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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현대지성 출판

 

 

영화, 출판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일본의 칼럼니스트가 영화, OTT, 유튜브 등의 영상 배속 시청 문화와 사회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그래서 빨리 감기처럼 책의 내용을 요약해 놓고 보면, 저자는 '사회 기술 발전에 따른 결과로 어찌할 수 없다'로 결론 내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술은 어느 시대든 인간이 더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상을 유료로 상영하는 세계 최초의 영화관이 탄생한 이후, 우리는 100여 년을 들여 비로소 영상을 보는 데 '장소와 시간, 물리적, 금전적 제약'을 걷어냈다.

영상 배급사일 뿐만 아니라 제작사이기도 한 넷플릭스나 아마존 혹은 TV 방송국이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추가한 것도 역시 '원형이 아닌 형태의 감상'에 대한 적극적인 제안이다.

 

왜 그랬을까?

상당한 수의 관객이 이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 요청에 부응하는 편이 비즈니스 기회를 넓힌다.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미디어나 디지털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지식인들이 불쾌감을 표현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방법이란 출현 후 얼마간은 비바람을 맞기 마련이다.

지금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라는 새로운 방법은 제작자로부터 쉬이 환영받지 못한다.

기존의 지식인들로부터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집에서 레코드를 듣거나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행위가 비즈니스 기회의 확대라는 대의에 눌려 허용되었듯이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라는 시청 습관도 언젠가 많은 이에게 허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크게 책에서 제시하는 영화를 빨리 감기 배속으로 보는 사람들의 이유는 뭘까.

그건 시간이 없어서, 영상 및 콘텐츠가 범람해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따라서 그걸 알기 위해 굳이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신 책이든 영화든 차라리 안 보면 안 봤지 빠르게 보지는 않는 입장에서 읽으며 여러 생각들이 들긴 했다.

예컨대 이런 생각들.

 

그런 짓(?)을 왜 하지? 시간 없으면 안 보면 되잖아.

사실상 안 봐도 인생에는 아무 해도 없는데?

시간 없으면 평 찾아보고 천천히 정속으로 보기 시작하면 되잖아.

 

물론 책에서도 짚었듯이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라면 왜 그렇게라도 보는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바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를 따라가야 하니 빨리 감기로 본다”라는 의견이 10대~20대 사이에서 많이 들리기도 한다.

왜 그렇게 하면서까지 이슈를 따라가려 하는 걸까?

대화에 끼는 것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중요해진 탓이다. 이를 초래한 것이 바로 SNS에 수시로 접속하는 습관이다.

 

회사원에 빗대면 사전에 배포된 회의 자료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랬다간 '일 못 하는 놈' 취급을 당하거나 사내에서 입지가 좁아질지도 모른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려면 어떻게든 자료를 읽어두어야 한다.

빨리 감기든 요약 사이트에서 줄거리만 대충 읽든 수단은 상관없다. 미리 정보를 수집해두지 않으면 승부처에 올라보지도 못한다.

 

야구나 축구 시합에 비유하면 시합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기껏해야 다음 날까지다.

전설적인 명경기라면 몰라도 다음 날, 다음 해까지 그 이야기를 한다고 주위에 사람이 모이지는 않는다.

 

 

작품이 유행할 때 봐두어야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다.

영화가 개봉하면 티켓 사진이나 영화관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빨리 가서 봤다고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작품을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보지 않으면 학교나 직장에서 이야기에 못 끼는' 작품들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곳이 교실뿐이었다. 교실을 나가면 대화를 피해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메신저가 어디까지고 따라온다. 도망갈 곳 없이 항상 어떤 반응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사람들 간의 대화거리가 영상물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만들어진 작품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원할 때 천천히 봐도 된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해는 어떤 방송에서 어느 사람이 아주 많이 유명했던 드라마를 못 봤다고 했을 때 깨달은 건데, 생각해 보면 그것을 봤어도 안 봤어도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일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물론 "그 영화 못 봤어" 같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는 순간적으로 "아 안타깝네. 그거 재밌는데~" 같은 생각이 들 수는 있어도 그것도 안 보다니! 하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사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러니까 대중문화인 것이지 필수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간과 기억이라는 면에서는 공감됐다.

