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공간, 허정원
북스톤 출판
디자이너의 에세이로 창의성, 디자인,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 '생각의 공간'은 익명의 디자이너로 일해온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자, 크리에이티브로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브랜드와 일에 대한 생각이다.
창의성을 재료 삼아 일하는 디자이너나 기획자뿐 아니라, 브랜드 설계의 또 다른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 자기만의 관점으로 창의성을 해석하고 발휘해야 하는 이들에게 자극과 동력이 되어줄 책이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하고 읽기에는 평이하게 읽힌 탓에 이미 창의성과 디자인에 관련한 도서는 많이 있으므로 굳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은 안 할 것 같은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에서 디자인 관련 도서 찾다가 우연히 읽기 시작해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찾아 선택했다면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읽게 될 일은 없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할 듯하다.
그런데 뭐 때문에 읽기 시작했더라...
아마도 이 문장 때문이었다.
"디자이너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있다. 상대적으로 텍스트를 작게 쓴다는 것이다.
그래픽 작업에서는 크고 시원시원하게 타이포의 임팩트를 잘 활용하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텍스트는 크게 키우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글만 보면 그 뒤에 텍스트나 타이포그래피에 관해 실무적인 팁, 사례, 실질적인 조언 등이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에세이'이긴 하지만 주로 디자이너의 태도와 관점에 대한 사유가 다이기 때문에 창의성에 관해 명료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그런 부분은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몇 가지 좋았던 인상적인 부분은 있었다.
대상을 '소비자'라고 인식하면, 디자인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소비가 일어나는 시점'에 집중하게 된다.
물건은 '쓰려고' 산다. 당연히 '쓰는' 과정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중요한데, 소비자라는 단어를 곱씹다 보면 '사는' 순간에 무게중심이 실릴 수 있다.
'사용자User'는 사용을 하는 사람이다.
디자인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디자인 원칙은 대부분 '사용자' 관점으로 정리되어 있다. 복잡한 사용성을 가지거나 복합적인 서비스에 관련된 디자인 영역이라면 '사용자'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고객Customer'은 말 그대로 고객이다.
애매한 스타일은 스타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스타일을 자주 바꾸면 스타일이 없는 브랜드가 되어버리고 만다.
스타일에 정답은 없다. 내가 자신 있게 입어서 나다운 스타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좋아서 지키는 것이다. 지켜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것이다.
자기애가 먼저다.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호기심이 깃들기 쉽다.
창의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상상력을 동원해서 즐길 거리를 늘려가면 좋겠다.
그 속에서 호기심과 더불어 모티베이션이 싹튼다.
즐길 거리는 소중하다.
결은 사뭇 다르지만, 디자인을 의뢰받는 과정에서도 얼핏 들으면 모순적인 요구가 꽤 있다.
예를 들면, 싸지만 고급스러워 보이게,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면서도 기존 고객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독특하지만 누구나 좋아할 수 있게, 정보를 많이 넣지만 심플해 보이게 등등의 요구다.
불가능한 요구인가 하면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아름답다, 예쁘다, 시크하다, 세련되다, 어둡다, 두껍다, 섬세하다, 생명력이 느껴진다, 미래적이다, 전문적이다, 시원하다, 장식적이다, 단조롭다, 너무 파랗다, 노골적이다, 싱그럽다, 섹시하다, 조용하다, 서정적이다, 문학적이다, 유연하다, 친근하다, 힘이 느껴진다, 약하다, 시끄럽다, 도전적이다, 매력적이다, 품위가 있다, 건축적이다..."
감성과 감각을 언어로 풀어내다 보면 추상적인 표현이나 형용사에 기대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언어를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가면, 깊이 있는 공감대에 도달하기가 힘들다.
디자인에 대해 표현하더라도, 추상적인 단어 뒤에 숨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애매한 표현 뒤에 숨어 있으면, 설득력이 떨어지고 스스로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역설적이게도, 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콘셉트의 조합이 보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감성으로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디자인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 외에는 창의성보다는 현실의 디자인 측면에서 상사가 할 법한 말이나 디자인 업계의 전문가들이 해주는 관성적인 조언처럼 읽히는 면이 많았다.
즉, 이 책은 직접적으로 디자인이나 창의성에 관해 명료하게 느껴지는 말이 적다.
어떻게 보면 창의성과 디자인의 속성은 상반되어 보이고 그 안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여서 그럴 수도 있는데, 때로 그게 무엇이든 모호하게 애둘러 착하게 말하기보다는 나쁘더라도 명확하게 직관적으로 단언하는 면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기대하고 읽었다가 읽고 나면 평이하게 와닿은 책도 많은데 왜 내가 이 책에다 이런 평을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디자인의 '아름답다, 예쁘다, 시크하다... ' 등의 여러 인상을 끌고 오면 이 책의 인상은 '부드럽고 친근하지만 단조롭다.'
대신 저자의 이력에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장 직함이 있으므로 아모레퍼시픽 디자인에 관해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물론 이 책에 저자의 현업과 관련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많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직접적이고 조심스러울 수 있더라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더 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대신 동시에 그게 바로 익명의 디자이너의 한계일 수도 있다.
아무튼 책에 있던 말로 그만 감상을 끝마쳐야겠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래도 지향점은 필요하다.
어려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남겨두기보다는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흔들리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편이 멋지다."
사업가의 디자인.
디자이너의 디자인.
사용자의 디자인.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각자 지향하는 바와 취향도 다른데다 무언가 추상적으로 애매하게 와 닿는 개념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쉽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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