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람과 고기를 봤다.
넷플릭스에서 지나치듯 보게 된 줄거리와 식사하는 영상에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처음에는 영화의 제목이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와 보지는 않으려 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영화에 관해 찾아봤는데
포스터에 글이 있었다.

"눈 떠 보니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
그 시가 멋졌다.
그래서 볼까 말까 하다 보게 되었는데 무난히 재미있었다.

사람과 고기
감독: 양종현
각본: 임나무
출연: 장용, 박근형, 예수정
장르: 드라마
가족도 없이 살아가던 서울의 세 노인.
무전취식의 일탈을 공유하며 그들은 인생의 사소한 기쁨을 누리고 활력을 되찾는다.
대략의 영화 줄거리는 우연히 알게 된 세 노인 우식, 형준, 화진이 식당에서 함께 고기 훔쳐먹고 다니는 이야기다.
우식과 형준은 폐지를 줍는 노인이고, 화진은 길에서 채소를 판다.
왜 식당에서 고기 먹고 돈 안 내? 자식 없어요? 할 수도 있는데 각자 그들 나름대로 기족과의 사연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이 내용을 단순히 내 마음대로 표현하면,
노인과 고기도둑이랄까.
그래서 고기 사주세요, 한 끼 사주세요, 같이 식사합시다 등의 느낌으로 제목을 지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개인적으로는 고기란 단어가 직접적으로 다가와 다른 제목도 혼자 상상해보긴 했는데 식과 관련한 이 이상의 제목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사람과 고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제목일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전취식인 만큼 너무 슬프고 심각한 분위기의 영화는 아니어서 좋았다.
더구나 영화 속 세 사람은 고기를 먹고 활기를 띤다.
소외 속에 함께 모여 먹는 즐거움도 있었을 테지만 그 일탈의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현실의 도덕적인 판단이 개입하면
늙어서 왜 저럴까, 자영업자도 다 힘들게 일하는데! 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식당 주인이 했던 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식당주인에게 화진의 손자인 수원이 되받아친 말도 그른 건 아니다.
물론 돌이켜보면 그 식당 주인이 부모가 차려줘서 하는 식당인지, 스스로 일궈낸 식당인지 모를 일이나 세상이 공평하지 않은 것은 맞으니까.
화진도, 수원도 괜히 자녀와 그 부모를 잃게 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인이 노인이 된 것은 노인이 뭔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노인이 되는 것은 누구나 그 나이까지 자연스럽게 살아있으면 겪게 될 일이다.
어쩌면 사람이 그 나이까지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모두가 곧잘 잊어버리곤 하지만 사람은 언제 어떻게 생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노인이 먼저 죽을 수도 있고 젊은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고 그런 것이니까.
본래 생명은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늙으면 늙는대로 문제라 노인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일해서 사 먹으라는 걸까.
당연히 이 말은 영화 속 노인들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여지를 둬 굶고 다니는 것 같아 한끼로 고기 사줬는데 알고 봤더니 뒤통수 쳤어.....
그런 사람도 세상에는 분명 있다.
그래서 그 뒤로 또 어느 사람은 사람을 못 믿게 되고 그런 순환들.

아무튼 영화의 결말은 슬픈 작품은 아니므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보면 울게 될지도) 고령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또 평소 폐지 줍는 노인분들을 보면서 밀어드려야 하나 말아야 고민하고 있다면 말없이 가서 밀어줄 수 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인물도 영화에 잠깐 등장한다.
하지만 장애인, 노숙인, 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직접적으로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도와주면 기분 상해하지 않을까 머뭇하게 되는 점도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학생, 이것 좀 같이 밀어줘요."
"저기 지나가는 분 이거 조금만 들어주세요."
"같이 길 좀 건너줄 수 있나요?"
"잠깐 부축 좀 해주세요."
그렇게.
다시 말해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세요' 하는 것이다.
그런 작은 도움까지 바쁘지 않은데 무시하고 지나칠 사람은 내 생각에는 드물다.
그렇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므로 먼저 눈치껏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사는 것이 참된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켠에는
먼저 사람을 가엽게 보고, 동정하고, 연민하는 마음이 맞을까의 의문은 존재하지만.
지나친 배려도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일일이 상대방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곧잘 그렇게 지레 짐작하고는 한다.
직접적으로 도와줄 상황도 잘 생기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외는 더러 노인분들이 사회에서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장면도 나온다.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대로 몸도 불편한데 바로바로 해결이 안 되니 답답한 것이다
(그렇다고 어르신 거기서 그러시면 안돼요...)

어쨌든 사람과 고기.
제목을 보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늙어진 뒤 그 무렵 끝에 관해서도 고찰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심각한 영화는 아니므로,
더구나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해 나 자신은 알 수 없기에
그저 "난 가엽게 보고 싶지 않아.
다른 사람 삶을 마음대로 판단해서 동정하고 연민해 보는 건 나쁜 마음이야.
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열심을 살고 보내고 있을 뿐이야."
라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결말만 보면 벌금도 냈어!

결론적으로는 그런 갖은 생각과 혼돈, 감상으로 본 영화였다.
그렇지만 내가 영화를 보고 든 생각들은 대부분 크게 영화 내용과는 상관이 없으므로
이 영화가 감동적인 영화인가? 재미있는 영화인가? 웃긴 영화인가? 슬픈 영화인가? 하고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단지 '아침 햇살은 공평하다.'
좋았던 그 시처럼 그에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폐지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여쭤본 적은 없고 여쭤봐도 실례일 것 같지만 선의라고 했던 선의들이 정말 선의이긴 했던 걸까.
그런데 때로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게 지나친 배려처럼 느껴지지 않아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어떻게든 어렵긴 하다.
자녀들이 잘 보살피고 챙기면 좋을텐데.
하지만 형준이 그랬듯 각 가정의 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노인이란. 노인이란. 노인이란...
할아버지, 할머니. 누군가의 부모. 늙은 사람.
사람은 그대로인데 몸만 늙은 사람. 그래서 신체적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그런데 그것보다는 나보다는 먼저 태어난 사람.
하지만 태어나는 시대는 내가 정할 수 없는 것.
사실 어떻게 정의해도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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