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빌 펄롱은 석탄을 팔며 아내, 다섯 딸과 함께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지역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빌 펄롱은 숨겨져 있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감독 : 팀 밀란츠
각본 : 엔다 월시
주연 : 킬리언 머피, 아일린 월시, 미셸 페어리, 클레어 던, 헬렌 비언, 에밀리 왓슨
장르 : 드라마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영화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을 파는 일을 한다.
그리고 펄롱은 수도원에 배달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일을 목격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일어난 일로 모두가 들뜬 가운데 펄롱은 그 일을 못 본 척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이 영화는 '막달레나 세탁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시에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영화화한 영화다.
그래서 대체로 소설의 텍스트를 영상으로 그대로 옮긴 듯 보였고, 그것을 구현하는데 많은 신경을 쓴 듯 보였다.
그리고 이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 하나 본질은 실화의 참혹성을 다룬다는 면에 있으므로 섣불리 판단하기도 쉽지 않은 듯 보인다.
만약 막달레나 세탁소에 잘 알고 있다면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실화를 잘 모르고 이 영화를 접하면 크게 다가오지 않는 면이 있을 수도 있다.
소설도 그렇긴 하지만 그건 실화 그대로라기보다는 함축해 비어있는 부분이 많고, 오로지 잘못된 일을 목격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같은 주인공의 심리를 더 다루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에서
그래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음에도 막달레나 세탁소 일에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입장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주인공의 심리가 크게 와닿지 않는 면도 있었다.
물론 그 도와줘야 할 사람이나 거대한 사건을 나만 알고 있는 것으로 치환해 상상하면, 펄롱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잘 모르는 사건에 온전히 감정이입하긴 어려워 개인적으로는 그랬던 것 같다.
막달레나 세탁소에 관해 간략히 설명해 보면,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에서 18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운영된 강제 노동 시설이었다. 그곳에서는 미혼모, 매춘부를 비롯한 일부 성폭력 피해자, 고아 등의 여성들이 타락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용돼 빨래, 바느질 등의 임금 없는 강제노동과 학대를 당해야 했다.
막달레나 세탁소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1993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수도원에서 무연고 여성 유골이 발견되면서였고 2002년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가 개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은 위풍당당한 건물이었다.
활짝 열린 검은색 대문 안에서 길고 반짝이는 창문 여러 개가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쪽 정원은 연중 관리가 잘되어 잔디는 바싹 깎여 있고 관상용 관목이 깔끔하게 줄지어 자라고 키 큰 산울타리는 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가끔 야외에서 모닥불을 피우기도 했는데 그러면 기이한 녹색 연기가 솟아 바람 방향에 따라 강을 건너 시내를 가로지르거나 워터퍼드 쪽으로 흘러갔다.
날씨가 춥고 건조해지자 사람들은 수녀원이 자아내는 모습이 그림 같다고, 마치 크리스마스카드 같다고 말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직접적으로 와 닿진 않아도 수많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종교와 관련된 인권유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참혹함은 심각한 듯 보이고, 여타 미국의 루이스 하인의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아동노동 학대 일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 사건이 알려진 시점과 무연골의 유골을 보면 어떻게 아일랜드 같은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다.
더더욱 언덕에 세워진 위풍당당하고 그림 같은 수녀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 밤이 왔고 다시 서리가 내렸고
한기가 칼날처럼 문 아래 틈으로 스며들어,
그럼에도 묵주 기도를 올리려고
무릎 꿇은 이들의 무릎을 할퀴었다."
아무튼 영화는 소설과 많이 닮았다.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그 탓에 좋은 점이 있기도 했고 안 좋은 점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영화 모두 글로서, 영상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하다.
그리고 이 모두가 어우러졌을 때 마치 클레어 키건이 쓴 문장처럼 보다 생경히 마음 틈 아래 스며들어 어떤 생채기처럼 깊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그러므로 소설을 읽었다면 영화도 보길 추천하고 막달레나 세탁소 실화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보길 권한다.
숨겨진 진실이라 깊이 알기는 어려워도 마음을 짓누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가 늘 씻어냈던 손처럼 그러한 일을 모른 척할 수는 없듯이.
그리고 으레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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