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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책은 왜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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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려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곧 글을 쓴다는 것이고 작가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와 글을 써서 출판하려는 것은 좀 다른 행위다. 글은 누구라도 인터넷에도 쓸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자비로 출판할 수 있는데다 출판이 전보다는 쉬워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글을 써서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렵겠지만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출판사에서도 그 콘텐츠를 책으로 옮기고자 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책을 내서 저자 혹은 작가가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가와 저자는 좀 다른 개념이기는 하다.

 

 

 


누구나 책을 출판해 저자가 될 수는 있지만 소설가 같은 작가가 되지는 못한다. 지칭할 때 저자, 작가 구분 없이 쓰기도 하고 책을 많이 출판했다면 그 또한 작가라고 하기에 어색함이 없지만 소설가와 저자는 독자로서 받아들이기에도 좀 다른 느낌이다. 더구나 여기에서의 '책은 왜 쓸까?'의 물음은 그러한 경우에서의 의문을 뜻하는 것일 뿐이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시대에 글을 쓰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써도 될 텐데 왜 굳이 그것을 책으로 출판하고자 하는 걸까 같은 물음 말이다. 또는 독자 입장에서도 인터넷에서 읽으면 될 텐데 왜 굳이 책으로 보고 싶어하는 걸까 같은 물음 말이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왜 처음에 팩스기가 나온 즉시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또 전자우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된 지금까지도 왜 계속 팩스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컴퓨터에 든 문서를 종이에 인쇄해서 그 종이를 팩스기에 넣고,
다른 장소에 있는 누군가가 팩스기에서 종이를 꺼내어 그것을 읽은 뒤 구겨버리거나,
심지어 그것을 스캔하여 컴퓨터에 다시 비트로 된 파일로 저장하는 사람도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터무니없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해요.

스티븐 핑거, 마음의 과학

 

 

지금도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2012년 책이 출판될 당시도 그랬지만 2022년인 지금도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그로부터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 사이 전자책이 대두되면서 책의 종말이 야기되기도 하고, 인쇄물이 없어질 거라는 등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우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책을 읽을 사람은 읽고, 노트나 메모지에 글을 쓰는 사람은 적는다. 스마트폰이나 PC를 대체할 것은 얼마든지 있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상품으로서도 존재한다.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판매되지도 않았다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주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의 아이들이 쉽게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듯이 인류의 뇌도 서서히 디지털에 맞게 최적화되면 마음도 바뀌고 종이로 이뤄진 것은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는 그 중간, 과도기 즈음 된다고 볼 수 있을까.

 

어쨌거나 현재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왜?
인류의 뇌는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혹은 그런 뇌를 가진 사람들이 아직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역시 후자보다는 전자의 이유로, 여전히 물성으로서 책으로서 만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뇌가 있어 책은 존재한다. 그러한 마음이 있어 사람들은 책을 쓰고 싶어한다. 혹자는 그것을 창의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의 공감각이 책을 원하지 않을 리가 없다. 우리는 웹이라 불리는 가상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닌, 현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잊지만 그 가상의 공간을 창조한 것도 인간이며 디지털 정보의 바탕도 결국은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착각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되지 책은 왜 읽냐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읽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웹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이 10초 남짓이라고 한다. 

 



로젠의 투쟁은 역사가인 데이빗 벨이 2005년 새로운 전자 책 'The Genesis of Napoleonic Propaganda'를 인터넷으로 읽을 당시의 경험과 동일하다. 그는 '뉴 퍼블릭'에 게재한 글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몇 번의 클릭과 함께 글은 예상대로 내 컴퓨터 모니터에 등장했다. 나는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책이 서술 방식이 매우 뛰어난 것은 물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중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알아차렸다. 나는 앞뒤로 스크롤하며 키워드를 찾았고 평소보다 더 자주 커피를 가지러 들락거리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확인하고 책상 서랍의 파일을 다시 정리하느라 독서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다 읽었고, 결국 해냈다는 데 기뻤다. 하지만 일주일 뒤 깨달은 것은 읽은 내용을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웹 페이지의 경우 시선이 머무는 시간을 10초라고 보고했다.
그는 당시 "이용자들은 웹의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가"라고 질문했었다.
답은 간결했다. "읽지 않는다"였다.

