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필, 요한 하리
어크로스 출판
Magic Pill
매직필은 저자가 비만치료제로 오젬픽을 경험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과 우려를 다루는 동시에 비만 치료제가 개발되고 사용되기까지의 전반적인 비만에 관한 이야기를 통찰해보는 책이다.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가 현대 의학이 만든 기적 한가운데를 탐사하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 그리고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스스로 신종 비만 치료제를 처방받은 요한 하리는 '애초에 인류가 왜 이런 약이 필요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체중 증가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지, 살을 빼는 것이 단지 의지의 문제인지, 우리는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질문한다.
그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약을 개발한 생명과학자, 식품 산업의 핵심 관계자, 몸에 관한 세계적 석학 100여 명을 인터뷰하며 신약 탄생과 이어진 논쟁들을 둘러싼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함의를 파헤친다.
얼핏 보기에는 제목이 매직필(Magic Pill)인데다 GLP-1 계열 약물(오젬픽, 위고비 등)을 다루기 때문에 비만 치료제에 관해 단순히 설명한 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출판사의 책 소개 글에서도 볼 수 있듯 단지 그런 내용만을 다루는 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전작 '도둑맞은 집중력'을 쓴 저자답게 요한 하리는 직접 비만 치료제를 경험하면서 개인의 이야기를 쓰고, 의문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으로 책을 완성했다.
따라서 이 책은 비만치료제를 가운데 두고 그를 둘러싼 식품산업, 제약 산업, 식습관, 운동, 비만에 관한 인식 등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책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비만 치료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도 좋지만 체중 감량과 함께 식습관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이 봐도 좋은 책으로 보였다.
여하튼 체중과 음식.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뭉뚱그려 보면 책에서 유용하고 인상적인 글은 이러했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값싼 음식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더는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해서 요리하는 방식으로 한끼를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에 미리 가공되어 포장되어 나오는 식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 가공식품은 중요한 모든 지점에서 이전의 음식들과는 아주 달랐다.
모든 게 낱낱이 찢어발겨져서 부품으로(혹은 부품의 '모사품'으로) 바뀐 다음 식품으로 재조립됐다.
딸기맛 셰이크라면 사람들은 중간 어디쯤에서인가 딸기를 갈아 가공하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딸기맛 밀크셰이크의 경우 50여 가지의 화학물질로 딸기향을 만들어낸다. 그 50가지 물질 중에 '딸기'는 없다. 제조업체들이 이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한 가지다.
'신선한 음식은 너무 빨리 상한다'.
이들 공장에서 준비한 음식은 슈퍼마켓 선반 위에서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을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내용물을 극단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음식에 설탕과 지방을 잔뜩 넣으면 박테리아가 덜 자란다. 소금을 넣으면 썩지 않고 선반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먹는 식품에는 이 세 가지, 즉 설탕, 지방, 소금이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이 들어있다.
"중요한 사실은 식품을 공업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온도와 각종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식재료가 엄청나게 손상된다는 점이다. 식재료 본래의 질감이나 풍미, 향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손상된다."
가공업체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바삭함과 부드러움의 완벽한 조합, 설탕과 초콜릿의 완벽한 조합, 혀에서 터지는 맛의 완벽한 조합까지 찾아냈다.
이 모든 게 화학물질을 때려 넣은 결과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평생 자연식품이 아닌 화학물질 덩어리를 먹어온 셈이었다.
지금 우리 환경에서 쓰레기 같은 음식은 값싸고, 끊임없이 광고되고, 코앞에 디밀어지는 반면에 건강한 음식은 값비싸고, 광고하는 사람도 없고, 구하기도 힘들다.
"식단을 바꾸는 것도 현재의 식품 환경 내에서 시도할 수밖에 없어요."
나를 둘러싼 식품 환경을 내게서 차단할 수는 없다.
운동으로 태울 수 있는 칼로리에 대해 우리는 엄청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운동을 했으니 이만큼 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는 운동량을 늘려서 몇 칼로리를 더 태워봤자 음식을 통해 끝없이 들어오는 칼로리에 금세 묻히고 만다.
"아주 기름지네요. 몸이 아주 힘들어할지도 몰라요."
"난 네가 네 몸 안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 (오랫동안) 네가 네 몸에 뭘 집어넣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네가 네 몸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야."
"음식을 기분이나 감정을 바꾸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몸에 필요한 영양과 연료를 넣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해.
