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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림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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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에서 그림에 관해 이렇게 저술한 적이 있다.

 

The Luster Bowl with Green Peas by William Nicholson

 


그 그림을 소유하여 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두고 싶다는 마음 뒤에는

그 그림과 계속 접하여 그 특질들이 우리를 더 확실하게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밤에 자러 갈 때 마지막으로 층계에서 지나친다든가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지나치면,

그 그림은 우리 성격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요소들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자석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의 내면적 분위기의 수호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음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중 하나인 아스파라거스이다. 이 또한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책에서 거론한 적이 있다.

 

Bunch of Asparagus by Edouard Manet

 


연인과 예술가는 똑같은 인간적 약점에 부딪힌다. 쉽게 지루해지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알고 나면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보편적 경향이 그것이다. 따분해져버린 것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되살리는 능력은 위대한 예술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간과하기 쉬운,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19세기 평범한 프랑스인에게 아스파라거스는 식재료나 내다팔 작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1880년 에두아르 마네가 아스파라거스 몇 줄기를 섬세하게 묘사하자, 세계는 이 먹을 수 있는 다년생 개화식물의 조용한 매력에 이목을 집중했다. 붓놀림은 더없이 섬세했지만 마네는 이 채소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그는 미술을 이용해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무시하던 매력을 드러냈다. 우리가 그저 보잘것없는 줄기를 볼 때, 마네는 각 줄기의 미묘한 개체성, 특유한 빛깔과 색조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렇게 그는 이 소박한 채소를 구원했고, 오늘날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아스파라거스가 담긴 접시에서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삶의 한 이상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겹겹이 쌓인 습관과 타성 밑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을 보면 정말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나 타인의 견해는 견해일 뿐이고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그것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말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게다가 정물이나 풍경을 그린 그림은 다소 현란한 그림들에 비해 심심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러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로 치자.
그런데 조르조 모란디가 한 말 중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

 

 

 


전 세계를 여행한다 해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할 수 있다.

세상의 이치를 반드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많이 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성실하게 보는 것이다.


One can travel this world and see nothing. 

To achieve understanding it is necessary not to see many things, 

but to look hard at what you do see.

 


비교적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조로조 모란디(Giorgio Morandi)는 정물화를 주로 그리던 이탈리아 화가였다. 그의 정물화에서 주로 보이는 사물은  컵, 주전자, 상자, 꽃병 등인데 그의 정물화에는 제목이 없다. 단지 Still Life(정물화)일 뿐이다.

 


모란디는 평생 이탈리아 볼로냐에 머무르며 조용히 작업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를 두고 은둔의 화가라도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물화도 조용하고 말이 없다. 물론 어떤 화가의 작품이더라도 작품이 직접적으로 관람자에 말을 거는 일은 없다. 그런데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더더욱 그 사물들은 조용하고 말이 없다.

"나를 보세요"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단지 그 곳에 존재할 뿐이다.

1890년 태생의 조르조 모란디는 1964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지금 동시대의 화가가 그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즉, 모던하다. 그 어떤 정물화만큼 화려하지도 않다. 투박한 아스파라거스보다 투명한 병은 화려할 수도 있는데 그 어떤 채소, 자연보다도 소박하다. 그래서인지 정말 알랭 드 보통과 조르조 모란디의 말을 곱씹으며 자주 바라보게 된다.

 

눈이 편안한 그림이라는 것은 이런 그림을 두고 뜻하는 걸까.
그래서 풍경화와 정물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그런지 이해할 것 같다.
조르조 모란디의 작품을 넌지시 바라보다보면 그 사실조차 이해하게 된다.

 


한데 정녕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의 역할은 무엇이고 예술가인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걸까.

또는 사진의 아스파라거스와 그림의 아스파라거스는 무엇이 다른 걸까.

 

Giorgio Morandi's studio


만약 그림을 좋아해서 집에 걸어두고 있다면 언뜻언뜻 작품에 시선이 갈 것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아울러 이내 내 방의 사물들도 말을 거는 듯하다.
새삼스레 알랭 드 보통과 조르조 모란디 같은 이들로 인해 다시 세상을, 사물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예술가와 작가의 역할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이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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