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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드워드 호퍼와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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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는 심심찮게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글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은 알랭 드 보통이 명석한 철학자임을 증명하듯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억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 자신'을 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사진사가 찍은 인물이 우리 이름을 가진 존재와 어떤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동일시하고자 하는 분위기나 태도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떤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다다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런 그림이 담긴 엽서를 사서 책상 위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기도 한다(내가 호퍼의 그림들을 여러 번 그렇게 했듯이). 

우리는 매일 그 그림을 보면서 그 특질이 조금씩 벗겨져서 우리에게로 오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 그림에서 반기는 것은 제재라기보다는 분위기다. 색과 형태를 통하여 전달되는 감정적 태도다. 

기차를 타고 가다 우리는 순간적이지만 남의 사적인 영역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 기차는 어떤 여자가 부엌 찬장에서 컵을 꺼내는 순간을 보여주었다가, 이어 테라스에서 어떤 남자가 자고 있는 모습을 구경시켜주었다가, 공원에서 누군가가 던진 공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아이의 움직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꿈을 꾸다 보면,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집이 아니다. 

사랑의 한 가지 특징이 외로움의 극복이라면, 지금의 아내와 내가 처음 만난 지 몇 주 안 지났을 때 우리 둘 다 소외된 호퍼적인 공간들, 특히 리틀 셰프 식당을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리틀 셰프는 영국인들에게 미국의 도로변 식당 비슷한 곳이다. 음식이 형편없고 볼썽사나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시정이 넘치는 곳이다. 아내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리 리틀 셰프에 가곤 했다. 장인은 말이 거의 없는 사람으로, 영국식 아침 식사를 주문해놓고 신문을 읽다가 창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기를 좋아했다. 물론 아무 말 없이. 그럼에도 아내에게는 그것이 일상으로부터 탈출, 서퍽의 따분한 시장 도시에서 성장해가며 느끼던 권태로부터 탈출하는 행사로 느껴졌다. 메뉴판은 밝은 색이었다.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저/ 이레 출판

 

어쨌든 그녀의 어떤 분위기 때문에 몇 년 전 맨해튼의 현대미술관에서 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다.
'뉴욕 영화관'(1939)에서 여자 안내원은 전전 시절 영화관의 장식이 화려한 층계 앞에 서 있다. 관객은 어둠침침함 속에 가라 앉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는 노란 빛을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호퍼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은근한 논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매체를 고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함께 흥분하게 만드는 과학기술의 발명품이 타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줄여버렸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위력은  두 가지 관념을 나란히 놓은 데 있다. 하나는 이 여자가 영화보다 더 흥미롭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여자가 영화 때문에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자리에 앉기가 바빠 할리우드에서 보여주는 어떤 인물보다도 공감과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여주인공이 그들 곁에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저/ 은행나무 출판

 

굳이 알랭 드 보통의 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에드워드 호퍼 속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그 그림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일관되게 도시인의 고독, 외로움, 불안, 소외, 쓸쓸함  등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1882년 태생의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미국의 도시를 그린 그림으로 잘 알려진 화가다.

호퍼는 처음에 상업 일러스트레이션과 회화를 공부하고 미술 공부를 위해 유럽에도 다녀왔지만, 사실주의 미술에 매료되어 당시의 유럽 회화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수채화와 판화 작품을 팔기도 하고 전쟁 포스터로 수상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광고미술과 삽화가로 고전했지만 1924년 뉴욕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을 통해 명성을 얻으며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는 주로 미국의 주유소, 레스토랑, 극장, 철도, 거리 풍경과 사람들 또는 바다 풍경 및 시골 풍경 등을  그렸으며 아내인 조세핀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호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뉴욕의 그리니치 애비뉴에 있는 음식점에 다녀온 뒤 이 그림을 그렸다.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왕성히 활동한 에드워드 호퍼는 추상표현주의가 출현하면서 뉴욕 미술계에서 인기를 잃었지만 일관되게 사실주의 양식을 고수하며 1967년에 사망했다.

작품의 명성에 비해 화가 자신에 대해 알려진 바는 드문 듯 하나 그는 자신의 그림에 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오직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에드워드 호퍼​

 

출처 : 네이버영화 (movie.naver.com/셜리에 관한 모든 것/포토)
출처 : SSG 광고 캡처 (company.ssg.com/회사소개/브랜드스토리)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영향은 2013년에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과 2017년 국내 광고 SSG 쓱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때로 "집 벽에다 햇빛을 색칠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에드워드 호퍼답게 그의 그림 속 공 공간에서는 도시인의 고독 외 밝은 빛과 짙은 그림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는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활동하던 화가였다. 그래서인지 그 밝고 풍요로운 시대와 어둡고 침울한 시대를 다 보낸 화가답게 그의 그림은 여전히 현대의 밝고 어두운 도시 속 일상을 불안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에 와닿는 듯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현대 철학자의 눈에 들어온 작품이 하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었는지도 이해가 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설가, 수필가이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며 2008년 영국 런던에 세운 '인생학교'의 교장으로 활동 중이다. 인생학교의 책 또한 국내에 출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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