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프랜 리보위츠, 프랜 리보위츠
문학동네
The Fran Lebowitz Reader
넷플릭스 시리즈 '도시인처럼'을 본 이후 프랜 리보위츠에 관해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말하자면, 프랜의 다른 말들도 궁금해져서.
그런데 마침 국내에 출판된 책을 찾아보니 저서가 있었다.

이 책은 프랜 리보위츠의 에세이집 대도시 생활(1978)과 사회 탐구(1981)를 '나, 프랜 리보위츠'라는 제목으로 다시 엮어 펴낸 것이다. 그래서 서문에 저자가 적었듯이 오래 전 글이기 때문에 현재와 맞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원래 저자가 쓴 당시의 의도대로 읽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의성보다는 전체적으로 미국 문화, 배경, 유머코드 등을 알아야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어쩌면 더러 번역이 매끄럽지 않게 읽힌 것도 원문 자체가 해당 문화의 맥락을 보다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쉽지 않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책으로 프랜 리보위츠란 사람을 먼저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저자를 보고 난 후에 본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이 책에서 맥락없이 흥미있게 읽혔던 프랜 리보위츠의 글들은 이러했다.

삶이란 대개 기교를 모방한다.

진정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러므로 노력으로 이 판을 들쑤셔보겠다는 건 꼴사납고도 비생산적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할 것 같은 붙타는 욕구가 사그라들지 않을 때면 단 음식을 먹어라. 그 기분도 곧 사라질 것이다.
당신의 인생사는 책으로 낼 정도가 아니다. 시도조차 하지 마라.
아이가 이성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면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본다는 뜻이다.
어린이에게 식탁 예절을 엄격히 지도하지 않는 것은 그 어린이의 앞날에 무심한 것이다.
어린이는 식당에서 누군가의 옆에 앉아 미래에 관한 터무니없는 희망을 소리 높여 논하지 않는다.

삶이란 잠 못 이룰 때 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문명이라 칭하는 것들은 소름 끼치도록 내리 이어진 불면의 밤에서 나온 잔해 더미일 뿐이다.
사람은 자주 눈송이에 비유되곤 한다. 이러한 비유는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개별성을 의미한다.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무척이나 명백하다.
사람은, 현재의 가치상승률에도 불구하고 그냥 널리고 널린 흔한 것들이다.

그래픽디자인
우리 중 일부는 대담하고 과감한 선으로 치장하고 나머지는 크고 분명해 읽기 쉬운 글자와 숫자로 치장했다.
색깔은 모두 깔끔하면서도 어린애 같은 밝은색이었다.
우리는 비행장 모양으로 정렬에 유용하면서도 활달해 보이려 했다.
비슷한 복장의 이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
삶은 일반적으로 오락물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진지한 의도의 작품들만 엄선해 참고했다.
우리는 서정적으로 움직이며 극한의 감수성과 기술적 재량을 발휘했다.
탐구 주제는 사회의 매끈한 겉면 아래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절망, 사회적 불의였다.
우리는 무척 조용했고 말도 거의 없었으며 대체로 남들과 교류하지도 않았다.

부의 권력은 독서보다는 혈통으로 얻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특별한 관심사를 다루는 잡지사에서 광고와 구독자 유치로 이윤이 날 정도라면,
그 관심사가 그리 특별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현실화라는 단어는 없다. 내면화라는 단어도 없다.
이 영역에서 화로 끝나는 단어가 적절한 경우는 변화 뿐이다.

모든 작가의 말로는 똑같으니 이다음 단계나 실제 작가의 삶을 더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다.
결국 죽거나 노작가 요양원 신세가 된다.
장래에 이러한 시설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생각은 모든 작가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데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작가에게 부정적 비평 기사를 슬쩍 찔러주는 가학적 관행이 만연해
부족한 찬사로 사망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지옥 같은 일들의 연속일 뿐이다.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지만 그리 정확한 그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말에 고무되진 말도록. 아닌 걸 모아봤자 쓸 데도 없다.

침대에서 벗어나볼까 생각한다. 지나치게 활기찬 생각이라 이내 접는다.
위대한 사람은 생각을 논하고, 평범한 사람은 물건을 논하며, 시시한 사람은 포도주를 논한다.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생각하기 전에 읽어라.
혼자 지어내지 않은 것을 생각해볼 기회가 된다.
내가 모임이라는 세계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직접적인 이유는,
나의 가장 큰 필요와 욕구가 근본적으로 고독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잠이란 책임에서 해방된 죽음이다.

대체로 프랜 리보위츠의 생각과 말, 글은 유머 섞인 풍자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들은 사회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되었기에 글로만 읽기에는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으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프랜은 '나는 무정한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적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떠한 면에서는 너그럽지 않고 무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진정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자는 드물기에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니.
그게 설령 사실이라고 한들 그런 말들이 다정하게 들릴 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무정함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왠지 모르게 대체로 비평가를 좋아하지는 않음에도 이상하게도 프랜 리보위츠의 생각들은 그렇다.
게다가 본래 세상이란,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비록 낙관과 긍정으로 사회를 보더라도
사람 말은 양쪽 다 들어봐야 하므로, 또 세상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서 재미있는 것이므로
그 의견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다 의미는 있다.
무엇보다 모든 견해는 이거 아니면 저거다.
유연하게 사고할 줄 알아야 하지만 중립을 표방하기만 한 의견은 고루하고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만약 프랜 리보위츠의 유머 섞인 말들이 심기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도 없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한 개인이 가진 확고한 신념이라면 변하지 않는걸까.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즉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매일매일 변화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적었더라도 이후 프랜 리보위츠의 생각이 바뀐 부분은 없는지.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한 개인이 가진 확고한 신념에다 단호함이라면
누가 어떻게 설득하든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할 때
그때는 이런 사람이었다 하고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 처럼'에 이어 프랜 리보위츠의 생각이 궁금해서 읽었던 책이었으므로 좋았다.
그리고 만약 프랜 리보위츠의 글에 관심이 간다면 전체적인 그 맥락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도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수용은 그 다음 문제더라도 여러 견해의 하나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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