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예를 들어 의자의 본질은 앉는 것이다.
의자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므로 그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태어난 목적이나 기능, 역할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실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의 뜻은 실존(존재)이 인간이라는 본질(목적)보다 우선시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실존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며 선택하고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듯 사르트르의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인 동시에 주어진 운명보다 선택과 행동, 자유를 강조하고 그에 대한 책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르트르는 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을까.
사르트르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전통 철학과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실존주의 이전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또한 기독교에서도 신이 인간을 창조하면서 각자에게 고유한 본질과 목적을 부여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본질이 없다고 봤다.
특히 그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인간의 삶에는 본질적으로 주어진 의미가 없으며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 외 사르트르가 남긴 말로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도 줄곧 화자되는 편이다.
하지만 이 말은 말 그대로 타인, 사람 그 자체가 지옥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규정당할 때 자유를 잃고 고통을 겪는다고 봤기 때문에 그의 희곡 '닫힌 방'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희곡 '닫힌 방' 속 이야기의 세 명의 등장인물은 갇힌 공간에서 끝없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로 고통 받기에 그 상황 자체가 지옥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타인은 지옥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태어나서 죽기까지 수많은 선택을 통해 자유롭게 살고 자신의 본질을 획득하고자 하는 게 사람이지만, 타인들에 의해 쉽게 그 본질이 규정되고 어지럽혀지는 게 또 인간인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은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실존하기는 어려워 실존주의 철학은 지금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에 태어난 운명이나 목적, 본질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선택, 행동, 책임을 강조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삶에 유용한 철학 사조로 자리한다.
사진 출처 : freepik, pexels,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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