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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세라 자페

현암사 출판

Work Won't Love You Back : How Devotion to Our Jobs Keeps Us Exploited, Exhausted, and Alone

 

 

가정의 돌봄 노동, 가사 노동자, 교사, 판매직, 비영리단체, 예술가, 인턴, 시간강사, 프로그래머, 운동선수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면서 일의 역사와 본질을 탐구해 보는 책이다.

 

젠더, 노동, 불평등, 사회 변화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던 저널리스트 세라 자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사랑이 노동'이 가진 신화를 폭로한다.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그는 치밀한 조사와 방대한 참고자료를 수집하여 가사 노동자, 교사, 예술가, 개발자, 인턴, 운동선수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생생한 경험을 통해 '사랑의 노동'이 가진 신화가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꿔놓았는지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러한 불평등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일이라는 개념이 발전되어온 역사와 함께 되짚는다.

 

 

부제인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에서 알 수 있듯이 흔히 우리는 일을 사랑해라는 소리를 듣지만 역설적이게도 일은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이 책은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일에 가치를 뒀거나 일을 사랑해야 한다고 여겨왔던 독자라면, 하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일' 그 자체가 무엇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 어떻게 그와 함께 궤를 해왔는지 깨닫게 됨으로써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 알려진 역사를 토대로 보면, 저자가 서두에 짚었듯이 이전에는 부유한 사람은 일하지 않았다.

일은 노예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실은 전복됐다. 지금은 부유한 자도 일하고 빈자도 일한다.

다만 그 일의 질과 목적이 다를 뿐이다.

 

사랑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랑의 노동'은 사기다.

일을 사랑해야 한다는 풍토가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노동은 너무 고되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봉건시대부터 대략 1970~80년대까지도 지배계층은 가진 재산에 주로 의지해서 살았다.

고대 그리스 상류층은 육체노동자, 장인, 상인을 포함하는 하층계급 노동자들인 바나우소이와 노예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들은 여가를 즐기며 공동체 생활에 참여했다.

 

부자들에겐 일이란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0~80년대부터 변화가 시작되었고 그 변화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요즘에는 상위계층들도 일할 뿐만 아니라 오래 일하는 데 집착한다. 하지만 실질적 변화는 큰돈을 못 버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 일어났다.

일 자체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특히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그럴수록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정말 누군가에게 고용돼서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이 만든 그 일을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다시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는 일을 선택할 수는 없다.

애초에 있는 일과 직업이라는 것도 자본주의에 있는 수만 가지 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자신이 한 가지를 선택한 결과일 따름이다.

그것을 숙명으로 믿든, 재능으로 믿든, 또는 우연의 결과이든.

 

물론 창조해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생겨난 직업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도 현재 각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자본주의 산업, 상품, 서비스 등의 제약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사라질 것인가?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 아마 다음 세대에 태어나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일이란 것은 자본주의의 이미 있는 직업들 중 내가 선택한 결과일 따름일 확률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그 일에 끌리고, 그 직업이 적성에 맞고, 그 일에 가치를 두는지 그것이야말로 가장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사실들을 알더라도 저자가 말했듯이 일할 '필요'에 의해 현재의 우리는 모든 불평등과 처우에도 일해야 한다.

그리고 비약할 것까지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모두가 일하기 위해 길러진다고 할 수 있다.

 

일할 필요가 없다면 그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건가요? 내가 사람들에게 자주 묻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 언제나 현실을 직시해야 했고 돈이 문제였다.

이들은 일할 '필요'가 있었다.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간 우리는 노동을 통해 해방, 자유, 심지어 큰 기쁨도 얻지 못했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신화에 금이 가고 이유는 노동 자체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모델은 소수의 이득을 위해 지구를 망쳤고 신자유주의는 그 과정에 속도를 붙였을 뿐이다.

자본주의의 민낯이 드러나며 일을 사랑하라는 말은 이제 잔인한 농담처럼 들린다.

 

요즘 여가는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다들 너무 바빠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정치적 사회적 참여는 부유층의 전유물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책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넓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아마도 일은 우리를 사랑해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해 줄 것이므로, 우리는 사람들 간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인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직업의 다수의 결론이 연대로 느껴져서 연대와 공동체, 집단, 소속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워 했던 지점은 예술가였는데 예술가에게도 연대는 빠지지 않아서 의아했다.

