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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서양에 국물 요리가 없는 이유

 

서양에는 국물 요리가 거의 없다.

우리가 서양의 국물요리라고 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스튜, 수프 정도다.

그마저도 서양식 식사에서 메인 요리로 자주 등장하는 음식은 아니다.

 

 

서양에 국물 요리가 드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기후와 지역의 특성, 조리 기술의 발달, 계급 제도가 식문화에 미친 영향이 그것이다.


 

 

서양에 국물 요리가 없는 이유

 

 

기후와 지역의 특성

유럽은 대체로 냉건조한 기후가 많아 음식의 보존성과 저장성이 중요했다.

그래서 물을 많이 사용하는 조리보다는 염장, 훈제, 건조 같은 방식이 발달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물의 부족이나 위생 문제로 인해 와인이나 올리브유 같은 재료를 보조적인 조리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적 요인 때문에 서양은 물에 재료를 넣고 끓이는 습식 형태의 요리보다는 굽거나 졸이는 건열 조리 중심의 식문화가 발전했다.

 

 

조리기술의 발달

서양은 일찍부터 오븐과 프라이팬을 활용해 조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양 요리의 주된 조리법은 Roasting(굽기), Braising(조리기), Frying(튀기기)로 음식이 한 번에 조리되어 완성된 한 접시(One Plate)로 나오는 요리가 많다.

그뿐 아니라 서양 요리는 재료의 개별 풍미를 농축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끓이기보다는 굽거나 졸여서 맛을 응축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물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 대신 국물의 농축된 형태라 할 수 있는 소스 문화가 발달했다.

 

 

계급제도가 식문화에 미친 영향

초기 유럽에서도 냄비(pot)에서 유래한 프랑스식 수프 포타주(pottage)의 형태의 죽이나 국 요리를 귀족과 서민 계급 막론하고 널리 먹었다.

하지만 17~18세기 프랑스 왕실의 궁정요리 문화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점차 조리법이 정제된 코스나 플레이트 형식으로 바뀌고, 재료를 한데 넣고 끓이는 요리는 서민적이고 거친 음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즉 재료를 분리해 정교하게 요리해 먹는 것을 귀족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여겼다면 재료에 물을 더해 양을 늘려 함께 나눠먹는 방식은 가난한 하층민의 식사로 여긴 것이다.

 

그 결과 점차 서양의 요리는 프랑스 궁정요리의 영향 아래 소스 중심의 접시 요리가 국물 요리를 대신해 식사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기후, 조리법, 계급 등의 이러한 요인들을 서양에 국물 요리가 없는 이유로 단정 짓기에는 여전히 설에 불과하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이는 동양의 요리와의 비교에서 기인한 관점이기 때문에 서양 요리 자체를 평가하거나 우열을 논하는 근거로 삼을 수도 없다.

 

모든 나라의 식문화는 각각의 고유한 역사와 환경, 가치관 속에서 발전되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의 서양 요리에 물을 베이스로 한 요리가 많지 않더라도 농경 시대에는 불을 다루는 기술이 단순했고, 큰 솥 하나가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기에 가장 유용한 조리 도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농경 및 공동체 생활 중심의 사회에서 삶거나 끓이는 조리법은 불을 직접 다루는 굽기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조리 방식이었을 점은 분명하다.

 

 

다만 동양의 요리와 서양의 요리 차이로 봤을 때 서양 요리에 국물이 드문 요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될 수는 있다.

 


 

동양 요리와 서양 요리의 비교

  동양 요리 서양 요리
식사 형태 한 상 차림, 여러 그릇 공유 개인 접시, 1인 코스
조리 철학 조화(합쳐서 끓임) 분리(나눠서 연출)
식기의 형태 그릇 중심(볼, 탕기) 접시 중심(플레이트)
대표 조리법 끓이기, 삶기 굽기, 로스팅
결과 국물이 중심에 남음 국물은 주변으로 밀림

 

 

익히 누구나 알듯이 동양의 주식은 쌀, 서양의 주식은 밀을 바탕으로 발달했다.

이는 아시아의 다습한 자연 환경이 벼농사에 유리했고, 유럽과 서아시아 일부 지역은 건조한 기후가 많아 밀 중심의 밭농사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동양이 쌀과 채소를 중심으로 국, 찌개, 탕 같은 습식 조리법의 요리를 발달시켜 왔다면 서양은 밀, 고기와 유제품을 중심으로 굽기, 튀기기 같은 건식 조리법이 발달되어 왔다.

 

 

특히 역사적으로 계급 제도는 동서양 모두 존재했으나 동양은 밥을 중심으로 한 식사 구조였기 때문에 상류층의 식사에서도 재료의 품질과 질을 높인 국물 요리가 필수적인 요소로 남았다.

반면 서양은 빵과 고기를 중심으로 한 단품형 식사 구조였기 때문에 국물이 필수적이지 않았고, 대신 요리에 소스나 수프를 곁들이는 방식이 상류층의 미식으로 발전했다.

 

 

요리 철학에 있어서도 서양이 분리, 응축, 개체를 중시했다면 동양은 조화, 균형, 섞임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상차림 문화(공동식)에서 국물요리가 유지되었지만 서양은 개인 접시 문화가 확립된 데다 1인 식사, 코스 요리 체계가 정착되면서 별도의 국물요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서양요리에서는 재료를 분리하고, 국물을 농축해 소스로 변형한 뒤 접시 위에 연출하는 플레이트 중심의 요리 방식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국물 요리가 있더라도 스튜나 수프는 식사의 보조나 전채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메인 요리는 대체로 건조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물이나 와인 같은 음료를 식사 시 필수 요소로 함께 곁들이기도 한다.

 

서양의 식당에서 물의 가격을 별도로 받는 이유도 식사 시 물 또한 하나의 서비스 품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에는 왜 국물 요리가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촉발된 궁금증은,

또는 서양과 동양의 요리를 비교하거나 계급 제도에 따라 요리를 구분하려는 인식들은

결국 역사적으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 요리에 국물 요리가 전혀 없거나 굽거나 튀기는 조리법이 동양 요리에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요즘은 문화권에 따라 구분지어 먹기보다 서로의 조리법과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며 발전시키는 추세다.

그러므로 이는 서양은 재료를 분리하고 응축하는 조리 미학이, 동양은 여러 맛을 조화롭게 어우르는 식문화가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형태의 '완성된 한 끼'를 이루게 되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사진 출처 : freepik, pexels, gongu.copyright,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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