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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사이드웨이 출판

 

 

간단히 말하면 공무원이 쓴 공무원에 관한 책이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0년을 일하다가 스스로 그만둔 전직 서기관 노한동이 쓴 책이다.
그는 공직사회에서 오랫동안 몸담은 내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으로 정부와 관료 조직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그 조직 구성원들이 사적 이익과 생존을 위해 방패막이로 두른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심층적으로 비판한다. 

 

이미 책 제목과 소개 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무원을 그만 둔 저자가 공직사회를 비판하고 문제점을 꼬집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체로 공무원에 관한 인식이 좋지 못하듯이 역시가 역시...로 읽히기도 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책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면 읽을 일도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문제없는 조직이 없고,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되어있는 체계는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공무원도 있을 것이므로 저자가 말한 바가 공무원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공무원의 사명감은 둘째 치더라도 그들의 일은 본질 자체가 다르다.

 

"사회생활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가 새롭거나 놀랍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의 큰 조직은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든 무능과 무기력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누군가는 외려 나를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먹고살기 위해 이 정도의 병폐는 애써 외면하며 살아가는데, 혼자 너무 유난인 것 아니냐고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개인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관료의 행태를 단순히 개인의 '먹고사니즘' 수준의 문제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무능과 무기력은 구체적인 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고 그 여파는 관료제 내부를 넘어 국민의 일상, 즉 당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자신이 하는 일이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지하며 일하는 공무원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건 일의 범위나 영향력, 직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일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저 공무원 자신도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며 행정적으로만 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자신의 일이 사적보다는 공적인 일에 가깝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나 한지.

 

행정적.

그러나 그 단어에서부터 이미 무력함이 느껴진다.

따라서 그 행정적인 체계부터 잘못되어 보이는데 그걸 또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

 

게다가 공무원은 시험을 통해 그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니 냉소적으로 말하면 시험공부만 하고 뽑힌 사람들이 어떻게 유연한 사고와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다. 그저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이 그렇듯이 차례대로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온 이들에 아주 많이 가까울 텐데.

 

 

나는 행정고시 3차 면접시험이 공직사회가 원하는 무난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특화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관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걸러야 한다는 명목 아래 10명 중 1명을 떨어뜨리는 방식은, 결국 상급자의 지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따르는 성향의 사람을 뽑는 과정일 것이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체계를 자처하면서도 대다수의 관료가 자신이 출세를 위해 영리하게 움직이며, 정작 본질적인 일은 그만큼 치열하게 외면하는 기형적인 세계가 바로 공직사회다.

 

관료는 '정책 대상'의 입장이나 처지, 감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감하다.

반면 관료는 자신이 조직 내부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대해선 대단히 예민하다.

 

'무엇을 얼마나 잘 했느냐'를 묻지 않는 평가 시스템은 새로운 생각과 창의적인 정책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유인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그저 연공서열에 따라 제공되는 보직 경로에 따라 '존버'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짚었지만 그런 이유로 자신의 출세와 안위만 중요하게 여기며 그 안에서만 영민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 한국사회의 유교적인 제도와 보수적인 문화에 적응이 빠른 사람들이라.

 

그럼에도 불고하고 책에서는 그다지 공무원을 이해할 수 있거나 새로운 사실로 여겨져 그래서 이랬구나! 같은 부분은 없었다.

대신 보고서와 예산, 특히 저자가 문체부에서 일했던 탓에 '우리 사회는 책의 비문을 쓰고 있다' 같은 내용은 좋았다.

 


 

정부 보고서는 가독성에 목숨을 건 문서다.

그러나 세상엔 1장짜리 보고서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해결 방안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독서율 하락에 대한 대책을 보고서로 쓴다고 가정하자.

일단 독서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OTT 등 영상매체의 약진? SNS의 범람? 장시간의 근로나 공부로 인한 시간의 부족? 어릴 적 독서 습관의 부재? 장시간의 근로나 공부로 인한 시간의 부족? 어릴 적 독서 습관의 부재? 혹은 경제적 어려움?

