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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과학 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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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과학 허세, 궤도

동아시아 출판

 

 

과학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가 쓴 과학에 관한 책이다.

 

과학 유튜브 〈안될과학〉 채널의 구독자 수 50만 명 달성을 기념하며, 3년여 만에 본문의 내용 및 표현을 보완하고 새롭게 서문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과학에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책의 내용이 쉬워보여서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대중적인 과학서로 보면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과학 책이라 좋았다.

 

빛, 블랙홀, 암호화폐, 우주쓰레기, 지구 멸망 등 다양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양자역학에 관한 것이었다.

 


중요한 건 물질들의 상태는 이미 위치와 속도처럼 처음에 정해진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양자역학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게 고전역학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와 속도를 알면 모든 것을 깔끔하게 다 알 수 있다. 누군가 내게 갑자기 주먹을 날려도 주먹의 위치와 속도를 미리 알면 고전역학에서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라면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이 맞을 확률만 기다려야 한다. 심지어 그 주먹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던 뒷사람을 때릴 확률도 있다. 아주 짧은 시간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양자역학이다. 이러니 과학자들이 이걸 좋게 볼 이유가 없다.

 

 

당시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헷갈렸다.

영국의 한 물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하나 기획하는데 바로 이중 슬릿 실험이라는 것이다. 벽 앞쪽에 2개의 얇은 틈을 통과시켰을 때 빛이 입자라면 2개의 틈을 지나 틈의 모양대로 벽에 두 줄을 그릴 것이고, 파동이라면 틈을 빠져나와서도 파도처럼 물결치며 서로 만나기 때문에 벽에 여러 줄의 무늬를 만들 거라는 논리였다.

빛은 두 줄이 아닌 여러 줄의 무늬를 벽에 그렸다. 빛이 파동이라는 증거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빛은 그렇다 치고 다음 타자는 전자였다. 전자는 매우 작기는 하지만 축구공처럼 1개, 2개 셀 수 있고 질량도 있는 분명한 입자다. 이건 2개의 틈을 지나도 당연히 벽에 두 줄을 그릴 뿐 누구도 다른 모양이 생길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자가 모두의 기대를 깨고 틈 뒤쪽 벽에 여러 줄의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비상식적이고 과학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보지 않으면 파동이었다가 누가 보면 입자로 변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봐라. 달이 있지? 그런데 아무도 달을 보지 않았으면 달은 없는 거고 누군가 최초로 달을 봤기 때문에 달이 있는 건가?

 

 

이건 본다는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보는 게 뭘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본다는 과정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빛이다.

만약 암실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바로 우리에게 정보를 가져다주는 빛, 광자가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본다는 건 특정한 물체에 부딪혀서 튀어나온 광자가 우리 망막에 맺히는 현상이다. 광자가 보유한 정보를 우리가 읽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광자를 그 무언가에 던지는 셈이다.

 

과학계에 유명한 동물이 두 마리 있다. 바로 파블로프의 개와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 안에 들어가 있다.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상자를 여는 순간 우리는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

 

고양이의 생사가 결정나는 것은 관측하는 순간이다. 반대로 관측 전이라면 고양이는 죽거나 살아 있는 둘 중의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생존과 죽음이 겹쳐 있는 중첩 상태인 것이다.

 

전자는 파동이기도 하면서 입자기도 하다. 둘의 성질을 확률적으로 갖고 있다. 관측하기 전까지는 '파동이자 입자'다가 보는 순간, 즉 관측하는 순간 그중 하나의 상태로 결정나는 것이다.

 

고양이가 파동이자 입자인 이중성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건 맞다. 하지만 아무 때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조건이 필요하다. 진공이어야 하겠고 빛도 없고 관측도 없고 심지어 고양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 원자들끼리도 서로 상호작용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고양이가 얼마나 복잡한 생물체인가. 서로가 굉장히 치밀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관측하지 않는 상황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는 항상 입자로 존재한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학교 가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 항상 결정되어 있던 고전역학의 세계에서 눈을 뜬 우리는, 관측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양자역학의 세상으로 왔다.

뭔가 바뀐 게 있는가? 모든 것은 그대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상태가 중첩되어 있을 수 있고 무한하게 중첩된 개별 사건들로부터 미래가 끊임없이 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약간 흥분된다.

모든 상태는 단지 가능성을 갖고 중첩되어 있을 뿐이고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마다 하나의 우주로 결정되는 것이다. 

 


과학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전무해서 실제로 파고들면 이보다 더 복잡할 수 있겠지만 책의 내용만으로도 조금이나마 과학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요새 많이 피곤하지? 내가 기막힌 선물 하나 줄게. 이게 '디톡스 발바닥 독소 제거 패치'라는 건데, 이걸 양쪽 발바닥에 붙이고 누워서 자기만 하면, 몸에 있는 독소와 노폐물이 전부 빠지고 심지어 종아리 살이 빠지는 다이어트 효과도 있어. 이것 좀 봐. 내가 찍은 사진인데, 어제 붙이고 자고 일어났더니 새카맣게 변했어. 독소가 다 빠진 것 같아. 너도 붙여줄게."

 

나트륨, 요소, 콜레스테롤... 

과학이 친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뭔가 생소한 화학물질의 이름만 들어도 무조건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발바닥에서조차 독소를 뽑아내게 된다.

 

사실 나트륨, 콜레스테롤 등을 우리는 매일 배출하고 있다.

 

과학 용어가 나오면 급격하게 위축되거나 잘 모르니 일단 믿고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많은 잘못된 '썰'들이 돌아다닌다. 그렇다고 오직 과학자들만 맞고, 과학만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틀릴 수 있다. 단지 과학자가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사이비든 아니든 '과학'이라는 이름의 것을 접할 때, 보다 정교한 사고과정이 종종 생략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과학을 어설프게 아는 것이 위험하다고들 한다. 과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어설프게라도 아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사실 가장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에서 누구나 동일한 수준의 관측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과학이다."

 


실제로 책의 내용도 일상에서 많이 궁금해 하고 접해봤을 법한 것을 다루지고 있지만 그와 같은 상품으로서의 원리를 봐도 과학은 우리 도처에 있고 일상 속 상식으로서 이해될 때 더 재미있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래서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조차 자유의지로 보면, 제한된 조건 속에서 나조차 이 책을 선택해 읽은 것일 수 있을테니 과학은 과학이 아닌가?

아니면 광대한 우주 속에서 티끌 같은 인간도 다 연결되기 마련인 걸까.


 

당신이 태어난 건 자유의지인가?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건 어떨까? 결혼은? 출산은? 이사는?

이렇게 인간의 선택을 하나하나 놓고 보면 실제로 당신이 직접 선택에 관여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상황과 환경이 당신의 선택을 유도하고 마치 당신이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당신이 원해서 무언가를 사는 건지, 당신이 정말 좋아하는 건 뭔지, 오늘 먹을 점심메뉴는 과연 당신이 정말 먹고 싶었던 음식인지, 한번 기억을 떠올려보면 좋겠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당신의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 정해준 것이다.

 

혹시 '내가 자유의지가 없다니! 믿을 수 없어!'라고 생각하진 않았나?

심지어 내가 앞서 인생실전에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했으니 여기까지 이 글을 읽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당신이 간절히 원하던 일은 아닐 수 있다.

 


 

불현듯 우연은 과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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