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감각, 조수용
B Media Company 출판
일의 감각은 비 미디어 컴퍼니의 대표이자 매거진B 발행인의 에세이로 디자인과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일의 감각'은 조수용의 첫 단독 저서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일해왔는지, 디자이너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회사의 대표로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는 동안 어떻게 중심을 잡고 감각을 키워왔는지 그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조수용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정리한 다섯 가지 단어는 다음과 같다. 공감, 감각, 본질, 브랜드, 나로서 살아가는 나.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 이 단어들에는, 저자가 32년간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일하면서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현상 너머에 자리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살아온 길답게 디자인과 브랜드에 관해 통찰해 보기 좋은 책이었고, 감각에 관해서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취향에서 비롯되는 것이 점이 기억에 남았다.
모든 일을 10억 원짜리 의뢰처럼 여기는 겁니다.
감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볼펜 디자인을 부탁합니다. 디자인 비용은 10억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10억 원짜리 디자인입니다.
대충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몇 달간 볼펜을 끝없이 파 들어간 당신에게는 어느 새 볼펜 보는 눈이 생깁니다.
그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볼펜이라는 제품의 본질은 '이것'이며 전략의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바로 '여기'라고 말입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해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너에 관한 내용이었다.
회사의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승인했으면 그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네이버라는 브랜드를 만드신 분이죠?'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이해진이라는 창업자가 만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걸 잘 읽고 더 좋은 것들을 보여 드린 거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너가 결정해야 한다.
표면에 보이는 디자인 자체는 정말 얕다.
많은 브랜드가 애플을 따라 한다면서 너도 나도 사용자 경험 이야기를 꺼내며 성급하게 디자인에 투자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것이다.
위에서 일관되게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오너밖에 못하는 거다.
회사의 맨 위에 있는 사람이 승인했으면 그 사람이 책임지는 것이다.
겉보기엔 멋있어 보이지만, 대다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결국 직장인이다.
그건 저자가 대표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디자이너는 그 어딘가에 소속될 수 밖에 없는 직장인이며, 어떠한 디자인이나 브랜드, 상품도 결정권자의 책임이 없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그렇게 보면 결국 디자인은 어딘가에서 멈춘, 주관적인 관점(혹은 다수의 결정이 모여)의 취향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보통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잘 없다.
우리는 대중으로서, 또는 소비자로서 디자인이 잘된 것을 보면 그 디자인이 뛰어나다, 혹은 그 누군가가 디자인을 잘했다고 판단할 뿐이지 디자인의 최종 결정에 대해서는 확고한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말해 판매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잘 팔리는 디자인, 인정받는 디자인이 그 디자인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지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해도 디자인도 예술처럼 누군가 결정한 것에서 끝난다.
예컨대 선을 그을 것인지, 긋지 않을 것인지 그건 예술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상품의 완성, 브랜드의 디자인도 그와 비슷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협업을 하고 작업을 하고 설득의 과정을 거쳐도 최종 결정은 오너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많은 제품의 디자인은 결국 오너 또는 클라이언트의 결정이다.
그러니 저자가 책에서 말한 오너에 관한 내용은 의외였다.
왜냐하면 보통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디자인을 보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오너의 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된다.
또 그것을 달리 말하면 세상에 형편없는 제품을 내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오너의 자리라는 뜻도 된다.
즉 형편없는 오너에게서 형편없는 제품이 탄생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 책임이 중대하고 위대한 자리가 '대표'라는 생각도 든다.
일반 소비자로서 나쁜 사업가를 볼 때는 정말 팔기 위해 별 짓을 다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될 때도 있는데 말이다.
하긴 애플이 괜히 사랑받는 건 아닐 거다.
훌륭한 오너 아래 훌륭한 기업, 브랜드, 제품이 존재한다.
그 외 디자인과 브랜드의 본질, 소신에 관한 내용도 좋았다.
유난히 '심플한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디자인을 쉽게 하려고 하다가 생긴 취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은 많습니다.
제 취향에 '맞는 디자인'이죠.
디자인이 아무리 좋아도 본질을 벗어나면 소용 없고, 그렇기 때문에 외양으로서 디자인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실용성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고 매력을 느낄까요?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 소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소신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 곁에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씩 생기기 마련이고, 그들이 확장되면 팬덤이 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브랜드는 사람입니다.
창업자의 취향으로 시작되고, 직원들의 신념이 모여 브랜드 철학이 생겨납니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일의 본질입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나의 신념을 퍼뜨리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뭐든 소신 있게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지켜내는 게 중요합니다.
여하튼 감각, 취향, 디자인에 관해 여러 내용을 다루므로 브랜딩이나 디자인에 관해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오너에 관한 글만 봐도 사고의 확장과 다른 지점에서 분명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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