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이 생각만큼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

 

당신이 생각만큼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 앨런 제이콥스

코리아닷컴 출판

How to Think: A Survival Guide for a World at Odds

 

 

'나는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주체는 나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각이란 무엇일까.

책의 설명에 따라 차를 산다고 치자.

"당신은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다. 차를 살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많다. 당신은 연비, 내구성, 안락함, 적재 공간, 좌석 배열, 음향 시스템 등 모든 요소를 감안하려 애쓸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다. 결정 자체가 아니라 결정에 이르는 과정, 고려, 평가 말이다."

이 과정을 봐도 역시 생각은 내가 했다.

그러나 책의 바탕에 깔린 기저는 이러한 듯하다.

 

 

생각은 반드시, 철저히, 멋지게도 사회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당신이 생각만큼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고 알려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생각은 집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차를 생각해 보자.

생각은 내가 했지만 그것을 판단, 사고, 선택, 결정 그 무엇이라 부르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영향(의견)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차를 만드는 과정조차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사람들의 영향(모든 요소들의 결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만 봐도 저자가 책에서 적었듯이 충분히 생각은 독립적이지 못하다.

 

 

옳든 그르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생긴다는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고독하게,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생각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은 좋다, 싫다 같은 감정일 수도, 찬성, 반대 같은 견해일 수도 있다.

폭넓게 보면 책의 내용은 그러한 집단의 찬성, 반대에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앞선 차로 비유하면 (차를 대상으로 그런 일은 잘 없지만) 집단적으로 누군가는 그 차에 찬성하며 호감을 내비치고 열렬한 지지를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집단에서는 그 차에 반대하며 싫다는 감정을 내비치고 열렬한 비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열렬히 대립하며 싸울 수도 있다. 자신 또한 아마 그 분류된 생각들과 감정들 사이에서 어떤 쪽을 결국 선택하기 마련일 것이다.

책에서 적었듯이 어떤 정치인이 경쟁자보다 일을 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믿는 경우, 투표소에 가서 70퍼센트는 그 정치인에게, 30퍼센트는 경쟁자에게 투표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극단적으로 이를 두고 우리는 이분법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실상을 알고 보면 어느 한쪽에 발만 담글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통념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유추 작용은 사고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나 가치 있는 것과 덜 가치 있는 것, 쓸 수 있는 것과 쓸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는 우리는 여러 대상을 '배제'할 이유를 찾는다.
편향, 선입견이 없으면 삶을 헤쳐 나갈 수 없다. 모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 인지적 부담이 너무 커서 마비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분류, 범주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람 또한 그 분류를 따르기 마련이며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뇌 또한 정보 과부하에 걸려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꼭 집단적 사고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믿음과 신념,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또한 그 기저에 깔린 믿음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 생각과 믿음은 태어났을 때부터 나를 길러온 부모로부터 비롯됐을 수도 있고, 자라온 과정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나 사회 환경에 의해 비롯됐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종의 믿음은 집단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그 내부 패거리들 사이에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같은 힘, 같은 권력에 억눌리는 사람들은 때로 자신도 모르게, 원치 않는 방식으로 결속된다.
그들이 바로 내부 패거리다.
내부 패거리의 끌어들이는 힘은 대단히 강력한 부패성을 지닌다. 절대 스스로 사악함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 가운데 10명 중 9명은 악당이 될지 말지 선택하는 순간을 맞을 텐데, 그 순간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커피를 마시며 농담을 나눌 때 사소한 문제인 것처럼 슬쩍 암시가 들어올 겁니다."

잘못된 곳에 소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이 아닌 마음이 닮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에 진정으로 소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생각하고 싶다면 책의 끝에 간단한 체크리스트가 있다.

대강의 이런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발적인 발언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응하기 전에 5분만 생각하라.
논쟁보다 학습을 중시하라. '이기려고 말하지' 말라.
선의와 도덕심을 알리려고 굳이 다른 사람들의 대응에 동참하지 말라.
동참하지 않을 경우 입지를 잃는다면 공동체가 아니라 내부 패거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하기'에 몰입하지 말고 상대의 언어로 상대의 입장을 서술하라.
용기를 가지라.

 

 

결국 요약하면, 나는 생각한다에서의 생각은 독립적이지 못하며 독립적이지 못한 생각은 어떠한 집단에 속한 생각이기 마련이며, 그 집단의 생각에서 상대를 배척하거나 반박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적이 아니다.

 

우리는 환경이나 기질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 뿐이다.
자신은 이런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파장과 맥박에 무관심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는 그 흐름에 휩쓸리기를 조금이라도 주저하는지 여부다.
불쾌한 문화적 타자가 덜 낯설어지고 그에 따라 다소 덜 불쾌해지게 될 때,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운명의 흐름이 달랐다면 나도 얼마든지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인간이므로 인간에 관한 모든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테렌티우스

 

 

흥미로운 점은 늘상 우리는 열린 자세를 논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완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완고하거나 혹은 줏대 없는 양 극단 사이에 적절한 수준의 확고함을 가져야 한다.
양쪽 모두 해당된다는 태평스런 태도는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는 모든 생각을 일일이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매일 뿌리를 파내서 상태를 점검하면 꽃이 오래 살지 못하듯 자신의 모든 생각을 일일이 점검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도덕적 영웅이 되려고 애쓰면 안 된다. 이런 기대는 헛되며, 결국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그보다 자신의 동기를 의심하고 타인의 동기에 관대한 성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의 책의 요지라면 또 요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바르고 그른 생각, 옳고 그른 것이 다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듯 독선적인 생각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광인은 이성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이성 말고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체스터턴

728x90
그리드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럭키 드로우  (0) 2022.05.15
당장 써! CREATE NOW!  (0) 2022.05.13
12 1/2 부와 성공을 부르는 12가지 원칙  (0) 2022.05.06
그림들  (0)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