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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미각은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 감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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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은 크게 5가지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그리고 어떤 감각도 감각되지 않는 날이 없지만 매일 먹지 않는 사람은 없을 만큼 미각은 누구에게나 일상적으로 중요하게 느껴지는 감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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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미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들이 표현하는 맛에 대한 해석은 종종 이해되지 않거나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커피테이스터나 소믈리에는 그 맛을 전문적으로 세세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먹어봐도 평범한 사람의 미각으로는 다 그 맛이 그 맛 같이 느껴질 때가 그렇다.

 

더구나 실제로 사람은 맛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다수 있다.

그 예로 크게 펩시 챌린지와 와인 가격 실험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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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에 관한 연구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

1970년대에 진행된 유명한 마케팅 실험으로 소비자들에게 펩시와 코카콜라를 블라인드 테스트로 제공한 후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물었다. 결과적으로 블라인드 상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펩시를 선호했지만 브랜드를 알고 마셨을 때는 코카콜라를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는 브랜드 정보와 기대심리가 미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와인 가격 실험

2008년 UC버클리와 Caltech의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와인이지만 서로 다른 가격표를 붙여 마시게 하고 뇌 스캔을 통해 만족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더 비싼 가격표가 붙은 와인을 마셨을 때 뇌의 보상 중추가 더 활발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맛에 대한 인식이 기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맛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미각만이 아니라 정보, 맥락, 시각적 요인, 환경, 기대감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존재한다.

 

즉 우리가 느끼는 맛은 실제 맛 이상으로 심리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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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은 절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의견이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감안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취향과 선호라는 것은 각자가 느끼는 감각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기에 그 무엇도 정답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각을 다루는 직업은 다른 감각에 비해 그 권위에 도전받기 쉽다.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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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미각은 시각, 후각, 청각, 촉각에 비해 정확성과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까.

과연 절대 미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미각을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의 다른 감각과 비교했을 때 시각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감각으로 여겨지는 것에 반해 미각은 개인차가 크고 주관적인 요소가 강해 측정하기 어렵다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의 정확성 비교

 

시각과 청각은 감각 중에서도 측정 가능성과 신뢰도가 가장 높은 감각이다.

빛과 소리는 파장이라는 물리적 단위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고 감지 역치(얼마나 작은 자극까지 인식할 수 있는지)나 분별력(두 자극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도 객관적으로 실험이 가능하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은 기술적으로 수치화, 정량화, 전문화가 가장 용이한 감각에 속한다.

예를 들어 시력 검사나 청력 측정은 수치로 바로 표현되며 영상 편집, 음악 제작 등 전문 영역에서도 기준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반면 미각과 후각은 본질적으로 훨씬 더 주관적인 감각에 속한다.

두 감각은 감정, 기억, 기대, 문화, 환경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개인차도 매우 크다. 또한 물리적 자극(예 : 맛 분자의 농도나 향기의 종류)을 명확히 계량하는 것은 어려운데다 이를 인지하는 방식도 복잡하다.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film)

 

다시 말해, 시각과 청각은 감각 자체를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가 풍부하고 검증 방법도 구체적이라 객관화와 전문화가 용이한 감각에 속하지만 미각과 후각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외부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정확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감각에 속한다.

 

그래서 미각을 다루는 직업이나 맛에 대한 평가는 시각이나 청각처럼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는 분야에 비해 정확성을 의심받거나 모호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The Milkmaid, Johannes Vermeer (painting)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경험에 빗대어 봐도 미각은 워낙 주관적인 감각이라 '정확한 맛'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때가 다반사다.

 

미각이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일상성과 익숙함이 만드는 착각

미각은 매일같이 경험하는 감각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자신의 '맛의 판단'에 익숙해져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미각에 대한 신뢰감을 거의 본능적으로 가진다.

"내가 맛있다고 느꼈으면 그건 맛있는 거야."

"이건 분명히 시고, 저건 덜 달아."

그러나 이는 다른 감각과 비교했을 때 청각 테스트나 시력 검사 같은 분야에서의 판단과는 매우 다른 태도다.