 

 

"음, 그 장면을 제대로 본다고 해도 기억에 남는 건 아마도 싸움 장면뿐일 거예요.

어차피 나중에는 기억도 안 날 텐데 굳이 제대로 볼 필요가 있나요?

그래서 저는 어떤 작품이든 평범한 장면은 대부분 건너뛰어요."

 

모든 기억은 압축된다.

이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어차피 정독으로 읽든 제대로 시간을 들여 관람하든 차후 기억에 남는 건 몇 문장, 몇 장면이 다다.

그것도 아니면 그것을 접했을 때의 나의 주변 환경들과 벌어졌던 일들.

 

그렇다고 해도 배속해서 본 것과 제대로 읽고 본 후의 남은 결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지만 전혀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몰아보기, 줄거리 영상으로 불리는 패스트 무비를 봤던 경험에 비쳐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중에는 자신이 그 드라마, 그 영화를 제대로 봤는지 헷갈릴 수도 있다고.

물론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내가 그렇게 본 건 드라마 한 작품이었으니 그렇다 해도 여러 편을 그런 식으로 보면 나중에는 정말 다 기억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흔하진 않지만 배속 자체로 만들어진 영상도 한두번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영상은 보는 사람도 조급한 마음이 들게 해서 자신의 콘텐츠를 왜 그렇게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역시 클릭만 하면 다라는 걸까.

영화든 OTT든 유튜브 영상이든,

수익.

그것만이 중요하다는 걸까.

 

여하튼 책에서는 그런 식으로 영상을 시청하는 사람을 감상자라 말하지 않고 소비자라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영상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콘텐츠'라는 말을 사용한다.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정의를 분명히 해두자.

'감상'의 목적은 행위 자체이다. 모티브나 테마가 숭고한지, 예술성이 높은지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비'에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된다.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작품을 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콘텐츠는 본래 '내용물'이나 '용량'을 의미하며, 전자매체상의 정보나 제작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작품은 '양'의 잣대를 거부한다.

 

 

감상에 필요한 시간(비용)과 감상으로 얻는 체험(효과)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품을 감상하고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영감이나 계시가 폭발하기도 한다.

'실리', '유용성'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어떤 '작품'이 좋고 나쁜지 가르는 기준을 굳이 설정한다면 '감상자의 인생에 끼친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수치화할 수 없으며 한 작품이 다른 감상자에게 같은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재현성도 전무하다.

 

영상 작품은 시청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콘텐츠'로 불리기도 하고, '작품'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청자는 영상 작품을 '소비'할 수도 있고 '감상'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는 감상하고 싶은데 이미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는 다 '소비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책에서도 짚었듯이 감상자를 감상자로 대해줘야 할 텐데 다 소비자로 대하니 현재의 콘텐츠의 질이나 작품성도 하향하거나 범람하기만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를 이용하면 매달 천 엔 내외의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만큼' 영상을 볼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한 달에 몇십 편, 마음만 먹으면 몇백 편의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에서 월정액 요금으로 볼 수 있는 작품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 편 이상'이다.

여기에 지상파 TV, 기타 방송 미디어, 유튜브를 비롯한 무료 영상까지 더하면 작품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분명한 공급 과잉이다."

 

그것도 아니면 너무 값싸게 접할 수 있으니 "사람은 공짜로 손에 넣은 건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까" 같은 말마따나 스스로 자신을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보면 단지 대중을 위한 오락 또는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고매한 우상화 같은 것을 불어넣어 주고 싶지 않지만.

 

정말 만든 쪽에서는 우리는 작품을 만들었어 라고 해도 대중이, 감상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어떻게 할 거야.

어찌 보면 서로 다 동상이몽 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는 다를 수 있으므로 그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지 않는 현재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대신 늘 읽은 대로, 본 대로 떠드는 나는 해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며 끝맺고는 싶다.

 

"인터넷에서 재미있다고 의견을 말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요.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법한, 모든 사람이 걸작으로 인정해 주는 작품이 아니면 재미있다는 말을 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거든요."

 

아니다.

감상에는 솔직함이 중요하다. 개개인의 의견은 언제나 소중하고 옳다.

그러니 저자가 책에서도 말했듯이 만들어진 대로 즐기고 감상하자.

소비자가 아닌 감상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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