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예보 : 호명사회, 송길영
교보문고 출판
데이터를 통해 사회를 예견하고 탐구하는 저자의 책으로 점차 개인이 조직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찾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고 예고하는 책이다.
'핵개인의 시대'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시대예보는 '호명사회'다.
핵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사회는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숨을 필요도 없는 사회다.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는 새로운 공정한 시대인 호명사회는 어디까지 왔으며, 이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전작 핵개인의 시대를 읽지 못해서 그 책은 어떠한지 알 수 없으나 간결한 문체에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책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보인 책이라 좋았다.
그렇지만 체감하기에도 점점 시대가 나, 개인, 개인들의 연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도 조직이 지금 이 시대에서 얼마나 배제되고 있는지 와닿지 않은 면도 있어서 이 '예보'가 앞으로의 얼마나 이 시대 변화를 담아낼 것인지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아니 분명 변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미디업에 몸 담은 자와 아닌 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는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이의 현실에서는 다른 이의 버블일 수도 있을 어떠한 '데이터'가 현실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돌이켜 보면 어떤 시대에도 늘 개인은 있었다.
크기와 양상만 달라졌을 뿐 선구자와 선점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니 개인도 능사가 아니고, 조직도 능사가 아니다.
그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으로서의 주체만 있을 뿐이다.
여하튼 책에서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와 그른 말은 없었으므로 시뮬레이션 과잉과 선발과 경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좋았다.
시뮬레이션 과잉의 이유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욕망이 커진 것에 기인합니다.
체중이 늘고 피로감을 느낄 때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 보라는 조언을 얻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보를 검색해 보면 집 앞 상점에서 적당한 자전거를 사서 달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음 알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걷는 것이 귀찮아 자전거 페달을 휘휘 저으며 동네 마실 가듯 가볍게 운동하려 했던 자신이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고 어수룩한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됩니다.
예전에는 가볍게 시작한 다음 공력이 쌓여감에 따라 차차 알게 되던 내용이 이제는 꿀팁과 국룰에 의해 한꺼번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누군가가 자전거에 입문한다고 하면 끝도 없는 참견과 조언의 밀물이 쏟아집니다.
충고하는 이들에게 자전거를 알아본 이유로 그저 몇 킬로미터 반경의 동네를 저녁에 둘러보는 용도라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시작하면 곧 그다음 단계로 올라설 터이니 미리 좋은 것을 구비해야 한다는 그들에게 어느덧 처음의 구매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너무 높은 기준과 너무 많은 정보는 그만큼 큰 의무감을 만들어냅니다.
언제나 미디어는 소비를 부추깁니다.
이 모든 것은 정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소비의 명령과 같습니다.
정보의 과잉으로 한 걸음도 떼지 못할 때, 먼 미래를 보는 것 아니라 먼저 '나'를 보아야 합니다.
처음 선발이라는 시스템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자격을 검증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과거에도 선발이라는 방식이 절대적으로 공정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를 채택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기에 눈 감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자리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원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발생합니다.
특정한 목적에서는 평가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가진 재능과 관심이 모두 다르기에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을 보는 것일 뿐 더 우월한 사람을 선별해 내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선발'을 통해서 도달했던 대부분의 직업을 돌이켜봐야 합니다.
우리가 일하며 보내는 시간은 노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데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는 게 뭐 벌거냐"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일상의 마모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지만, 이때 가장 결여된 부분은 '삶의 의미'입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매일 8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동 사냥 모드'로 출근해 퇴근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매일 그만큼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지워지는 것 같다는 공포가 다가옵니다.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에서 비롯된 질문에서 본인이 더욱 잘할 수 있고 오래 할 수 있을 찾는 것, 이는 자신에 맞는 '본업'을 발견하는 길이며, 무엇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도망가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깊어지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경쟁하면 품질이 좋아질까?
어쩌면 사는 게 녹록지 않은 것은 경쟁이 심한 사회라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고, 우위를 선점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자신의 능력이라고 믿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채워넣을 수 밖에 없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까지 조직이 자신일 수 있을까.
조직이 개인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니 선발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립해야 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시대는 이전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가 나름의 궁리를 하는 복잡한 세상에서 동일한 계산이 새로운 환경에 적용되리라는 믿음은 허망한 꿈과 같습니다.
우리는 앞선 세대가 세워 둔 공식과 그 안에 담긴 변수들의 영향이 빠르게 쇠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보는 예보답게, 매일 일기 예보를 보고 준비하는 사람들답게 미래 또한 그런 관점에서 봐야 덜 비에 젖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가끔은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미리 대비해야 그 시기 또한 잘 지나쳐올 수 있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어려운 내용이 아니므로 지나가는 마음으로 읽으면 앞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될법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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