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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 무엇이든 예술이 된다

 

데이비드 호크니, 무엇이든 예술이 된다

유엑스리뷰 출판

The World According to 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의 짧은 어록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현대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주의 팝아트의 거장이자 하나의 장르가 된 예술가로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그의 어록과 작품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인생과 예술, 화법과 작품 활동, 자연과 기술에 관한 그의 독창적인 생각들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것과도 비교 불가한 예술적 영감을 선사한다.

 

이전에 마틴 게이퍼드와 데이비드 호크니가 같이 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마틴 게이퍼드가 이 책 서문에 "호크니의 인간 실존에 관한 사색은 회화와 사진에 대한 견해만큼이나 예리하다. 그는 타고난 철학적 사고방식과 지극히 현실적인 표현 방식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썼듯이 책에서 엿볼 수 있는 호크니의 소견을 읽다 보면 정말 굉장한 달변가인 동시에 박학한 지식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끊임없이 작업하고 표현하는 참 좋은 예술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명성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이 없었지만 특히 그림과 원근법, 이차원에 관한 글이 좋았다.

 


 

이차원은 관념일 뿐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장의 종이조차도 삼차원이다.

 

반 고흐가 그린 나무 그림이 있다. 한번은 어떤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그림자가 잘못 그려졌네요."

그녀는 그림을 마치 사진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나무를 그릴 수 있다. 가지가 조금 비뚤게 그려져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팔이 이상하게 그려져 있다면 누구든지 그것을 알아챈다.

 

나는 항상 그림자를 알아챈다. 브래드퍼드에서는 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점은 사실 인간과 관련된 것이지 묘사되는 물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진은 궁극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다.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 이론을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요즘은 누군가 자신이 사진작가라고 소개하면 무엇을 한다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 아닌가?

그림이 훨씬 더 재미있다.

 

사람들은 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드로잉에 흥미를 느낀다.

손으로 그린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는 원근법을 따르지 않거나 혹은 따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나무는 선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서 아주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매력의 일부가 공간적 희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매우 의식하는 희열의 형태다.

 

 

 

세계를 해석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세상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이차원으로 묘사하는 데서 오는 난해함은 영원하다.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비드 호크니는 책에서 우리는 세상을 멀리서 보지 않고 그 안에 있으며 모든 것은 계속 변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고정된 원근법과 이차원의 그림이란 자연의 시점에서는 벗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비드 호크니가 말하고자 했던 정확한 바는 모르겠지만, 굳이 정하자면 묘사에 충실한 사진보다는 자유로운 느낌의 그림을 더 흥미로워하는 쪽이라 공감이 가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세상의 그림자도, 빛도 모두 볼 수 있는 삼차원의 존재긴 하지만 말이다.

 

그 외에는 그림, 예술, 물, 자연, 세상에 관한 여러 글들도 좋았는데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는 밝고 경쾌한 색채의 그림만 그리는 듯이 느껴지는 데이비드 호크니이기에 르누아르에 관해 이야기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큐레이터가 본인은 르누아르라면 질색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히틀러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나요?"

불쌍한 르누아르 양반.

그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다. 그는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

 

예술에서 즐거움의 원칙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꼭 모든 예술이 쉽고 기쁨에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술의 그림에서 심오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예술은 심오한 즐거움이어야만 한다. 철저한 절망의 예술에는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가 절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이런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응답은 그가 얼마나 명석한 사람인지 알게 해주는 일화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 역시 예술은 아름답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말은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모순된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불행한 삶을 산 예술가도 많다.

 

 

보는 대상은 보는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것은 당신과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 또한 어떻게 보면 호크니의 말 그대로 같은 것을 보고 있는 듯해도 모두 다른 것을 보기에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오는 차이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현재, 지금, 오늘 같은 단어를 좋아하는데 오늘 이 시간들에 읽기에 더없이 좋았던 책이었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손꼽아 좋아하지 않더라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에 와닿을 글들이 많이 있으므로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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