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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레이먼드 챈들러

북스피어 출판

Chandler Style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작가, 편집자, 독자들에게 쓴 편지를 엮은 책이다.

 

챈들러는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 추리소설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해서 그 이름만 아는 정도고, 추리 탐정 소설은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 접점이 없다.

그럼에도 읽은 것은 글에 관한 내용 때문이고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시리즈의 다른 책을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어서 다시금 읽었다.

 

대신 책에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옮긴이가 챈들러에 대해 잘 설명해 준 글이 있다.

 

format_quote 레이먼드 챈들러는 1940~1950년대에 활동했던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가다.

그는 자신이 거주했던 로스앤젤레스를 바탕으로 필립 말로라는 탐정을 내세워, 일견 냉철하지만 기실 감상적인 시선으로, 부패와 탐욕이 들끓던 시대에 욕망과 절망이 공존했던 사람들을 독특한 문체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렇다 한들 내가 왜 그 옛날 사람을 알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에는 보다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기로 하자.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찍이 "챈들러는 나의 영웅"이라 말했으며, 최근까지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도스토옙스키와 챈들러를 한 권에 담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저서에서 챈들러를 읽으며 문체를 공부했다고 언급했다. 그 외 폴 오스터, 마이클 코널리, 하라 료 등 수많은 작가들과 마틴 스콜세지, 코언 형제 등 유명 감독들이 챈들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정유정 작가는 문체나 문장에서 챈들러를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고, 정이현 작가는 "가장 내 타입인 탐정은 필립 말로"라고 했으며, 류승완 감독은 평소 챈들러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챈들러는 자신이 쓴 글이 십 년, 십오 년 뒤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만족시킬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름과 글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유명하다고 해서 유명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에 직접 읽어봐야 알 것 같다.

물론 챈들러의 작품으로 그 글을 접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편지로라도.

 

그리고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좋았다.

예컨대 이러했던 글들.

 


 

 

나는 유명 학교의 공개강좌를 제외한, 일반적인 창작 교육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이미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없는 건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겁니다.

분석하고 모방해 봐요. 다른 교육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해요.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걸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겁니다.

 

'녹이 슬었다'고 하면, 즉시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요.

하지만 "녹이 여드름처럼 돋아 있다"고 하면 독자의 관심은 묘사된 사물에서 떠나 작가의 허세로 확 쏠려 버려요. 이런 점이 바로 스타일의 오용을 드러내는 아주 극명한 예죠.

어떤 작가들은 일종의 타고난 동물적 감성 따위가 결핍된 부분을 메꾸려고 강박적으로 별난 문장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죠. 문학적으로 거세되어서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하고자 애매한 전문용어에 의지하죠.

 

내 이론은 독자들이 행동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본인들도 깨닫지 못하지만, 사실 행동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자들과 나의 관심사는 대화와 묘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감정입니다.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각인되는 건 이를테면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죽음이 닥친 순간, 그는 매끄러운 책상 위에 놓인 클립을 집으려고 책상 위를 긁고 있었고, 클립이 자꾸만 미끄러져서 불만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으며, 그의 입은 고통스럽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반쯤 벌어져 있었고,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이 죽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할까요? 돈? 그렇죠. 하지만 지극히 소극적인 의미지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돈이 생긴다고 해서(한 재산 생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 년에 몇 천 파운드 정도), 돈만 세고 앉아서 흐뭇해하지만은 않으니까요.

우리가 얻는 모든 것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동기를 사그라뜨립니다.

나는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은가?

나는 노벨 문학상을 타고 싶은가?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스타일과 특성을 감지하지 않고는 대중적 취향을 알 수가 없지요.

 

내가 좌절하게 되는 건, 내가 거칠고 빠르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글을 쓰면 사람들은 거칠고 빠르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고 욕하고, 그래서 다음엔 좀 순화해서, 상황을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더 전개해 보려고 하면, 처음에 욕하던 그것들을 안 쓴다고 욕을 한다는 겁니다.

독자들은 챈들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원하지요. 전에 그렇게 썼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썼던 건, 그렇게 쓰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얘기를 듣기 전이었죠.

 

스타일에 집착한다고 해서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요.

아무리 많이 편집을 하고 퇴고를 해도, 한 인간이 글을 쓰는 방식이 지닌 그 특색에 뚜렷한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 겁니다.

글의 특색이란 작가의 감정과 통찰의 본질에 따른 산물이죠.

 

예술은 노력하고, 엄밀한 기준을 두고, 세부 내용을 비판하고, 플로베르의 방식으로 생산할 수는 없어요.

작품은 아주 자유롭게, 거의 무심한 태도로, 그리고 자의식 없이 생산되는 겁니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상투적인 기교를 많이 익혔다 한들, 작가에게 지금 도움이 되는 것은 열정과 겸손함뿐입니다.

 


 

그리고 흔히 범죄를 다룬 이야기를 잔혹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챈들러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format_quote 내 책들이 범죄 환경에 대한 고찰이냐고요? 아닙니다.

그저 평균적인 수준으로 타락한 존재를 멜로드라마적인 관점으로 아주 강조해서 그릴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인간이란 원래 선과 악을 다 가지고 있으니 범죄와 살인이 난무하는 탐정 추리 소설이라는 것도 다른 면에서는 인간을 깊게 조망한 것에 그친 것일 수 있다.

멜로드라마처럼, 아주 애정 어리지만 잔혹하게.

그저 인간을 다룬 방식이 다를 뿐.

단지 취향상 내가 그런 장르의 작품을 자주 접하며 읽어내지 못할 뿐.

 

어쨌든 책에서 엿볼 수 있었던 레이먼드 챈들러의 편지 글들은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챈들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이나 인생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은 작가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거만하거나 독설로 보이지도 않았다.

 

format_quote 나는 하드보일드 작가로 간주되긴 하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하드보일드는 그저 생각을 형상화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죠.

나 개인은 예민하고 소심하기까지 합니다. 때로는 극히 신랄하고 호전적이고, 또 어떤 때는 굉장히 감성적이죠.

쉽게 질리는 편이라 사교적인 사람은 못 되고요. 그리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평균적인 것들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아요.

나는 정기적으로 일하지 않는 간헐적 노동자로, 다시 말해 내킬 때만 글을 씁니다.

전체적으로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을까 봐 걱정스럽지만, 불행히도 사실이죠. 맞는 말이고.

나란 사람은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다소 거만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거만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챈들러 방식'이라 쓴 글의 출처인 편지글을 만나볼 수도 있으니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폴더를 뒤져봤더니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서 쓴 글인 듯하다.

 

챈들러는 그 편지글에서 "매일 무얼 하며 지내냐고요?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안 쓰죠. 대개 아침이나 이른 오후 무렵에 글을 씁니다"라고 말했고, 하루키는 "두 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꼼짝 말고 있어라. 그러다 보면 뭐가 돼도 될 테니까'라고 썼다.

하지만 챈들러의 이런 작업 방식이라면 하루키도 영향받았을 수 있었을 것 같기는 한데 어떤 면에서 스타일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건지 감은 안 온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탐정, 추리 소설의 면모는 대체로 느낄 수 없는 편이니까.

 

 

여하튼 챈들러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빌리면,

 

format_quote 나는 이런 얘기를 할 만큼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까요.

그저 그의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지요.

 

이므로 챈들러의 글이나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글이 궁금하면 읽어보면 권한다.

 

무엇보다 '그런 얘기를 할 만큼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라는 태도는

때로 규정해야 할 때를 모르고 물러서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전반적인 모든 창작의 표현과 수용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결국 '나'와 '너'가 아는 '그 사람'은 다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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