도 가이 모라츠로 바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우연히 에드워드일 때 알던 이웃이 연출하는 연극에서 배역을 맡게 된다.

 

그 이웃은 잉그리드로 에드워드와 알던 때의 일을 각본으로 써서 연극 무대에 올리는 중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에드워드가 잉그리드에게 주었던 타자기도 중요한 사물로서 등장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옛날 타자기를 좋아해서인지 마음에 들었던 그들의 대화.

 

 

"타자기 돌려받고 싶죠?"

"그런 고물은 내다 버려요."

"그걸 왜 버려요?

다른 건 몰라도 작가 흉내는 낼 수 있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작가 흉내는 낼 수 있어요.

타자기가 날 조롱해요."

"영감을 주죠."

 

 

그렇다. 사용할 수 없을지라도 타자기는 존재만으로도 매력있다.

Typewriter는 그런 사물이다. :)

 

 

하지만 잉그리드는 모습과 이름조차 바뀐 에드워드가 에드워드인지 알 리가 없고

후에 우연히 등장한 오즈월드에게 매력을 느끼고

가이 모리츠(에드워드)는 그로 인해 다른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며 영화는 끝난다.

 

 

 

따라서 어 디퍼런트 맨의 결말을 보면 자연스럽게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에드워드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던 오즈월드는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자신의 겉모습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겉모습이 내면의 자아나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자신의 겉모습에 너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보거나

외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차별을 넘어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볼 만하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있다.

 

 

"생김새가 다른 동료를 계속 접하다 보면요.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파충류 뇌가 관장하는 투쟁 도피 반응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이에 따라 만약 에드워드 처럼 외모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타인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파충류 뇌가 하는 일이니 그 사람들에게도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는

역설적으로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편견이고 차별일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예의있고 정중하고 친절한 사람들은

차마 차별적 언행을 삼가려는 노력을 걷어차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파충류 뇌를 가졌음에도 파충류는 아니기에.

 

그렇다고 해도 뒤에 에드워드가 드러냈던 분노처럼 그 은연 중 느껴지는 무례함에 화는 날 것 같다.

그조차 정말 그 사람들이 악의로 잘못해서인지, 자신의 오해에서 비롯된 마음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개성있는 얼굴로 여겨져서인지,

영화가 시각적으로 잘 구현해서인지, 현실에서는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런 얼굴, 아무렇지도 않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많이 괴로울 것 같으므로

함부로 말하는 것은 파충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아무튼 영화가 에드워드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삶에는 외모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

그렇게 느껴진 영화로 좋았다.

그래서 잉그리드의 말은 의미하는 바가 있다.

 

"난 에드워드를 피해자로 만들었어.

그 사람은 그냥... 에드워드야."

 

게다가 이야기로 봤을 때도 에드워드의 변화는 뻔하지 않고 영리하게 진행됐으므로

직접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완치해서 새얼굴이 됐으면 그에 맞는 삶을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에드워드는 여전히 에드워드라서.

역시 겉모습과 내면은 같을 수 없고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