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해 알려진 것들

728x90
728x170

Vincent van Gogh (1889)

 

 

1. 반 고흐는 자살했다

대부분 반 고흐의 자살은 진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데 대중적으로 반 고흐 자살에 대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있었다.

Loving Vincent (lovingvincentmovie.tumblr.com)


러빙 빈센트 (2017)는 빈센트 죽음 1년 후 아르망이 빈센트가 살았던 장소로 찾아가 미스터리한 죽음을 추적해나가는 영화다. 이 영화는 사람이 연기한 영화가 아닌 빈센트 작품에 근거해 회화적으로 만들어져 빈센트 반 고흐을 이해하기에 대표적으로 유명한 영화라 볼 수 있다.

 

Wheatfield with Crows (1890)


러빙 빈센트에서는 빈센트의 죽음을 타살로 본다.
고흐의 타살은 그 이전에도 1994년 출판된 'Van Gogh: The Life' 에서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저자들은 반 고흐가 테오와 나눈 편지와 여러 연구자들과 함께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글을 썼는데 고흐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불량한 소년 둘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았다고 기술했다. 반 고흐는 총상을 입었지만 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자살로 가장하기로 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말이다.
러빙 빈센트에서도 죽음의 이유를 그와 유사하게 다룬다.
고흐는 정말 자살한 것일까, 타살한 것일까.
또 다른 타살의 근거로는 권총으로 왼쪽 가슴을 쏘기 어렵고 고흐 손에 탄약 흔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총상 이후 그의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고흐의 자살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고흐는 1년 전에도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자살을 시도했던 것을 이야기했고, 인생의 마지막 몇 달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또한 살인자로 알려진 르네 세크레탕((René Secrétan)은 총격 전에 오베르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진실로 반 고흐가 그러한 빈곤과 마음의 병으로 자살을 했든, 자신을 권총으로 쏜 소년을 심성으로 감싸주고 자살로 받아들였든, 어차피 현대의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화가는 지금 여기에 없다.
자살로든, 타살로든 생전에 알려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2. 반 고흐는 고갱과의 다툼 후 귀를 잘랐다.

얼굴을 붕대로 감싼 반 고흐의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1889)이 있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고갱과의 다툼 후 그린 것으로 보인다.

 

The Painter of Sunflowers by Paul Gauguin (1888)


1887년 고흐는 파리의 한 화랑에서 폴 고갱(Paul Gauguin)을 만난다. 고흐는 고갱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고 고갱은 고흐의 동생인 미술 화상인 테오에게 관심이 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자 그 둘은 서로 작품을 교환했고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기 원했던 고흐가 아를로 이사한 뒤 폴 고갱을 초대해 함께 작업했다.

 

Self Portrait by Paul Gauguin (1893)


하지만 그들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1888년 12월 고갱과의 논쟁 중 고흐는 면도칼로 귀를 잘랐다. 그건 귓불의 일부였다.
고갱과 연관해 고흐가 귀를 잘랐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둘이 친밀한 사이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고흐와 고갱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남짓으로 오래되지는 않은 관계였다. 당시 고흐는 정신과 관련한 병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귓불을 자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At Eternity's Gate (2018)


고갱과 고흐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흐의 영화인 고흐, 영원의 문에서 At Eternity's Gate (2018)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At Eternity's Gate (2018)

 

고갱은 현실적으로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고흐 영원의 문이라는 영화에서 고갱의 모습도 자신만만한 사람으로 비쳐진다. 그의 작품은 고흐에 비해 매력적으로 와 닿진 않는 편인 것 같은데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한편 폴 고갱을 그린 작품으로 달과 6펜스라는 소설도 널리 알려져 있다.

 

 

3. 반 고흐는 테오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화가 또는 예술가라고 하면 막연히 가난한 이미지만 떠올릴 것만 같지만 예전에도 모든 화가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후원자에게 후원을 받으며 작품을 그리고 생전 작품 판매로 부유하게 생을 보낸 화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 화가로 유명하지도 않았고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아를의 붉은 포도밭)만 팔았다. 그것도 죽기 7개월 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The Red Vineyard (1888)


