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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문학동네 출판

 

 

귀하의 노고의 감사드립니다는 한국사회의 노동에 관한 소설책이다.

책 소개에 따르면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첫 앤솔러지로 동시대 한국사회의 노동 현장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문학이 더 많이 창작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작가들의 모임'에서 비롯된 책이기도 하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첫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2023'이 출간되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동시대 한국사회의 노동 현장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문학이 더 많이 창작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작가들의 모임이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농원에서 일하는 고등학생 현장실습생부터 삼각김밥 공장에서 일하는 노인 여성까지 각기 다른 직업을 지닌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노동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슬픔과 갈등, 관행과 악습, 시장과 정책 변화의 영향 등을 사실적인 필체로 묘사하며 2020년대 노동의 시간을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옮겨 담는다.

 

 

11명의 작가의 단편들을 볼 수 있었고 동인의 몇 가지 규칙처럼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를 다룬 내용이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빛과 세사람이 오가는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밤의 벤치'도 좋았다.

'순간접착제'의 할머니도 인상적이었고, 직접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 듯이 여겨진 '기초를 닦습니다'의 건축에 관한 내용도 새로워서 기억에 남았다.

 

그중 내용과 관계없이 몇몇 문장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좋았다.

 

"빛의 입자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파동성도 지닌다는 사실이 빛의 성질에 관한 우리의 이해이다.

자기 앞에 놓인 무수한 길 중에서 최단 시간 경로를 따라나선 빛 알갱이는 자신도 모르게 직진하고야 만다.

자신의 의지라고 오해하면서."

 

"경진은 아파트 단지를 가볍게 돈 뒤 혼자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리는 시간을 하루종일 기다렸다.

밤의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발밑으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생각이라는 게 어디에서 떠오르는 걸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각이 이런 식으로 떠오를까, 문장 형태로 떠오르지 않는 생각은 생각이 아닌 걸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노동이 성질이 그러하듯 현실적으로 더 공감 가는 문장은 이런 지도 모르겠다.

 

"정말 좆같아서 못 해먹겠네. 겨우 세 시간 일하려고 씻고 화장하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
"며칠 동안만 그렇겠지. 요즘 손님이 너무 없잖아."

"세상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지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빌라를 짓는 거라고."
"그래도."
"니 양심껏 하자 없는 집 만들자고 이러는 거잖아."
"최소한의 돈으로요."
"그래. 그러니까 받은 만큼만 일해."

"세상은 급변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자본주의는 착취라는 이상을 소유한 자가 발동하는 계획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특히 "그러니까 받은 만큼만 일해."

그게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의 기조거나 일을 대하는 바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받은 만큼만 일해서 세상도 무너지고, 자신도 무너지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착취라는 이상을 소유하고도 싶으니 그 틈의 빛을 찾아서 직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오해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건 타인을 통해서만 가능하잖아요.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으면 그 사람은 누구도 아니죠. 누구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도 네가 누구인지 아는 건 너뿐이다, 라고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래도 적어도 일을 통해서만,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자아라는 것이 허상이고 육체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으니.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착취당하기 쉬운 사회 구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보다 문장의 맥락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권하고, 다소 한국사회의 노동을 다룬 글들이라 무겁게 읽힌 면도 있었지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끝으로 책의 제목에 빌리면 귀하에 노고의 감사드립니다 처럼 다들 사람 귀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은 이상적인 생각이라 현실 또는 무의식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노동이 필요한 것도 결국 사람을 향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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