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유선사 출판
소설가, 에세이스트, 배우, 영화감독, 기자 등의 여러 창작자들이 쓰는 행위에 관해 쓴 책이다.
책 소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책이기도 하다.
다양한 표현의 시대,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글로 표현되기까지의 뒷모습을 조명한다.
각자의 일과 삶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쓰기가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이랑, 박정민, 김종관, 백세희, 한은형, 임대형 9인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모두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한데 제목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여서 '쓰고 싶다'와 '쓰고 싶지 않다'처럼 나눠진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아마 주제가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관해 써주세요 같은 것에 가까웠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들 이렇게 쓰기 어렵고, 쓰고 싶지 않다고만 한 것일까.
아니면 쓰고 싶다와 쓰고 싶지 않다는 마치 한 몸, 한 마음 같은 것이라서 마땅한 일이었을까.
여하튼 창작도 일이니까 좋아하는 일이라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충분히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다들 하나같이 쓰고 싶지 않다고만 고충을 토로해서 결과적으로는 뭉뚱그려 독자로서는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들어버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읽고 싶지만 읽고 싶지 않다'고나 해야 할까.
그런데 그건 이 책뿐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은 늘 밀려있고 읽어야 하는데 읽기 싫은 것과 동일하긴 하다.
누가 읽으라고 시킨 것도 아니건만.
그래서 아마 대부분 싫은 마음은 심연 밑에 안 들키게 잘 둬야 하나 보다.
왜냐햐면 그 마음은 크게 가 닿을 곳이 없다.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창작에 관해 뭣도 모르면서 하는 말이자 글에 불과하니 독자의 이런 마음은 그저 책 읽기에 관한 행위에 관한 반응일 따름이라 해두자.
어쨌든 단 하나의 감상으로 말하자면 원래 거의 모든 책이 그렇듯 읽고 싶은데 읽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고, 작가가 쓰고 싶지 않다고 하는 글을 독자가 읽어야 한다면 왜 읽어야 하는지 설득해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또한 같은 언어와 주제, 소재를 사용하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창작이다라는 느낌도 함께 들었다.
그렇지만 끝내 루, 랭보, 오래된 타자기, 손가락, 필경사, 눈 같은 이미지만 떠오른 것을 보면,
난 본래 언어보다는 시각적으로 연상하고 이해하고 설명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것을 알겠다.
그러나 정작 읽어도 소설은 덜 읽게 되는 것을 보면 그건 또 왜 그럴까.
책에서 편집자가 말한 내용 중 "좀 더 사회적으로 써주세요" 같은 요구의 표현이 나오는데 사회적이라는 것은 또 뭘까.
내 생각에는 어떠한 그런 요구는 오히려 독자의 접근을 막는 듯한데 왜 소설은 시대를 반영해야만 하고 글은 사회적이어야 할까.
물론 그런 글이 싫으면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 되지만 그런 이유로 읽을 만한 한국 소설이 많이 없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건 단지 개인의 취향이나 선입견 또는 현저히 독서량이 미흡해 많이 알지 못하는 자의 핑계일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꼭 읽어야 하는 글, 꼭 써야 하는 글이라는 게 세상에 정해져 있을까.
결국 설득될 허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롯이 그 하나를 위해 딛고 달려가는 마음이 있기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발현되는 과정은 모두 다 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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