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펠드먼 배럿
더 퀘스트 출판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뇌가 당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7과 1/2가지 진실'이라는 부제답게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은 잘못 알려진 뇌 진실과 뇌에 관한 사실들을 단순명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중 흥미로웠던 것은 활유어와 예측, 양육, 정동 등에 관한 것이었다.
활유어는 약 5억 5천년 만 전부터 바다에 살았다.
맛과 냄새는 전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활유어에게는 우리와 같은 감각기관이 없었으니까.
어디서 어떻게 해서인지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먹게 되었다.
감각이 더 발달하면서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저 멀리 있는 희끄무레한 것이 먹을 만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저것에게 잡아먹힐까?'가 되었다.
주변 환경을 더 잘 감지하는 생물은 살아남아 성장할 가능성이 더 컸다.
고대의 동물들은 더 크고 더 복잡한 몸으로 진화를 계속해왔다. 이 복잡한 신체들은 이제 세포 몇 개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몸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수분과 혈액, 염분과 산소, 포도당과 코르티솔, 성호르몬과 기타 수많은 자원을 모두 잘 조절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지휘본부가 필요했다. 바로 '뇌'다.
진화에는 '왜'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당신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말할 수 있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상상도 아니다.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
뇌는 컴퓨터에 파일을 저장하는 식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게 아니라 전기와 소용돌이치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필요할 때마다 재구성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모아서 '조합'하는 것이다.
뇌는 매일매일 눈, 귀, 코를 비롯하여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세계로부터 감각 데이터를 지속해서 수신한다.
이 데이터는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는 의미 있는 광경이나 냄새, 소리와 같은 형태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빗발치는 광파와 화학물질, 그리고 기압의 변화에 불과하며 그 안에 본질적인 의미 같은 건 없다.
어린아이의 뇌가 환경에 연결되었는데 그 환경에 건강한 신체예산을 위한 핵심 요소가 없으면 중요한 배선이 가지치기되어 사라질 수 있다.
아기에게 음식과 물만 주면서 그들의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만져주면서 그들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빈곤이 뇌 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난할수록 학교 성적이 부진하고 학교도 오래 다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부담은 궁극적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가 다시 가난하게 살아갈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 악순환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 여러 세대에 걸쳐 빈곤이 지속될 때 사회는 너무 쉽게 유전자를 탓한다. 하지만 그 집단 아이들의 뇌는 빈곤에 의해 형성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어렸을 때 뇌가 배선되는 환경을 보살핀 건 양육자였다. 양육자가 당신의 적소를 만들었지 당신이 그 적소를 선택한 게 아니다. 당신은 아기였으니까. 그러니 초기 배선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어른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으며, 어린 시절에 당신을 둘러쌌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자신만의 적소를 바꿀 수도 있다.
예측하는 뇌를 가진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과 경험들을 더 많이 제어할 수 있고 더 많은 책임을 갖는다.
당신이 취하는 (또는 취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경제적 선택이다.
당신의 뇌는 생물학적 자원들을 언제 써야 하고 저축해야 하는지를 늘 헤아리고 있다.
당신이 목이 말랐을 때 물 한 잔 마셨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고 나서 몇 초 이내에 갈증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 현상은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러니 물을 마시고 몇 초 만에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의 갈증을 해소했을까? 바로 예측이다.
뇌는 마시고 삼키는 행위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물을 마시면 느끼게 되는 결과를 예상해서 수분이 혈액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훨씬 전에 갈증을 덜 느끼게 한다.
예측은 빛의 섬광을 당신이 볼 수 있는 물체로 변환한다.
예측은 기압의 변화를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바꾸어주고, 화학 물질의 자취를 냄새와 맛으로 바꿔낸다.
예측을 통해 당신은 이 페이지의 구불구불한 선들을 글자와 단어, 생각들로 이해할 수 있다.