 

 

리우는 이 연구 결과가 "디지털 환경은 사람들이 많은 주제를 폭넓게 권장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 방식은 더욱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며 "이는 하이퍼텍스트가 사람들이 깊이 읽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산만하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만약 이 글을 이 웹 페이지 안에서 제대로 읽었다면 누구나 책의 인용된 내용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나 역시 여기(인터넷)에 글을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정독해서 읽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꼭 필요한 정보였거나 읽을 마음이 있어서였거나, 지금 평소와 달리 시간이 부족하지 않거나, 그 읽는 사람(당신)이 특별하기 때문이지 그 이상의 이유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나 또한 검색자의 경험으로 안다.

 

 


그렇다면 자신의 글을 읽게 하기 위해 저자는 책을 쓰고 싶은 걸까. 독자가 책을 사더라도 놔두기만 하고 읽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책은 디지털 정보만큼 휘발적이지는 않다. 제대로만 읽는다면 내가 오래전 저러한 책들을 읽었음에도 그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다시 꺼내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달리 말하면 책으로 습득하는 정보가 장기기억 면에서는 산만하게 읽게 되는 인터넷 정보보다 더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웹이나 영상 등을 이용한 콘텐츠 창작자 또한 언제라도 휘발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소중한 정보를 두기보다 물리적인 책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은 것은 아닐까. 게다가 책은 출판되는 순간 한번 그 가치를 검증받는 셈이기도 하다. 출판사도 아무 글이나 출판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글이 편집자를 거쳐 책으로 독자들에 의해 읽히기 시작하고 알려지면 한 번 더 증명 받는 셈이기도 하다. 독자들 또한 아무 책이나 보지는 않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도 읽는 것만으로 따지면 독자의 충성도가 웹의 단순 검색 사용자보다 더 깊다. 그리고 검색은 단발적인 것에 비해 책은 널리 뻗어나가는 편이기도 하다.

 

 

 


이 즈음에서 정리해보면 책은 왜 쓸까.

1. 뇌가 아직 현재에 최적화되지 못해서. (마음은 종이를 구기고 싶어한다)
2. 디지털 정보보다 책이 더 널리 오래 퍼지고 남겨질 가능성이 있어서.
3. 독자 글 충성도가 인터넷 검색자보다 더 깊어서.

최근에는 수익의 관점에서 책도 하나의 파이프라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디지털 콘텐츠로 만든 자본이 있다면, 또는 부자인 사람이 책을 쓴다면 왜 굳이 책을 쓸까. 시간도 없을 텐데 말이다.
명예나 명성 때문에? 또는 오랜 꿈이어서? 작가라는 호칭을 갖고 싶어서? 혹은 출판사에서 권해서?
네 번째 경우만 제외하고 본다면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사실상 지금은 어떤 곳에 글을 써서 독자나 사용자를 만들든 자본으로 대하면 그 또한 책은 없어도 되는 물건이라면 물건 일 수도 있다. 디지털 정보와 필적하고, 읽는 사람도 없고, 만들어도 팔릴까 말까 한, 그저 기록된 종이 묶음 말이다.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면 명성 있는 부자들은 책을 출판하지 않고 출판한다고 해도 드물다. 그러나 그들이 왜 부자가 되었을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었다.
빌 게이츠

 

부와 성공의 가치를 어떻게 두든 지성이 검색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들도 디지털 정보로 공부해 오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더구나 지금 모든 정보를 인터넷 검색으로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디지털 정보가 책에서 비롯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은 억지임에 분명하다. 현재 그 정보를 남기는 사람들이 책으로 공부해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책은 왜 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는데 책을 읽자 같은 고루한 주장의 글이 된 듯하나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만 찾지 말고 쉽게 얻는 것은 자신에게도 쉽게 잊혀진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모든 배움의 바탕은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리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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