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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오필리아와 샬롯의 여인

Ophelia, John Everett Millais (1851)

 

강에 여자가 떠올라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 중 널리 알려지기도 한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 애가 화관을 나뭇가지에 걸려고 버드나무에 올라갔는데 그만 가지가 꺾이면서 물속에 빠지고 말았단다.

옷자락이 물에 퍼지면서 그 애는 인어처럼 물에 뜬 채 옛 찬송가를 불렀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침내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기더니,

가엾은 그 아이는 진흙 바닥에 휘말려 죽고 말았어."

햄릿 4막 7장

 

햄릿에서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에 의해 전해지는 오필리아의 죽음은 오필리아가 물에 미끄러져 익사한 것으로 그려진다. 한편 오필리아의 아버지가 연인인 햄릿에게 살해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햄릿에서 오필리아는 플로니어스의 딸이자 레어티즈의 동생으로 천진난만하며 순진한 동시에 아빠와 오빠를 따르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

오필리아가 햄릿에서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오필리아는 여러 예술 작품에서 그려졌다.

 

 

꽃을 꺾다 물에 빠진 오필리아는 수면 위 꽃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꽃의 상징은 이렇다.

 

장미 : 아름다움

제비꽃 : 젊은 죽음

데이지 : 순수

팬지 : 헛된 사랑

쐐기풀 : 고통

양귀비 : 죽음

물망초 : 나를 잊지 말아요

 

밀레이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순수함, 아름다움, 헛된 사랑, 죽음 등을 상징하는 다양한 꽃을 이용해 섬세하게 그렸다.

 

Elizabeth Siddal / Hogsmill River (commons.wikimedia.org)

 

그림에 등장하는 모델은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아내이기도 했던 엘리자베스 시달이다.

밀레이는 시달을 물이 든 욕조에 포즈를 취하게 해 그림을 그렸는데 시달은 물에 잠겨 포즈를 취하다 폐렴에 걸리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영국의 호그스밀 강이다.

 

pre-raphaelite brotherhood paintings (Google Arts Culture)

 

그렇다면 밀레이는 왜 오필리아를 그렸을까?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 1829~1896)는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화가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역사적이고 이상화된 미술을 비판하며 1848년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등 영국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화파다.

라파엘 전파 화가는 르네상스 이전의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소재와 정신적인 면을 선호하며 종교, 문학, 시, 사랑과 죽음을 다루는 그림을 그려왔으며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 역시 햄릿이라는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물에 떠있는 화관의 꽃들은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오필리아에 화관에 관해 설명한 내용과 일치하며 마치 벌어진 입은 거투르드가 왕비가 말했듯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필리아는 곧 맞이하게 될 자신의 죽음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조차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일까?

 

 

모르고 보기에는 그저 한 여자가 강에 떠 있으며 그녀를 둘러싼 자연과 꽃들이 아름답게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면 라파엘 전파의 그림답게 여성을 그린 이와 유사한 아름다운 그림들도 함께 떠오른다.

그중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샬롯의 여인이 그렇다.

 

The Lady of Shalott, John William Waterhouse (1888)

 

오필리아가 강에 떠있다면 이 여인은 배를 타고 있다.

이 여자는 어디로 가는 걸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샬롯의 여인은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마치 황홀경에 빠진 어떤 예지자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재앙을 보는 것처럼

그녀는 희미하게 펼쳐진 넓은 수면 저편의 카멜롯을 바라보았다.

날이 저물자 그녀는 사슬을 풀고 누웠다. 넓은 강물은 그녀를 멀리 실어갔다.

샬롯의 여인을..."

 

작품 속 인물인 여인은 탑에 갇혀 바깥 세상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거울로만 세상을 보고 본 것을 태피스트리로 엮어야 했는데 어느 날 거울을 통해 카멜롯을 보게 된다. 그 순간 거울이 깨지면서 저주를 받게 되고 사랑에 빠진 그녀는 카멜롯을 보기 위해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테니슨의 시는 아더왕 전설의 랜슬롯과 일레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더왕의 전설에서 일레인은 랜슬롯에게 청혼을 거절 당하고 식음을 전폐하다 죽게 된다. 임종 전 일레인은 자신을 배워 태워 카멜롯에게 보내달라고 하는데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일레인(샬롯의 여인) 또한 배에 탄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아더왕의 전설과 테니슨의 시에서 모두 배에 타 죽은 채로 카멜롯에게 도착하게 된다.

 

"이게 누구야? 이게 뭐지?

가까이의 불빛 찬란한 궁전에서 왕실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사라지고

카멜롯의 모든 기사들은 공포에 떨며 성호를 그었다.

하지만 랜슬롯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하기를,

아름다운 얼굴이구나. 자비로운 하느님 은총을 내려주소서.

샬롯의 여인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해 죽을 줄을 알면서도 떠나는 항해라니.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품 속 여인을 다시 보면 배에 걸린 쇠사슬을 푸는 손은 결연해 보이는 동시에 표정은 두려운 듯 공허하고 처연해 슬퍼보이까지 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 1849~1917) 역시 라파엘 전파와 유사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그가 그린 샬롯의 여인 또한 문학을 주제로 그려진 동시에 그 여성이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워터하우스 또한 오필리아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오필리아도, 샬롯의 여인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걸까.

 

 

어쨌든 낭만적으로 보면 오필리아도, 샬롯의 여인도 사랑으로 인해 죽었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은 강에 빠져서, 한 사람은 강에 몸을 띄워서.

어떤 면에서는 죽을 줄 알고서도 그 사람을 다시 보기 위해 항해를 시작한 샬롯의 여인이 용감해보이기는 하나 이토록 천진난만한 비극이라니... 사랑 때문에 죽다니...

어쩌면 그런 이유로 비극적인 동시에 아름답고 순수하게 다가와 사랑받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현실에서도, 문학에서도 보기 힘든 사랑이므로.

 

Google Arts Culture (Street View)

 

마치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공유하는 듯이 오필리아와 샬롯의 여인은 영국 테이트 브리튼에 나란히 걸려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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