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

 

어쩌다 넷플릭스에서 사슴뿔을 한 남자의 썸네일에 끌려 베이비 레인디어란 작품을 봤다.

대단한 수작이었고 본지는 며칠 지났다.

그런데 뭔가 생활하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거나 이 드라마를 떠올리면 어디선가 도니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영화에 줄곧 등장했던 내레이션 탓이었을까.

왜 그랬을까.

 

 

베이비 레인디어 대강의 줄거리는 '스토킹 당하는 남자'.

그게 다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심플하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심플하지만 결코 심플하지 않은, 베이비 레인디어의 시작은 이러하다.

 

도니 : 난 그 여자가 불쌍했다. 그게 처음 든 감정이다.

처음 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건 거만하고 오만한 감정이지만 난 그랬다, 그 여자가 불쌍했다.

 

그리고 도니는 그 여자에게 차를 내어주고 드라마의 짧은 7부작 사이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결말은 왜 이 남자가 베이비 레인디어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마사의 목소리로 끝난다.

 

마사 : 어릴 때 작은 솜 인형이 있었어. 우린 어디든 함께였지.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크리스마스 때였던 것 같아.

오래된 사진인데 내가 종이 왕관을 쓰고 앉아 있고 내 옆엔 아기 순록이 있지.

아무튼, 이 순록은 아주 포근하고 푹신했어. 큰 입과 커다란 눈 작고 귀여운 엉덩이. 지금도 갖고 있어.

내 어린 시절에 좋았던 건 그거 하나였어.

부모님이 싸울 때면 난 그걸 꼭 끌어안았지. 진짜 많이 싸웠거든.

글쎄, 넌 그 순록을 쏙 빼닮았어. 코도 똑같고 눈도 똑같아. 작고 귀여운 엉덩이도.

그건 내게 정말 큰 의미야. 넌 나한테 정말 소중해.

 

"그 여자가 불쌍했다.", "넌 그 순록을 쏙 빼닮았어."

그런 말들만 보면 스토킹 하는 사람을 측은하게 여겨서는 안 되지만 마사가 측은하다.

그러나 베이비 레인디어는 극에서 도니 역을 연기했던 리처드 개드가 직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마사는 스토커가 맞다.

그러므로 실제 스토킹을 당하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사를 연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마사의 스토킹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드라마가 수작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겉으로는 스토커를 말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영화의 주는 도니의 자기 고백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이야기는 처음 봤다.

정말, 처음 봤다.

특히 4화의 약물과 성향은 어쩌면 자연적인 게 아닌 다른 이유로 접하고 변하기도 하는 걸까 싶었으니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면도 있었다. 

 

정말 그 와중에 도니의 재능을 추켜세운 사람들.

만약 도니가 관심받는 코미디언이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가 원래 그 성향이나 재능이 있었던 것은 맞았던 걸까.

 

 

 

정말 스토킹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던 이야기.

오히려 그건 친절과 결핍에 가까워보인다. 그래서 친절과 결핍이 만났을 때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결국 그 결핍, 공허, 관심 등의 인간 내면의 심리를 다면적으로 다룬 게 아주 뛰어난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어떤 면에서는 영국 코미디의 알 수 없는 농담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그런 걸 다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드라마가 너무 좋았다.

캐릭터도 입체적인 데다 영상의 색감도, 연출도, 배우들 연기도 뛰어나다.

 

 

그래서 시청이 끝난 후에도 드문드문 도니의 음성이 떠오를 정도였던 것을 보면 어딘가에 그런 인물이 주변에 있을 것 같이 느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어떤 날에는 재능에 관해 뭔가 생각하다 마치 그 인물이 내 주변에 살아있는 사람 마냥 떠오른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점에서는 문학적으로 다가온 드라마이기도 했다.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영화나 드라마는 흔치 않은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이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리처드 개리가 연출한 동시에 각본까지 쓰고 연기한 것을 보면 극에서 그 재능은 분명했나 보다.

 

 

아무튼 광장한 흡입력과 여운을 남긴 베이비 레인디어.

정작 사슴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왜 그가 베이비 레인디어인 줄 알 것 같이 친절하고 좋은 사람처럼 보였던 도니.

왜 그랬는지 끝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측은했던 마사.

그렇다고 해도 실제의 리처드 개드에게 마사란 인물이 어떤 의미로 다가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스토킹 당하고 있거나 관심과 주목이 필요한데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결핍이 있으면 너무 공감하며 볼 수 있을 드라마로서도 추천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728x90
그리드형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의 여왕 자작나무  (0) 2024.12.02
왜 자연은 초록색일까  (0) 2024.12.01
책 읽는 속도와 분량  (0) 2024.11.28
평균 기상시간 취침시간  (0) 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