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예술 토머슨, 아카세가와 겐페이
안그라픽스
이 책은 간단히 보면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있었는데 없는,
지금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찾아주길 바라는
일본 건축물의 일부분.
예를 하나 보자.

도대체 이 계단은 어떤 목적으로 여기 있지?
보통 이런 계단이 있는 곳에는 올라간 곳에 입구가 있고 문이 있어 그 문을 통과해 건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는 올라간 곳에 문이 없다. 대신 창문이 있다. 설마 창문까지 올라가라고 일부러 계단을 만든 걸까?
이런 비경제적인 것은 자본주의가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모두 도움이 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계단은 무엇인가? 창문 안을 엿보러 가는 일 외에는 아무 용도가 없는 이것을 계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계단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은 계단의 형태를 한 예술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초예술이지 않을까?
작가의 발견과 안내를 따라 계단을 살펴보면
정말 이 계단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왜 없애지 않은 거지? 무슨 용도가 있는 걸까?
궁금증을 넘어 신비롭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 책에는 이러한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계단, 차양, 문, 굴뚝, 전신주, 우체통, 손잡이 등등.
게다가 이 모두는 스스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힘을 합쳐 찾아냈다.
초예술 토머슨은 전시 이력까지 있는 어엿한 예술작품(?)이다.
책에서 볼 수 있었던 토머슨 중에서는 굴뚝이 압도적이었다.

"이 사진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이무라 군이 다른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으응?"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구멍 저편에 집들이 보였다. 분명 오래된 집들이었다. 빌딩 사이로 잠기는 동네 같았다.
저편의 빌딩이 위협해 왔다. 잘 보니 모리빌딩 21이라고 쓰여 있다.
분명 아자부 다니마치였다. 사진 속 구멍 앞쪽에 인간의 다리 같은 게 보였다. 청바지를 입었다.
이 사진을 찍은 인간의 다리인 듯한데 다리가 굴뚝 위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작가와 함께 초예술 토머슨을 찾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에 더해 책의 글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아름다움까지 놓치지 않는다.

따라서 건축물에 관심이 많다면 조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초예술 토머슨'이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종종 사진가가 건축과 사물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촬영한 작품은 많이 볼 수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초예술 토머슨 역시 신비롭고 기이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니 이것이 예술이 아니면 무엇일까.

format_quote 아름답다. 그저 사진이 아름다운 걸까?
그런데 사물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뭔가 대단한 물건이다. 직감이다.
하지만 무엇이 대단할까?
생각은 나중에 따라오기 마련이라지만, 정말 뭘까? format_quote
물론 현실적으로 재미없게 말하면
미처 철거가 안 된 건축물의 일부분일 수 있다.
혹은 책에서 말했듯이
'부동산에 부착되어 아름답게 보존된 무용의 장물'일 수도 있다.
또는 방치되고 버려진 것에 사람이 의미를 부여해
예술이라고 우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토머슨은 개인적인 작품이 아니다.
이것은 집단적이며 많은 이들의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직감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많은 이들이 토머슨의 매력에 빠져 현재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게다가 방치되고 버려진 듯한 도시 공간의 모든 부분이초예술 토머슨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글 없이 한장씩 넘겨볼 수 있는 사진집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렇게 봤다면 훨씬 직관적으로 이 사진들의 아름다움이 확연히 느껴졌을 것 같다.


아무튼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들이 좋아할 책으로 보이며
미술 작품으로 보면 초현실주의, 설치미술의 느낌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초예술 토머슨'이었다.
그런데 왜 토머슨이냐면, 이는 게리 토머슨 선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당시 야구 선수로 활약했던 그의 성적이 부진했음에도 팀에 계속 남아있던 모습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은 문인데 열 수 없고 지나갈 수 없는 문.
계단인데 올라도 의미가 없는 계단.
완성되지 않은 작품.
혹은 미완의 자신.
남겨진 것.
format_quote 건물의 영혼이랄까, 공간의 영혼이다.
공간도 살아 있어 인간의 의해 생존한다.
인간이 숨을 불어넣은 공간이라도 해도 좋겠다.
그러니 살아 있던 공간이 죽는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공간의 영혼도 그 장소에게 발생되기를 기다린다.format_quote
그렇게 미완성도, 남아있는 것도, 거둬지지 않은 것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미처 발견되지 못해 우두커니 있더라도.
꼭 건축과 공간 예술이 아니더라도 그런 생명력으로 다가오는 것도 같다.

그러고 보니—
아아, 굉장하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까지 뻗쳐 의미가 생기는 것은 괜찮은 걸까.
이것을 정말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걸까.
그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 과한 해석은 아닐까.
그렇지만 원래 예술의 아리송함은 다 그런 데서 오는 것이니까,
토머슨도 괜찮아(혼자 고개를 끄덕끄덕🙂↕️).
그런데 읽을 때만 해도 건축물에 관한 내용이라 별 생각 없었는데 적고보니 사진집으로 보고 싶다(정신차려).
어쨌거나 건축과 예술에 관한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