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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크리스 나이바우어

클랩북스

No Self No Problem

 

 

간단히 요약하면 좌뇌와 우뇌를 구분짓고

좌뇌가 자아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좌뇌를 이해하면 생각으로 만들어진 많은 상념들로 인해

마음의 고통이 덜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물론 저자는 자아는 좌뇌의 산물이다처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기에는 좌뇌와 우뇌는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너무 이분법적으로 좌뇌(언어/세부/해석)와 우뇌(직관/전체)를 구분해 설명하는 듯한 논조가 그렇게 보였다.

 

사람들이 생각으로부터 오는 번뇌를 떨치지 못한 듯해 도움이 되고자 책을 쓰게 된 마음은 이해한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책을 읽고 좌뇌의 해석 장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럼 당신은 전보다 덜 심각해질 것이고, 마음의 고통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주장에 따라 좌뇌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셈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면에서 어떤 내용들은 감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글들이 그랬다.

 


 

모든 사람의 뇌는 끊임없이 해석 활동을 하고,

그 해석은 매우 주관적이며,

부정확하고,

어쩔 땐 완전히 틀렸다.

 

NO          YES

yes에서는 긍정적인 느낌을, no에서는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말에 힘을 부여했다는 증거다.

만약 또 다른 광고판에 러시아어든 뭐든 당신이 읽을 수 없는 언어가 쓰여 있다면, 거기에 yes라고 적혀 있든 no라고 적혀 있든 그건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는 뇌에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을 테니까.

 

좌뇌가 자아라는 느낌을 만들 때 범주화는 어떤 식으로 일어날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생각해 보자.

내 경우 "나는 남자이고, 아버지이며, 남편이자, 교수이고, 작가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대답은 나 자신을 범주화하여 규정짓는 것일 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아니다.

 

나는, 부모님이 주신 이름인가?

나는, 내가 타고난 성별인가?

나는, 나의 직업인가? 

나는, 내가 갖는 사회적 역할인가?

나는, 사회에서 얘기하는 나의 나이인가?

나는, 내가 받은 교육 수준인가?

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육체인가?

나는, 내 머릿속 생각인가?

나는, 내가 기대하는 어떤 것인가?

 

진짜 나는 어떤 말로도 규정될 수 없다.

범주, 이름표, 신념, 감정, 그 밖에 '알려진' 어떤 것으로도 말이다.

 

 

당신의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만약 '나'를 교양 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그런 사회적 범주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인데,

이 범주는 상대적으로 천박하고 그리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성립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교양 있고 똑똑하다면 당신이 정의한 그 범주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신을 외향적이라고 정의하려면 비교적 내향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남성이려면 같은 의미로 여성이 필요하다.

 

머리 왼쪽에 있는 뇌세포들과 신경 화학 물질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낸 결과물, 그게 신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둘로 쪼갠 뒤 더 나은 나로 살지 못할 때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더 매력적이고, 더 성공하고 싶다. 이 모든 바람이 바로 우리의 '문젯거리'다.

자아의 입장에서는 계속 존재하기 위해 계속 생각해야 하고 똑똑함, 매력, 성공의 기준을 계속 바꿔야 한다.

즉, 자아는 언제나 모자란 상태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더 나은 나'의 기준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요령은 나의 생각과 나를 분리하는 것, 그래서 생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일어날 뿐인 일'로 본다.

 

 

중도 위에선 내가 이미 완벽하고 평화롭다는 것을 안다.

좌뇌 해석 장치에게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신기루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

공장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공장에서 만들고 있는 상품을 바꿀 수 있을까?

소설 속 명탐정 셜록 홈즈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원리를 납득하면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다면 당신은 크게 아프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은 단순히 소리를 사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뿐이다.

이런 무형의 소리가 어떻게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걸까?

당신의 해석 또는 좌뇌에서 만들어 낸 지도가 당신을 아프게 한 것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그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딱히 사적인 감정으로 볼 필요가 없다.

그건 그저 생물학적인 기능일 뿐이다.

 

 

'나'라는 존재가 플립북flip-book 같다고 생각했다.

여러 장의 종이 귀퉁이에 조금씩 다른 그림을 그린 다음 빠르게 넘기면 연속된 애니메이션이 나타나는 것처럼,

현실은 서로 다른 100개의 그림이 있건만 마음이 이것들을 이어 붙여서 마치 하나의 인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가끔 '분노하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겠지만 그건 플립북의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금세 다른 감정, 다른 지각, 다른 생각을 지닌 또 다른 '나'로 교체될 것이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나들'이 왔다가 갈 뿐이다.

그러니 어떤 '나'에 집착하고 어떤 '나'를 미워할 필요도 없다.

'나쁜 나'와 '착한 나' 사이에서 씨름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고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나라고 믿는 자아가 단지 좌뇌의 해석에 불가한 것이라면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자아란 내향적인 사람이 존재해야 외향적인 사람도 존재할 수 있듯이 범주와 해석에 따른 그 이상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설령 그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이를 단순히 말하면

나의 자아가 뇌나 나의 몸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다고 치면,

아니요. 나라는 것은 사실 거기 없어요.

좌뇌가 만든 해석일 따름이에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저자의 주장에 따라 좌뇌, 우뇌의 역할 구분을 믿더라도

좌뇌가 없다면 언어로 자아를 해석하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그리고 사실 개념, 구분, 범주들은 일종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사회가 합의한 지점에 가깝다.

그래서 아직 덜 밝혀진 뇌가 어떠하든 그 진실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비교적 오래전인 2019년에 출판된 책이므로 최신 뇌에 관한 연구를 반영했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 사이 크게 좌뇌는 이성, 우뇌는 감성 같은 구분에 대한 이해가 바뀐 건 아닌 듯하지만, 좌뇌형, 우뇌형 같은 구분을 크게 믿지 않는 나로서는 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판됐는지 모르겠다.

시기상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고, 뇌의 가소성의 생각한다면 추천사와 온라인 서점에서 왜 이런 책을 추천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읽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온라인 서점에서 눈에 띄어 알게 된 책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이유에서인지 읽으면서 뭔가 모를 부정적인 쎄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인데...

다 읽고 찾아보니 일부 독자 리뷰에서 저자의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보였다.

그리고 사실상 이런 리뷰가 솔직한 리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에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뇌가 궁금해 읽는다면 저자의 주장은 다소 부정확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 비추천하며, 어지러운 자신의 마음 때문에 심리에 도움이 되고자 읽는다면 어느 정도 추천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이 책은 서양의 철학보다 동양 철학의 관점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아와 생각을 다루는 책이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생각할 줄 아는 존재'라며 인간의 특성을 정의했다.
불교, 도교, 힌두교 등의 전통은 생각하는 마음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마음이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젯거리인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자아라는 개념이 그저 마음의 구조물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증거와 마주할 것이다.
머릿속 어딘가에 위치한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생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자아라는 것이 있어 생각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자아라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어떻게 보면 번뇌는 마음에서 온다 같은 동양 종교에서 들어볼 법한 말을 뇌의 관점에서 번뇌는 좌뇌에서 온다 버전으로 볼 수도 있겠다. 내가 가진 좌뇌의 해석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좌뇌만 설명하고 있는 책은 아니므로 우뇌가 궁금하다면 읽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크게 도움은 안 될 수 있어도 전체를 본다는 우뇌의 해석과 직관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생각하지 않고 사람은 사람을 구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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