선교사를 희망하다 화가가 되기로 한 고흐는 20대 후반에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지금 유명해진 작품은 대부분 죽기 전 2년 동안 그려졌다. 그의 작품 수는 총 드로잉과 스케치를 포함해 약 2000개의 이상으로 그 중 860점은 유화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려질 수 있었던 걸까.
고흐가 죽은 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전시회를 열며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테오, 에밀 베르나르,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어였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살아생전 고흐는 재정적 지원을 한 미술 화상인 동생 테오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 편지의 양은 650개 이상이다.
그의 편지들은 국내에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The Letters of Vincent Van Gogh 라는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고흐의 끊임없는 작품에 관한 고뇌와 빈곤으로 인한 괴로움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역시 고흐가 뼛속 깊이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라 사후 작품만큼 왜 화가 또한 사랑받는지 알 수 있는 것만 같다.

 

만약 가슴 안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는 걸"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 보아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

If you hear a voice within you say 'you cannot paint',

then by all means paint and that voice will be silenced


편지의 출간은 고흐가 죽은 뒤 테오도 일찍 죽었기 때문에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 봉어가 있기에 가능했다. 귓불을 자르고 자살한 화가라는 점도 고흐 사후 전시회에서 에밀 베르나르로 인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렇게 반 고흐는 사후 주변인들이 연 전시회와 작품, 자살, 귀를 자른 일들이 더해져 점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5.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반 고흐의 대표작으로는 감자 먹는 사람들, 밤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이 있다.

 

The Potato Eaters (1885)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Cafe Terrace at Night (1888)

 

카페는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으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카페를 통해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Sunflowers (1888)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에 너도 놀라지 않겠지.
캔버스 세 개를 동시에 작업중이다.
고갱과 함께 우리들의 작업실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거든.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말이다. 
네 가게 옆에 있는 레스토랑이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는 걸 너도 알겠지. 
나는 그곳 창문에 있던 커다란 해바라기를 늘 기억하고 있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The Starry Night (1889)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어간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Almond blossom (1890)
Wheat Field with Cypresses (1889)

 

사이프러스나무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을 가졌다. 
그리고 그 푸름에는 그 무엇도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태양이 내리쬐는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검은 점, 
그런데 이것이 바로 가장 흥미로운 검은 색조들 중 하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해 내기란 참 어렵구나.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First Steps (after Millet) (1890)
The Sower (1888)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을 온통 파헤친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빛을 띤 황토색이고.
하늘색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크기는 정사각형의 25호 캔버스.
노란색에 보라색을 섞어서 중성적인 톤으로 칠한 대지에는 노란 물감으로 붓질을 많이 했네.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

나는 인물이 아카데미식으로 정확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밭갈이 하는 농부의 사진을 찍는다면, 
사진 속의 농부는 더 이상 밭을 갈고 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나라면 "밭갈이 하는 농부에게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농부는 농부다워야 하고, 밭을 가는 사람은 밭을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고 말하겠다. 
그럴 때 그 그림은 진정으로 현대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사실 이런 말은 아무리 장황한 설명을 덧붙여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Bedroom in Arles (1888)

 

실제로 똑같이 그리고 색칠하는 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설령 현실을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색이나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이 가능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것"이라고 말해 주어라.

나에겐 그림밖에 없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신성림 옮김, 예담 출판 (2005)

 

 

6.  반 고흐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 네덜란드 준데르트 태생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1890년 37살에 사망.

 

고흐는 자신의 많은 그림 수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지만 총 35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그건 허영심 때문이 아닌, 그는 언제나 빈곤했고, 돈이 없었고,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에 그림의 연구 대상으로 자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흐는 생전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품과 편지와 자화상과 또는 자신의 죽음에 관련한 이야기 등 많은 것을 남기고 죽었다. 그탓에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면 다른 화가에 비해 더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게 화가에 대한 연민이든, 작품이 주는 감동이든, 또는 떠밀리듯 동조하게 되는 명성 탓이든.

어쨌든 지금의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다.

가끔은 화가의 배경 없이 무명으로 작품을 접했을 때 어떻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지만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화가로 남아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날에든 연민으로, 어떤 날에는 찬탄으로 보게 되는 복잡다단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예술가지만 작품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만약 고흐가 살아있었다면 무엇을 바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는 작품을 남기고 죽은 화가니까 말이다.

그리드형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이비드 호크니는 왜 유명할까  (0) 2022.02.27
그림의 역할  (0) 2022.02.25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0) 2022.01.12
바두르 오스카르손  (0) 202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