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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소담출판사 출판

ひとりでカラカサさしてゆく

 

 

오랜만에 볼 수 있었던 에쿠리 가오리 신작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세 노인이 한 호텔에서 함께 죽는 일이 발생하고 그들을 둘러싼 가족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또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간단히 말하면, 죽음과 유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그들이 '죽은 이유'에서 비롯된 사건 위주의 내용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데 읽는 내내 그 인물관계가 잘 그려지지 않아 그 당혹스러움이 실망보다도 컸다. 읽던 중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어볼까도 했지만 끝까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고 결국 정리해서 읽을 만큼의 이야기처럼도 여겨지지 않았다.

하긴 어차피 소설에서도 말했듯이 죽음 그것에 설명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미도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씁쓸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야 비로소 용납되는 일이 있고 미도리는 그것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통감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에는 이유보다는 죽음 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활들이 그려지고 있었고, 그 탓에 살아있던 사람이 이제 여기 없다는 부재 그 자체에 대해 곱씹어볼 수 있는 소설로서 의미가 있었다.

 

정말 죽는다는 것은 뭘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많은 인물은 왜 당혹스러웠던 걸까.

 

불현듯 이 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죽음 역시 당혹스러운 일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죽음은 당사자에게도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말이다.

한 번도 죽음에 관해 그렇게 여겨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소설로서 보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알 것 같다가도 뒷장에 인물관계도 한 장 정도는 정리해서 첨부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일본인의 이름은 친숙하지 않게 읽혀서 이름만 보기에는 성별도 헷갈리는 점도 컸다. 물론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분위기를 띠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제목은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였을까?

대강의 줄거리만 살펴보고 본 책이라 왠지 그 내용은 에쿠니 가오리 답지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점도 컸던 것 같다.

 

여하튼 현실에서도 곁의 죽은 이를 떠올리면 소설의 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는데 소설에도 인물들의 그러한 감정이 잘 나타나 있어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곤란한 건 언제 어느 때 눈물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당에 심은 구근 하나가 올해 처음 꽃을 피운 것을 발견했을 때라든지 슈퍼마켓에서 장을 다 보고 바깥에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을 때 혹은 우연히 탄 택시의 운전기사의 느낌이 좋지 않았을 때 갑자기 세상이 아버지의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감각에 휩싸인다."

 

그처럼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문득 여기 있던 사람이 더 이상 여기 없다고 생각될 때.

그 감각, 기분, 감정.

뭐라 말할 수 없이 알 수 없고 의아하고 묘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또는 죽은 노인들이 젊었을 때를 회상할 때 감정 같은 것. 그 또한 알 것 같다가도 그 나이에 그렇게 스스로 죽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나 역시도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그 죽음을 똑같이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어떤 죽음이든 간 자는 말이 없다는 말처럼, 남아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몫일텐데 말이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다시 또 평소와 같이 이어지는 모두의 삶처럼.

그래도 소설에서 그 인물들의 관계가 조금은 더 살가웠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비슷한 듯 다른 듯 알 것 같다가도 잘 모르겠다.

 

 

"폐를 끼쳐서 미안하네. 고개 숙여 깊이 사과할게.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해도 재미난 인생이었던 것 같아.

다시 만나세. 뭐, 저세상이란 데가 있다면 말이지만."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모든 죽음은 두렵고 슬프고 복잡하고 거기에 이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모두 다시 또 잘 살아가고 있어.

꿋꿋이.

언제 죽을지는 모르나 살아있는 자로서 그 사실을 다시 위안 삼아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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