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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

 

걷는다, 이케다 미쓰후미

더퀘스트 출판

 

 

일본 저널리스트가 걷기에 관한 취재를 쓴 것이 계기가 되어 집필하게 된 걷기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걷기는 건강에 좋다 같은 걷기의 이점만을 말하고 있는 책도 아닐뿐더러 저자의 걷는 경험에 관한 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건강의 목적보다는 평소 느슨하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걷기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한 책으로 보인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의 휴식, 앉기, 차와 보행에 관한 내용이었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게 좋다는 생각이 현대에 만연해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 말의 뉘앙스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당초 '왜 걸으면 뇌가 활발해질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품은 의문 자체가 틀렸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인의 뇌는 늘 강한 각성 스트레스 상태에 있고,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을 한다는 게 미야자키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평소에 '어떻게 뇌를 효율적으로 일하게 할까?'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뇌는 그보다 휴식을 원하고 있다.

 

이나바는 "평소 인간은 복잡한 생각을 한다. 머리가 주도권을 쥔 상태다.

그러나 산을 걸으면 전신을 사용하는 신체 우위 상태로 옮겨가 '평소 복작거리던 머릿속이 텅 비게' 된다.

즉 '뇌가 활발해진다'기보다는 '뇌가 깨끗해진다'에 가까우며 사고가 싹 정리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장시간 앉은 자세가 지속되면 아무리 운동량을 늘리더라도 사망 위험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운동량을 늘리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1시간 넘게 계속 앉아 있으면 지방을 연소시키는 효소 생성이 감소한다.

신진대사가 느려져 체내의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장시간 앉은 자제가 지속되면 심장병 위험이 6%, 제2형 당뇨병이 7%, 그리고 유방암과 대장암 위험이 10% 증가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장시간 앉아 있으면 이런 신체 변화를 막을 수 없게 된다.

 

건강을 위한다는 애초의 발상이 틀렸음을 알게 된 것은, 영국의 의사이자 연구자인 제임스 레빈의 논문을 만났을 때였다.

"우리는 의자 중심의 세계를 설계해버렸다. 그건 실수였다."

수렵채집민에서 정착으로, 그리고 '책상에의 정착'으로 이어진 인류의 의미 -어떤 의미로는 퇴화-라는 비유도 중첩되어 있다.

더구나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원인을 '앉은 채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고 말이다.

 

 

"메트로 사피엔스"란 말의 의미를 풀자면 이렇다.

보행에서 자동차로 이동 수단이 변화하고, 이를 전제로 설계된 공간에 거주하고(즉 안전한 보행 공간은 부족하고), 대기오염과 이상기후로 야외 활동이 제한되고, 장시간 앉아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최신 조사에 따르면 세계 평균 스크린 타임(스마트폰, 태블릿, TV, PC 등 화면을 보는 시간)은 하루에 6시간 35분에 달한다.

특히 TV와 PC를 보는 시간엔 거의 앉아만 있다.

 

우리는 직립 이족보형을 획득함으로써 해방된 손으로 도구를 발명해 문명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그렇게 수확한 과실이, 우리를 도리어 의자에 묶어두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도시의 걷기 친화성'은 대중교통이 충분히 갖추어졌는지, 치안이 좋은지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도로에 뛰어들면 안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좌우를 확인한다' 같은 기본적인 교통 규칙을 배운다.

생명이 달린 일이니 어린아이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상식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잘 생각해보면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면 왜 보행자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일까.

단순하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턱없이 멀거나 목적지까지 가려면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건너는 편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거리가 차에만 최적화되어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20세기 초 도시의 도로는 결코 자동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걷는 사람, 물건 파는 사람, 마차, 뛰노는 아이들을 위한 공공 공간이었다.

1920년 미국에서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미국 '뉴욕 타임스' 표지에는 사신이 모는 살인 기계로 묘사된 자동차 일러스트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그런데 이랬던 가치관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대학의 기술공학 교수 피터 노턴에 따르면, 그 시점은 도로를 운전에 편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자동차 업계가 캠페인을 벌이면서부터라고 한다. 법과 규범이 그들의 의도대로 점차 바뀌어갔다.

 

즉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는 개념은 자동차 업계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발명'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랫동안 잊혔던 셈이다.

 

현대사회에는 15억 대 넘는 자동차가 존재하지만 가동률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안 쓰고 놀리는 유휴 자산이 도시라는 귀중한 공간의 시간 대부분을 점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걷기를 좋아하는 보행자로서 골목의 차가 달갑지 않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는데 (특히 강아지와 걸을 때) 책에서 말한 무단횡단에 관한 내용을 보니 이건 역발상으로 정말 도시가 차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걷기에 관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었다.

 

특히 착화감이 좋은 신발이 사실은 발의 감각을 저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맨발로 땅을 밟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에서 발과 걷기에 관해 새롭게 여겨진 점이 많았다.

또한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낯선 공간이 주는 기분보다 걷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에서도 걷기가 달리 느껴져 좋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신발에 관한 브랜드 내용이 많아서 이것은 광고인가, 뭐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마냥 걷기에 관한 좋은 책이라고 말하기에도 의아한 면은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도 "좋지 않나, 이리저리 방랑하고 와도" 같이

걷고 싶다는 기분을 만들어주는 데 일조했으므로 그 사실하나만큼은 좋았던 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시간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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