음식을 '입안에 넣는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중추신경계에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 장기에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 근육 조직에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 피부에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 소화기관에 무언가를 공급하는 것으로 생각해.
음식의 목적지를 그런 곳들로 생각해. 입이나 감정을 최종 목적지로 생각하지 말고."
"입안에서 음식이 완전히 죽이 될 때까지 절대로 삼키지 마세요. 그리고 먹을 때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언가를 읽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생각이 흩어지고, 그건 잘못된 거예요. 조용히 앉아 씹기만 하세요."
덧붙여 비만 치료제에 관심이 있을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보면 저자는 비만치료제를 복용하면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았지만 메스꺼움과 함께 여러 부작용 등을 겪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 약을 복용함으로써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지만 비만치료제를 먹는다고 해서 건강한 식습관을 갖게 된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젬픽 사용 7개월 차에 나는 제중 감량의 이점은 차곡차곡 쌓으면서도 내 생활에 변화는 거의 주지 않고 있었다. 전보다 훨씬 적게 먹기는 했지만 이전에 먹던 그 똑같은 쓰레기 같은 음식을 적게 먹었다.
아침 식사로 마요네즈에 빠졌다가 나온 치킨롤을 한 개가 아닌 3분의 1씩 먹었을 뿐이다.
빅맥에 프라이와 너겟을 몽땅 먹는 대신 프라이만 먹었을 뿐이다.
여전히 내 식단에는 정크 푸드와 가공식품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저 양이 줄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비만치료제를 본질적으로 필요로 하게 됐을까.
누군가는 그에게 이렇게 지적한다.
"내 생각에 네 경우는 건강이 동기가 아니야.
네가 그 약을 쓰면서 그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는 건 특정한 외모에 맞추고 싶어서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 어딜 가나 좋아하는 외모 말이야. 네가 오젬픽을 시도하는 건 그래서야. 날씬해지고 싶어서.
네가 그 약에 관해 처음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문자를 보냈던, 그 할리우드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 오젬픽을 쓰는 게 아냐. 그들은 지금도 건강해. 그들은 개인 요리사까지 고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잖아. 매일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하고. 그들은 자연스럽지 않을 정도로 마르고 싶어서 그 약을 쓰는 거야.
너도 심장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턱선을 만들고 싶어서 그 약을 쓰는 거야.
만약 그 약이 똑같이 네 건강에 도움을 주면서 얼굴에 부스럼을 잔뜩 나게 한다면, 그래도 그 약을 쓸 거니?"
그러고 보니 정말 과체중인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있는지 모르겠다.
"패션업계와 미용업계는 어떻게 굴러갈까요?
사람들한테 지금 그대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굴러가는 거예요.
자기네들한테서 이런저런 제품을 사면 그 결함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 외모를 걱정하게 만들어요."
이처럼 모든 산업이 팔기 위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니 비만치료제도 기타 질병이나 건강을 돕는 많은 제약산업의 약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미 모두 알고 있듯이 건강하려면 운동하고 식습관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약물 복용이 근본치료 방법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비만에 관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유용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가공식품 안 먹어야겠다는 다짐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기도 했다.
사실 가공식품 안 먹기라고 해도 세상에 시장을 거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진짜 자연스러운 식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데 가공식품은 노동을 줄여주고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는 부분에서 고마운 면도 있다.
책에서 저자도 적었듯이 굳이 힘들게 음식을 준비하고 싶은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요리해 먹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귀찮고 시간이 없을 때는 편리한 식품을 손쉽게 사서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요리하는 즐거움을 모르면 삶의 재미를 하나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요리는 안 배워도 간단히 한 끼 편리한 가공식품 등으로 때우면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그른 사고는 아닐까.
제아무리 모든 것이 산업화 돼서 이미 네가 요리해 먹는 것이더라도 가공되지 않은 것은 없어! 하고 반문할지라도 말이다.
어쨌거나 덜 가공돼서 눈으로 확인 가능하고 덜 손상된 식재료를 사서 요리해 먹는 것이 몸에는 가장 좋다.
"음식의 질이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잖아요.
약은 잊어버리세요.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육류를 적게 먹는,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단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차고 넘치게 많아요.
건강을 개선하고 싶다면 거기서 더 노력하셔야 해요.
이제는 자신의 식단과 신체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해요."
아무리 사회와 산업이 발전해도 그 본질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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