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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찰스 괴칭거의 '블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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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awtoday.tistory.com

1967년 오리건주립대학교의 찰스 괴칭거 교수는 '설득의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괴칭거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이 학생이 검은 가방을 뒤집어쓰고 강의를 들을 것이며,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고 일러두었다. 그날 이후 학생들은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를 '블랙 백'이라고 불렀다.
그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처음에 블랙 백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작 후 몇 몇 주가 지나자 블랙 백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우산으로 찔러대던 학생들의 공격적인 태도가 서서히 공감과 애정으로 바뀌어갔다.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 리처드 와이즈먼 /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사랑에 관해 서술한 부분에서 블랙백 사례를 인용했다. 저작권이 있어서 아무렇게나 사용하면 안 되지만 블랙백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 모습을 전혀 못 보는 것은 아니다. 구글에서 실제 사진을 영문으로 검색해보면 블랙백은 검은 포대 자루 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포대자루는 로브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발만 내 놓고 앉아있기도 한다. 

 

찰스 괴칭거(Charles Goetzinger)는 블랙백(Black Bag)을 통해 단순 노출 효과를 실험한 것이었다.

단순 노출 효과(Mere-exposure effect)란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가 정립한 이론으로 노출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 대상에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복효과, 자이언스 효과라고도 한다.

이것은 자이언스가 실험한 사례대로 누군가의 사진을 반복해서 보여줘도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지만 사물에도 적용된다.

곧 그건 마케팅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많은 기업들이 광고를 하는 이유다.

 

단지 광고는 기업이 제품을 알리고 홍보해 제품을 구매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제품이 광고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주 반복, 노출될 수록 사람들은 그 제품에 관해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호감은 구매와 소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벌어들이는 수익도 적지 않는 코카콜라가 꾸준히 광고를 하는 것도 그와 유사한 이유에서다.

 

나는 코카콜라는 마셔봤고 어떤 맛인지 알고 있다. 우리가 만났던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계속해서 광고에 돈을 쓰고 있다.
어딘가에 코카콜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잠재 고객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사람과 접촉하려는 것일까?
코카콜라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는 이미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계속 광고를 하는 걸까?


광고를 반복해서 볼 때마다 코카콜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조금씩 향상되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없다면 탄산이 들어간 설탕물일 뿐이다. 하지만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는 완전히 다르다. 코카콜라는 매년 광고와 브랜딩에 수십억 달러를 쓴다. 코카콜라가 광고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이유는 광고가 이름을 알리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행복'과 연관성을 만드는 데 수십억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탄산수를 어떻게 대중에게 팔까? 탄산수를 대중이 원하는 것, 이를테면 행복과 연관 짓는 식이다. 설탕물과 행복이 연관성을 갖는 데 성공하자 2,000억 달러의 가치가 창출되었다.

영화 '일렉션'에서 트레이시 플릭이라는 등장인물은 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단연 세계 최고의 음료수이고, 그 어느 기업보다 많은 광고비를 씁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세계최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뇌과학 마케팅, 매트 존슨, 프린스 구먼 / 21세기북스 출판

 

어찌보면 단순 노출 효과는 소비자로서 광고, 마케팅으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블랙백 사례로 보면 호감일 수도 있는 효과다.

그러면 사랑에 대해서도 열 번 찍으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자주 만나고 상대에게 나를 계속 노출시키면 그 사람도 나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

물론 전혀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우리는 자주 노출된 사람에게 호감이나 애정을 같지 전혀 모르는 상대에 대해 관심을 두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처음에 학생들은 블랙백에게 적대적이었을까.

원래 사람은 낯선 이나 새로운 사물을 대할 때 처음부터 호감을 갖지는 않는다. 낯설고 새로운 것, 변화에 대한 불안과 거부는 사람 마음에 깔린 기저다. 그러나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하게 되고 사물도 자주 접할수록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단순 노출 효과는 그 대상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태도가 없을 때 가장 잘 발생하며,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때 가장 강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블랙백에게 적대적이었던 마음이 호감으로 돌아선 것은 처음부터 블랙백은 학생들에게 미스터리한 존재였다. 그 존재에 대해 그 누구도 몰랐기에 처음에 적대적으로 대하긴 했어도 싫어하는 마음도 계속 이어질리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아무짓도, 어떤 행동도 안 했다. 그저 거기에 있기만 했다. 이는 그저 TV, 웹 브라우저, 스마트폰, 동영상 속 한켠에 있기만 했는데 무의식적으로 내가 알아차리고 내 눈에 들어오고야 마는 광고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떠한 행동으로 마음을 촉발하는 사람보다 멀뚱히 아무 짓도 안 하는 광고가 승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도 많이 노출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나저나 블랙백이야 그렇다쳐도 가끔은 내가 사지도 않는 수많은 광고나 스킵하고야 마는 광고를 보며 기업들은 왜 저렇게 사람들이 사지도 않을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들일까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심리학 효과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짓은 아니었다. 언제나 실리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은 바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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