예측은 또한 마지막 단어가 빠진 문장을 보면 마뜩잖아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체로 예측이 적중했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실수를 하고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운 생물은 잘 살아남았다.
반면 빈번하게 예측이 어긋나거나 위협을 피하지 못하거나 결국 나타나지 않은 위협에 대해 거짓경보를 반복한 생물들은 그리 잘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은 주변 환경을 덜 탐색했고 먹이를 덜 찾았으며 번식 가능성도 적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결국 성공한 예측이 당신의 행위와 감각 경험이 된다.
당신의 뇌가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 뇌는 당신의 현실을 만든다.
예측이 틀렸을 때도 뇌는 마찬가지로 현실을 만들어 내며, 바라건대 그 실수를 통해 배운다.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 줄 것이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감정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그것을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관계없이 항상 정동을 만들어 낸다.
어떤 종류의 마음도 다른 어떤 마음보다 본질적으로 더 낫거나 나쁘지 않다.
다만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변이가 있을 뿐이다.
당신이 개인보다 집단을 더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관련 지어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유용하다. 또한 당신이 집단보다 개인을 더 중시하는 문화에 살고 있디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된 마음을 갖는 것이 유용하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어떤 문화에 살든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나의 보편적인 마음이 있어야 인간이 하나의 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스스로를 연결시키는 매우 복잡한 두뇌뿐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만들어진 세상에서 일어난다.
바위와 나무, 사막과 바다가 있는 지구 자체는 물리적 현실이다. 사회적 현실이란 우리가 물리적인 것에 집단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부과하는 것을 뜻한다.
당신이 지금 미국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들어서는 중인지, 저 드넓은 바다에서 조업을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또는 태양 둘레를 도는 지구 궤도의 한 부분을 '1월'이라고 부를지 등을 결정하는 일은 물리학이나 화학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진짜다. '사회적' 실재다.
몸에 미치는 언어의 힘은 아주 멀리까지 뻗어나간다.
우리는 '말'로 서로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고된 하루 끝에 친구에게서 격려의 말 한마디를 들으면 마음이 진정된다.
신경계는 단지 거리뿐만 아니라 수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이나 쿠란 같은 고대 문헌에서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에게서 신체예산을 지원받은 것이다.
우리가 눈송이처럼 유약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는 좋든 나쁘든 타인의 행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뇌의 배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경계에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다. 신경계에 가장 나쁜 것도 다른 사람이다.
우리의 사회적 세계는 물리적 세계를 둘러싼 완충장치다.
작가 린다 배리의 명언처럼 "우리가 판타지 세계를 만드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머무르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그저 마음을 바꾸기만 해도 사회적 현실은 순간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그저 검은 암흑에서 두개골에 쌓인 뇌는 번식과 생존이 목적이지만 그러한 물리적 환경을 넘어 사람은 사회적 현실에 둘러쌓여 있으므로, 사회의 변화를 잘 예측하고 뇌의 에너지 예산을 효율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로 보인다.
어쨌거나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지금의 인간의 뇌까지 발달되어왔든 태어나서 죽지 않는 생명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뇌에 관해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짧기도 했지만 암흑에 둘러싸여 심심할 자신의 뇌를 위해(?)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했으므로 시간이 있다면 팔랑팔랑 넘겨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떤 뇌는 자신의 주인(?)이 자신에 관해 알게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뇌에 관해 일부 알아도 그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 수 있을까.
그러니 신경계에 관한 이 앎이 쓸모가 있을까.
어쩌면 그게 과학이 제대로 사회나 인간의 마음에 안착되지 못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과학은 사회에 물리적으로도, 사회적 현실로도 존재하는데 말이다.
여하튼 판타지의 세계에서 하찮은 몸뚱어리에 든 나의 뇌는 흡족했으므로 이 책을 읽은 경험은 좋았다.
아울러 나의 뇌가 난관을 잘 헤쳐나가고 어떤 상황에서도 해결방법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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