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아제의 비어있는 사진

728x90

 

사람이 너무 많이 붐비는 곳에 가면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말 사람이 없는 장소를 목격하는 일은 좀 다른 일 같다.

 

출처 : Google Arts & Culture

 

아제의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풍경.

어떻게 보면 스산하기도 하다.

 

 

현대 사진가의 사진에도 이런 풍경 사진은 많다.

하지만 왜 유독 아제의 사진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빛바랜 과거의 장소이기 때문일까.

혹은 파리이기 때문일까.

 

 

흔히 그의 사진에 사람이 없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이야기되고는 한다.

원래 아제가 기록물 위주의 사진을 찍은 사진가였다는 것과 수줍음이 많은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에만 사진을 찍었다는 설.

 

처음에 아제를 알았을 때는 그의 사진 못지않게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어서 사람이 없을 때만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 아제는 프랑스 파리의 건축물과 거리 사진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진작가다. 더구나 아제가 처음에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화가 및 예술가를 위한 자료로서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예술가를 위한 배경자료로 쓰일 사진을 찍는 것이라면 사람이 없는 시간에 사진을 찍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그것은 요즘에 비추어봐도 주로 찍거나 판매하는 사진이 건축, 건물, 풍경 등이라면 사람이 없는 시간에 찍거나 사람이 없는 찰나에 촬영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아제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이 없어 그의 정적여 보이는 사진만큼 작가의 성격도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그가 찍은 사진에 더해져 묘하고 신비로운 성격을 불어넣는 듯하다.

 

 

아제의 사진에는 지금은 볼 수 없는 파리가 담겨있다.

그것을 팔기 위해 찍은 기록 사진으로 보든, 작가의 시선이 담긴 예술사진으로 보든 대부분의 아제의 사진에는 사람도 없고, 건물만, 거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발터 벤야민은 아제의 작품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포트르 아르꿰이유의 성채는 텅 비어 있다.
호사스런 계단도 텅 비어 있다.
정원도, 카페의 테라스도 비어 있다.
테르트르 광장도, 마치 그것이 가장 어울리는 풍경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어 있다.
도시 전체가 마치 새 주인을 맞아들이지 못한 집처럼 온통 비어있다.

 

The Porte d’Arcueil fortifications are empty, as are the regal steps, the courts, the terrace cafes, and as is appropriate, the Place du Tertre, all empty. They are not lonely but voiceless; the city in these pictures is swept clean like a house which has not yet found its new tenant.

 

 

텅 비어 있는 사진.

사람이 없는 사진.

 

어쩌면 진실은 사람이 없는 시간에 촬영했으므로 그런 것이겠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은 아주 먼 훗날 마치 사람이 지구에서 모두 없어진 흔적 같기도 하고, 곧 아침이 오면 사람이 들이닥칠 장소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내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반성어린 마음으로 다시 하게 된다.

 

지구에, 건물에, 장소에, 공간에, 또는 유원지에 사람이 너무 없어도 안 되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도 이상하고 의아한 일이었다.

그러나 텅 빈 것을 바라보며 다시 가득 찬 것을 바라고 떠올리다니 사람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출처 : 으젠느 앗제, 열화당 출판 (1986)

 

이른 새벽 거리를 봐도 종종 아제가 생각날 때가 있다.

새벽에 일어나 카메라를 매고 사진을 찍으며 거리를 서성일 사진가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지금 살아있었다면 어떤 빛의 사진을 보여줬을까.

 

Eugene Atget by Berenice Abbott (1927)

 

우리에게 으젠느 앗제 라는 이름으로도 친숙한 1857년 2월 12일 프랑스 태생의 외젠 아제(Eugène Atget)는 19세기 말 - 20세기 활동 당시는 평범한 기록 사진가로 평가받았지만 사후에 사진 작품 가치를 인정받아 사진 역사에 중요한 예술가로 재조명되었다.

아제의 작품에는 그가 살았을 당시의 파리의 모든 건축물과 거리 풍경이 많이 담겨있다.

1890년대의 그 시작은 예술가를 위한 기록으로서의 사진 촬영이었지만 이후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공공기관으로부터 일을 의뢰받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제의 사진에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 도시 계획 이전의 모습도 많이 담겨있어 기록물로서의 가치도 있다.

 

 

아제의 사진 대부분은 도시 풍경이지만 전혀 사람을 촬영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뒷골목의 하층민, 노동자들의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Eclipse (1912)

 

아제의 작품은 만 레이가 그의 출판물인 초현실주의 혁명(la Révolution surréaliste)에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만 레이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돕던 베레니스 애벗에게 아제의 사진을 소개했고, 1927년 아제의 사후 이후 애벗은 아제의 스튜디오에 남아 있던 사진을 사들였다.

 

아제의 초상사진으로도 많이 알려진 두 장의 사진은 베레니스 애벗이 찍은 사진이기도 하다.

애벗은 다양한 기사, 전시회, 책을 통해 아제를 소개하고 1968년 현대 미술관에 자신이 사들인 아제의 소장품을 파는 등 그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제의 작품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아제는 자신을 초현실주의 작가는 아니라고 여겼다.

실제로 아제는 만 레이가 초현실주의 혁명의 표지로 자신의 사진을 사용하고자 했을 시 당시 시진에 자신의 이름을 넣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초현실주의 운동에 연관되어 보이는 것을 아제가 우려했다는 의견도 있으며, 단순히 자신을 기록사진가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하루하루 찍어 쌓아 올린 사진들에 자부심이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든 그가 남긴 사진은 수천장도 넘는다.

당연히 지금은 볼 수 없는 파리의 이 기록물과 사진들에 어떤 가치와 의미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사진은 비어있지만 작가 그 자신은 비어있지 않다.

이런 사진을 두고 어떻게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드형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의 변화  (0) 2022.10.06
오필리아와 샬롯의 여인  (0) 2022.10.01
마크 로스코와 눈물  (0) 2022.04.17
존 싱어 사전트  (0) 20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