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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 생존법

 

현대 사회 생존법,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스피어인 출판

How to Survive the Modern World

 

 

알랭 드 보통과 인생학교가 저술한 '현대 사회 생존법'은 현대 사회를 정의하고 그 문제점을 짚어보며 앞으로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현대사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을 냉철하게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또는 인생학교의 철학이 늘 그렇듯 포용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냉소적인데 실용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내용은 소비자본주의, 광고, 물질주의, 매체, 가족, 사랑, 외로움, 일, 개인주의, 조용한 삶, 교육, 과학과 종교, 자연 등등의 다양한 챕터로 나눠 살피기 전에 간략히 몇 가지 현대사회를 정의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세속화 : 신은 죽었고 현대가 그를 살해했다.

진보 : 현대적인 마음가짐이란 우리가 예전의 것을 계속해서 능가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자연 : 우리는 자메이카에서 공수한 석류와 사하라사막 남쪽의 대초원에서 가져온 대추를 먹는다.

도시 : 시골 마을의 비좁은 삶이라면 충분히 겪었다.

외로움 : 우리는 저 멀리 은행 본사와 보험사가 보이는 초고층 아파트에서 잠들며, 만약 자신이 죽으면 누가 알아차리기는 할지 궁금해한다.

과학 : 우리는 신을 방정식으로 대체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짧게 추린 것이므로 그렇게 단편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서술은 개인적으로는 읽어봤던 책과 비견했을 때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이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도 냉소적이며 회의적인데 실용적인 책처럼 느껴졌나 보다.

 

어쨌거나 책의 내용은 이 현대시대를 살면서 누구나 다 알고 느끼고 있지만 입 밖으로 굳이 꺼내지 않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대강 주관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대를 그 이전에 알려져 있던 다른 모든 시대와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면서도 누가 봐도 하찮은 활동인 쇼핑이다.

 

15세기 영국의 유품 목록을 보면 해진 옷과 의자, 나이프 말고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촛대 정도는 되어야 진정으로 부유하다는 표시였다.

 

 

소비혁명의 역설적인 점이라면, 이 혁명의 여파로 겉보기에 '작은' 것들이 진정으로 중요해졌다는 사실이다.

셔츠, 칼라, 샴푸, 수세미, 마가린 같은 소소한 제품들이 양으로나 범위로나 전례 없는 부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한때는 나라를 정복하거나 왕의 칙령을 통해 강제로 빼앗아야만 모을 수 있었던 규모의 돈을 이제는 초콜릿 바와 헤어크림을 솜씨 좋게 판매함으로써 평화롭게 축적할 수 있었다.

 

고상한 이상이야 참 좋긴 하지만, 국가의 부와 힘을 떠받치는 것은 쇼핑몰과 홈쇼핑 카탈로그다.

 

정부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시 수업을 듣든, 권총을 사든, 샐러드를 사든, 아이스크림 도넛을 사든, 심리 치료를 받든, 스포츠카를 사든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총 소비액이 증기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심오한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가 무엇에 돈을 쓰는가는 중요하다.

수십억 소비자의 선택이 모여 사회의 성격과 삶의 유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대형 광고판, 그리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상업 문화는 성가시게 칭얼거리는 아이를 닮은 구석이 있다.

광고 메시지가 들리지 않았을까 봐 무척 불안해하고, 메시지가 어떻게 비칠지 상상하는 능력도 부족해서 같은 말도 투명스럽게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현대 광고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늘 긍정적인 메시지만 전달하려고 하고, 슬프거나 우울한 느낌을 주는 광고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제 거의 모든 광고는 고차원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암시를 깔고서 물질적인 것을 팔아치운다.

겉보기에는 가방이나 신발, 호텔 숙박권, 주류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정신적 제품들, 즉 사랑과 의미, 관계와 평온, 이해와 자유에 대한 욕구를 성취할 수 있다는 비밀스러운 약속인 것이다.

 

 

우리가 즐기며 살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노동의 비참함보다 현대의 소비 문화에 더 큰 원인이 있다.