하나하나 독서율 하락의 원인으로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그러나 한 장의 보고서에 그 모든 걸 맥락 없이 담을 수는 없다.

 

결국 보고서는 이를 독서 환경의 미비,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 독서 습관의 부족 등으로 적당하게 '포섭'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독서율 하락의 진짜 이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결 방안으로 사용할 그럴듯한 정치 수단이 있는지를 먼저 고민하고 그에 맞춰 원인을 정리하는 식이다.

 

정부의 보고서는 항상 이런 방식으로 작성된다.

보고서 작성의 목적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깔끔한 문서 작성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는 여전히 '핵심만 간결하게'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의 상황을 왜곡하거나 단순화한 보고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공직사회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곳이지, 보고서 예쁘게 쓰기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곳이 아니다.

현실에 가닿지 않는 보고서는 그 자체로는 쓸모없는 아래아한글 문서에 불과하다.

 

 

나는 대표에게 한류가 저토록 난리인데, 우리 책만은 해외에서 이토록 안 팔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물었다.

대표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솔직히 가져다 팔 게 많이 없어요. 다들 자기가 쓰고 싶은 것만 쓰잖아요."

출판사와 작가 모두 해외의 독자가 어떤 책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자신들이 내고 싶은 책만 내고 있으면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로 수출 전략의 부재를 가린다는 뜻이었다.

 

사실, 현재 출판 업계는 수출이 문제가 아니다. 내수시장에서 책의 수요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 실패조사'에 따르면, 2023년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43%이다.

성인 10명 중 6명은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성인 독서량과 도서 구입량은 더욱 처참하다.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2013년 10.2권에서 2003년 3.9권으로, 성인의 연간 도서 구입량은 2017년 4.8권에서 2023년 2.4권으로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책에 대한 수요의 감소는 출판 업계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연 1조 원을 넉넉히 넘어간다.

그런데도 왜 책의 위기는 심화되기만 할까? 혹시 위기의 원인을 사회와 정부가 잘못 분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위기의 핵심 원인이 출판산업의 수요 측면이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수출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출판사와 작가들이 해외 독자들이 원하는 책을 좀처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내수시장에서도 이들은 독자가 원하고 관심 있는 책을 제때에 충분히 내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날이 갈수록 정책 집행의 외주가 늘어나는 건, 관련된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잡다한 일과 민원을 줄이고, 컨설팅 업체 등은 '정책의 집행을 운영, 관리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여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잘만 포장하면 민간을 활용하여 전문성 있게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회와 언론 등에 전달할 수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국회나 예산 당국에서 지원 사업의 성공 사례를 물으면 답변이 궁색할 정도로 성과도 좋지 못하다.

성과가 좋지 않은 사업은 마땅히 구조조정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지원 사업은 거꾸로다.

업계가 어렵다는 막연한 논리와 지원의 양만 늘리면 성과도 좋아진다는 안일한 믿음을 기반으로 지원 사업의 예산 규모는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상황이 그러하니, 영리하게 예산을 감축하는 방법을 알아도 관료는 절대 행동하지 않는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숨기는 것이 자신과 조직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다.

 

결국 관료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말은 그저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예산의 진정한 목적은 관료의 생존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그런데 이쯤되면 국가와 정부는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는 사회 전반적으로 돈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깔려있기 때문에 국정에서도 예산만 지원해 주면 뭐든 자연스럽게 잘 될 거라고 믿는 듯한 풍조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있으니 소위 말해 나랏돈은 먼저 빼 먹는 자가 임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 탓에 국가 전반적으로 비리와 부퍠가 완연하고, 일부는 그 행위에 가담하면서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로 퉁친다.

 

하지만 부조리나 도덕적 해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순응하고 적응하면 이제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걸까.

 

아니 어쩔 때는 개인에게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런 일에는 무감각하고 정부가 뭘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나라를 만든 데는 모두의 책임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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