물론 예술계도 집단이 있긴 하지만, 예술가들이야말로 개인의 집합이고, 그 누구보다 개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 아닌가?

 

특히 예술가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인식이 아닌, 책에 적힌 대로 "예술가를 예술가로 만드는 그 속성 때문에 예술가는 극도록 개인적이다"에 공감하는 쪽으로서 예술가에게 노조와 연대라니...

그래서 그 부분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공감이 안 가서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래도 예술가라는 직업의 역사를 다시금 짚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던 점은 좋았다.

 


초기 예술은 그 자체가 숭배나 마술의 형태였고, 요즘에는 예술이 부호들이 절세 용도로 운영하는 '내 박물관'에 갇혀 있는데도, 예술의 그런 신비한 분위기를 오늘날 예술계에서 걷어내기는 쉽지 않다.

동물 벽에 그려진 종교화나 사원에 목각품들은 인간의 김상물이 되기 전까지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이후 예술은 한낱 인간이 놀이로 하는 것이 되었고, 또 시간이 지나며 광범위하게 재생산되고 공유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예술가를 특별하고 천부적이고 시회의 틀 밖에 존재한다고 처음 생각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 유럽이었다.

부유층이 본격적으로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예술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부유한 상인들은 가족과 재산을 화폭에 담는 데 최고의 예술가를 고집했기 때문에 예술가도 고유의 명성을 누리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이 예술가 길드조직보다 개인적 명성을 토대로 흥정하게 된 계기는 사회가 개인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래도 대부분의 예술가는 갑자기 영감이 와서 마을 최고의 부자나 그가 아끼는 동물을 화폭에 표현하려던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예술가가 초상화나 그리고 있던 이 시기에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출현할 수 있던 이유는 최고의 예술을 수집하려면 부유한 후원자들의 욕구가 돈 이상의 것에 이끌려 일하는 지금의 '천재 창작자' 개념을 낳는 데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예술가에 대한 후원이 서서히 줄어들고 산업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예술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즉 그 자체를 가치 저장 수단으로 보는 시장이 성장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예술가들이 예술가다운 자질을 원했다면, 혁명 이후에는 예술가가 되어 작품을 팔려고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돌봄 노동처럼 예술 노동도 자본주의 생산체제 밖에 존재하며 그 체제에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돌보는 이들을 사랑해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와 달리, 예술가는 일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은 더 이상 종교적 가치가 필요 없었다. 그 자체로 더 높은 가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어쨌든 모든 사람은 어떠한 일이라도 해야만 하고, 직업으로서도 선택해야 하고, 하물며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자본주의 시장은 사람 없이 돌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하는 노동자는 잊어도 고객은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은 결론적으로 고객이 되기 위한 사투의 장일까.

 

 

그러나 속되게 표현하면 그들이 사랑하는 건 그들이 가진 돈이지, 사람 그 자체는 아닌 것 같다.

점차 그렇게 개인들만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렇게 보니 왜 저자가 연대를 강조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이 노동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사랑에 금이 가는 거라면, 그 사랑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람들은 돈이란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경제적 자유가 모두에게 허락된다면, 사랑과 여유가 넘쳐나고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상상해 봤을 때 사람이란 존재가 그럴 것 같지 않다.

지금도 얼마든지 욕망이나 탐욕을 멈출 수도 있지만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니까.

더구나 경제적 자유가 모두에게 허용되다면 그때의 모든 사람의 넘쳐나는 자유와 시간은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는 그걸 다시 또 받아낼 사람이 필요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놀이로 하든, 노동으로 하든 또는 무급이든, 유급이든 사실상 일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

때로 거대한 자본이나 가진 자의 부스러기를 받아 먹는 것 같은 기분에 기분 상할 수 있지만 각자가 가진 일이나 여가의 정의가 무엇이든 태어난 이상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니 말이다.

 

 

여하튼 자본주의가 말하는 일을 사랑해라, 일을 즐겨라, 원하는 일을 해라 등은 일을 더 시키기 위한 속임수이자 수작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좋아하는 일을 나쁘게 생각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일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를 품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인간으로서 가장 현실적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런 일의 본질을 깨우치고 싶다면 한번쯤은 읽어보길 권한다.

약간은 논조가 여성에게 맞춰져 있는 듯해서 그 점은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또 생각해 보면 역사적으로나 지금도 '사랑은 여자들의 일이다'라는 것도 그른 말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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