시력에 대해서는 잘 안 보이면 의사에게 확인받고 청각도 오디오 테스트에 의존하지만 맛에 대해서는 흔히 "그냥 느끼면 알지"라는 반응이 많다.

그래서 미각은 '직접적이고 반복되는 감각'이라는 이유에서 객관적 평가가 필요치 않다고 여겨지기 쉽다.

 

누구나 아는 감각이라는 전제

커피 테이스터, 와인 소믈리에, 향 전문가 등은 수년간 훈련을 받은 감각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종종 이들의 언어(예 : 과일향과 시트러스의 산미, 부드러운 바디감과 긴 여운)는 낯설거나 난해하게 느껴져 단순히 이렇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 맛이 그 맛인데."

"그냥 맛있으면 맛있는 거지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말해?"

이는 시각예술이나 음악 평론가들이 받는 의심과는 다른 결의 것으로 후자는 '전문성이 있는 분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미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감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전문성 자체가 도전받는 경향이 더 크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요인에 취약한 감각

시각과 청각은 물리적 단위(빛의 파장, 소리의 주파수 등)로 측정 가능하지만 미각은 정보, 기대, 분위기 등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다. 그래서 실제 실험에서도 전문가 간의 일치율이 완벽하지 않을 정도로 개개인의 미각은 너무 다양하다.

이로 인해 '정확한 맛 판단'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고 미각의 권위는 다시 흔들리며 반복되는 일이 잦다.

 

그렇다고 해서 미각이 전혀 전문화될 수 없는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큐그레이더(Q Grader), 소믈리에, 감정인(차/커피/와인 시음 전문가) 등이 구별해내는 맛의 정확성과 일관성은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전문가들이 미세한 맛을 감지하고 구별해 낼 때 비전문가로서는 놀라워하거나 궁금해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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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맛을 정밀하게 구분해낼 수 있는 이유는 수년간의 훈련을 통해 감각을 체계화하고 평가의 정확도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피 전문가 시험에서는 수백 개의 커피 샘플을 시음하면서 향, 산미, 바디감, 후미(여운) 등을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훈련된 시음가는 미각 자극에 대한 정확성과 일관성이 일반인보다 평균 2~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감각의 특성 : 주관적, 개인차 존재, 심리적 요인 영향, 해석되고 구성된 감각
전문성과 훈련 경험 : 훈련, 감각의 전문화 가능, 전문가의 평가 일관성, 정확도 확보
객관성과 권위 : 일상성, 보편성, 누구나 가진 감각이라는 인식, 권위 약화, 전문성 의심받기 쉬움
복합 요인 : 뇌, 환경, 기대, 기억, 문화, 감각 통합, 완전한 객관성의 어려움

 

또한 이러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선천적으로 미각 수용체가 풍부한 사람은 맛을 더 민감하게 감지하고 구별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은 결국 뇌가 만들어내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결국, 감각 해석의 주체는 뇌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모든 맛도 근본적으로는 뇌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작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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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미각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다른 감각에 비해 측정하기 어려워 주관적인 감각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강하지만, 모든 것들이 그렇듯 훈련과 경험을 통하면 잘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소위 말해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많이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셰프, 큐그레이더, 소믈리에 같은 전문가는 수많은 시식 경험과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높은 수준의 미각 판단 능력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미각이 절대적으로 정확성이 떨어지고 객관적이 될 수 없는 감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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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 경험을 원하냐, 아니냐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많이 달라지는 듯 보인다.

그게 유전적 요인이든, 타고 자라난 환경의 영향이든 우리가 서로 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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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개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기질적으로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경험 자체를 깊이 원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몰입하기 어려워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미각도 사람마다 민감도나 흥미가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맛을 깊이 탐구하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단지 '먹는 것'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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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만약 어떤 감각의 정확성을 높이고 싶다면 그 분야를 단순히 접하는 것 이상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감각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설령 그런 노력을 통해 감각이 예민해지고 숙련되었다 하더라도, 또는 전문가의 입장에서 미숙하게 느껴지더라도 사람마다 취향과 선호, 감각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점은 두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든 감각은 철저히 주관적이며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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