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트랩, 윤재영
김영사 출판
일종의 트랩은 덫이다.
이 책은 인터랙션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함정, 속임수, 조작 등을 미끼, 연기, 트랩으로 구분 짓고 디지털 사용자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동시에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한다.
서비스 측은 온갖 혜택으로 우리를 서비스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일사천리로 가입시지키만(미끼), 정작 서비스를 해지하려 할 때는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매운 연기).
덫 기술은 인류의 수렵기부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곰은 당연히 걸려들 수밖에 없다.
나는 '사용자 경험 UX 디자인'과 '인터랙션 디자인' 분야 연구자이기에 이 덫을 '디자인 트랩Design Trap'이라 통칭하고, 사용자와 디자인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경험하고 있는 덫 기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한다.
인간의 행동을 꾀어내는 교모한 디자인의 덫에 대해 궁금한 모든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일반적인 비주얼 디자인을 떠올리고 본 책이라 인터랙션 디자인에 한정해 설명되는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동안 종종 PC나 모바일을 사용할 때 헤매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돼 좋았다.
그러니까 그건 사용자가 기기를 못 다루기 때문이 아닌, 애초부터 교묘히 어렵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사용이 어려웠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도하지 않았는데 누르게 된 광고 클릭, 회원 탈퇴, 해지하기, 약관에 비동의하기 등등.
SNS 플랫폼의 가장 큰 수익은 광고에서 나온다.
SNS 기업은 광고를 사용자에게 노출하고 광고주에게서 광고비를 받는데, 동영상 광고는 얼마나 오래 시청하는지로 광고비가 책정된다.
따라서 SNS 기업 입장에서는 사용자에게 광고가 많이 재생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네이티브 광고는 대표적인 '다크패턴 디자인'의 유형인데, '위장된 광고'로 불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자를 유혹한다.
광고를 광고가 아닌 것처럼 둔갑시켜 클릭하게 만드는 광고는 사람을 속인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은폐'되어 있는 디자인 트랩의 특성상, 잘 드러나지 않는 탓에 많은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구독하던 서비스 해지하기, 회원 탈퇴하기, 더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기, 이미 동의한 내용을 비동의로 바꾸기 등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는 마뜩잖다고 할 일을 온라인에서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금방 끝낼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여기에도 디자인 설계의 비밀이 있다. 정교하게 설계된 디자인은 대놓고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많은 사용자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을 탓하며 포기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서비스 측이 의도한 시나리오이다.
이외에도 약관을 읽기 어렵게 디자인하거나, 사용자에게 불안을 느끼게 해 행동을 유도하는 디자인 트랩이 있다.
다크패턴 디자인을 경험하는 사람들 역시 기술이나 디자인 자체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기 때문에 다크패턴과 같은 속임수가 쉽게 용인되고, 계속 이어진다.
다시 말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어진 디자인 앞에서 사용자가 원활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탓만은 아닌 것이다.
때로는 사용에 자신있던 이도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매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짚었듯이 그러한 조작된 디자인, 속임수, 다크 넛지 등으로 부르는 다크패턴 디자인을 사용자가 인지하더라도 별 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기업은 이익을 포기할 리가 없고, 함정과 속임수를 알더라도 사용자로서는 딱히 벗어날 수 있는 면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혀 모르는 것과 일부 아는 것은 다르기에 인터랙션 디자인이 사용자를 기만한 채 교묘히 어떻게 덫을 놓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 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좋았던 점을 휘발성 메시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 라이브 커머스의 현란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이유 등이 있었다.
휘발성 메시지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툴과 마찬가지로 텍스트나 사진, 영상 등을 보낼 수 있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어차피 몇 시간 뒤면 없어질 게시물이기에 보정이나 편집도 최소한으로 하고, 올릴 때 고민도 덜한다.
휘발성 콘텐츠는 늦게 확인하면 사라지기 때문에 더 자주 확인해야 한다.
기존 SNS에서 사용자가 소식을 제때 확인하지 못해 발생하는 두려움, 이른바 포모FOMO가 휘발성 콘텐츠에서는 극대화하는 것이다.
라이브 커머스는 얼핏 보면 홈쇼핑과 유사해 보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호스트(판매자)와 방문자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TV 홈쇼핑은 전문 스튜디오와 방송 장비, 콜센터 등이 필요해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되지만, 라이브 커머스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가능하다. 그리고 TV 홈쇼핑은 송출 수수료가 판매액의 30% 정도이지만, 라이브 커머스의 수수료는 10% 내외 수준이다.
라이브 커머스에서도 다양한 심리 요소를 활용하여 구매를 유도한다.
생방송 중에만 제공되는 할인가는 사람들에게 포모 등과 같은 불안감을 일으킨다. 이를 부추기기 위해 디자인적으로도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는 채팅 문구와 어지럽게 올라가는 이모티콘, 긴박감이 느껴지는 카운트다운 시간, 사람이 많아 보이게 하는 누적 접속자 수, 그리고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진행자의 다급한 목소리 등이 어우러져 사용자의 조바심을 유도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러한 점을 몰랐던 것은 그동안 인스타그램이나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사용자로서의 대안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도움이 되는 정보나 다양한 콘텐츠도 많지만 지금의 PC에서 모바일까지 확장된 디지털 환경은 '24시간 소지하고 볼 수 있는 광고' 그 자체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러니 굳이 기업이 만들어놓은 굴에 소비자로 자진해서 뛰어들 필요는 없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그는, 그들은, 우리의 이웃은 그것을 좋아하기에 나 혼자서만 따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소위 말해 내내 좋을 수도, 즐거울 수도, 도파민을 분출하기 위해 노력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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