 

현대 사회의 문제는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라는 데 있다고들 말한다.

즉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물건 구입에 흥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 지적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볼 수는 없지만, 우리가 무척이나 물질주의적이긴 하다.

그건 우리가 물건을 많이 사서가 아니라 뭘 사든 그 물건에는 우리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으리라는 커다란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탐욕스럽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구매를 한다.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복잡다단한 정신적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은 우리 시대의 안타까운 특징이다.

우리는 물건이 우리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까다롭고 난해한 부분들을 바꿔주길 바란다.

비누 한 개가 걱정에 마침표를 찍어주길, 가방 한 개가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 도움을 주길, 손목시계 한 개가 경계심 많은 아이와의 관계에 놓인 장애물을 치워주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는 백화점이나 주방 설계 사무소, 부동산 중개소, 워터파크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쾌락의 신경 중추를 다시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존재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고, 가슴이 아플 정도로 자신의 직관 앞에서 자주 머뭇거린다.

결국 인생 대부분을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어림짐작의 그물에 갇혀 살아간다.

부적절한 소비는 이보다 훨씬 크게 우리를 좌지우지한다.

번성을 가로막고 진정한 정신적 양식의 원천에서 멀어지게 하는 형태의 지출에 휩쓸리는 한, 상업적 유혹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물건이나 직함이 아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물질적 수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주목받는' 느낌과 '인기 있는' 느낌이다.

 

 

현대 세계는 짝을 찾는 것이 의무일 뿐 아니라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정기적으로 파티에서 만나 즐기는 것이 필수적인 듯 여기게 했다. 신문은 다른 이들의 사교 활동에 관한 기사로 넘쳐난다.

 

외로움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우리 문화가 홀로라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부추길 때 생겨난다.

 

중요한 것은 새로우며 새로운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이 전제는 대부분 거짓일 공산이 크다.

방금 일어난 일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전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외출하거나 완벽한 연인을 찾으라는 격려를 더 많이 받는다고 외로움을 덜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신 사회가 고독의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과 여전히 이루고 싶어 죽을 지경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

광고는 우리더러 욕망을 바꾸라고 간청하고, 뉴스는 우리를 분노와 혼란에 빠뜨리며, 동료와 지인에 대한 소식은 경쟁심에 불을 붙인다.

 

 

새로운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미 겪은 일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미 신나는 일을 차고 넘치게 겪었을 것이다.

충분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충분히 많은 장소를 다녔으며, 물건도 충분히 샀을 것이다.

우리는 현대 세계의 힘이 우리를 진정한 고향으로부터 계속 떼어놓고 있는 상황을 멈춰야 한다.

중심이 같은 건 없으며, 우리가 초대받지 못한 파티 같은 것도 없다.

그저 지금 여기,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 어딘가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나름의 편견과 견해를 갖고 있지만, 본인의 생존 투쟁에 전념하느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 머릿속에 있는 우리의 일대기 전체를 다시 쓴다 한들, 그들은 잠깐 놀랐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넘어갈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저 현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불안한 시민일 뿐이다.

 

우리는 사랑을 타인의 완벽함에 대한 경외심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은 상대의 결점과 부족한 면을 인내하고 자비롭게 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서 추구하는 바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결점을 적절한 때에 통찰력 있게 짚어줌으로써 우리가 그에 적응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적당히 괜찮은 부모, 노동자, 배우자, 친구, 인간은 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무튼 평소 좋아하는 작가라 다시금 오랜만에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대개 알랭 드 보통의 저서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논조를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간략함'이라는 면에서는 내가 읽어봤던 알랭 드 보통의 책들 중에서는 몇 권의 좋았던 책 안에 손꼽힐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접해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는 탐욕스럽다 말하지 않고 "우리는 탐욕스럽기보다는 희망을 품고 구매를 한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어리석다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정말 많이 알면서도 참으로 적게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생존에는 냉소가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유하며 포용적인 태도로 바라봐주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존의 도구보다 심리의 도구로서.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아주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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