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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고양이, 그래도 고양이

 

그까짓 고양이 그래도 고양이, 무레 요코

문학사상 출판

 

 

무레 요코 작가는 고양이에 관한 글을 여러 번 썼다.

대부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고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서 유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작가의 아저씨 고양이 부, 차에 태우면 울어대는 친구 고양이 비, 동네 채소 가게의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던 시로, 집사의 눈을 벌려 깨우려는 여왕님 등이었다.

 


 

"아아, 이 얼굴은 어떻게 안 될까?"

양손으로 부의 얼굴을 감싸 안고 주물럭거려봤다. 어릴 때라면 살이 연해서 조금은 교정이 될지도 모른다.

"갸르릉 갸르릉"

얼굴을 주물럭거리는데도 부는 기분이 좋은지 갸르릉거리며 누워서 버둥거렸다.

 

 

부는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면 계단 위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방으로 들어가면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넙적한 얼굴을 내게 비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부를 안으면 몸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갸릉갸릉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이 소리는 서로 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아니면 들을 수 없다.

 

판다처럼 다리를 뻗고 앉아서 뾰로통해서는 자신의 발바닥 빨고 있던 모습, 맛있는 것을 주면 기분 좋아 실눈을 뜨고 "냐옹 냐옹" 울던 소리, 내가 출근할 때 슬픈 건지 외로운 건지 헷갈리게 하던 얼굴. 못생긴 고양이도 표정과 감정이 있다.

 

 

"너 혼자 집 볼 거야? 못 하잖아!"

비가 모리타 씨에게 야단을 맞고 방구석이나 침대 밑에 웅크려 있으면 그런 비를 찾아 케이지에 넣어야 한다.

 

"비야 안전하니까, 그만 좀 울어."

"차 타고 가는 것보다 두 시간이나 쉬지 않고 우는 게 더 힘들지 않니?"

 

별장에서 비는 안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보다 혼자서 마음대로 방을 휘젓고 다니며 뛰어놀았다.

 

"넌 편하게 살아왔으니 가끔은 인생이 쓰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아리즈카 씨에게 야단을 맞으면서도 비는 별장에 있을 때만큼은 느긋하게 지냈다.

 

 

평소에 시로는 안채에서 누워 지낸다. 장수 축하 선물로 아주머니가 작은 보라색 방석을 선물했더니 마음에 드는지 하루 종일 그 위에 누워서 잔다고 한다.

 

할머니인 고양이인 시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동네에 떠도는 소문이라고 한다.

 

어느 날 아주머니와 아들이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곁에는 보라색 방석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시로가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는 동네에 떠도는 소문으로 옮겨갔다.

"떡집 아저씨가 아무래도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 상대는 옆 동네 술집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래."

힐끗 옆을 보니 방금 전까지 자고 있던 시로가 가까이 와서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음, 음 하고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별일 아니라서 금세 잊었는데 그 후 동네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죽은 듯이 자고 있던 시로가 벌떡 일어나 귀를 가까이 대고 듣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아무튼 너무 졸려서 그대로 계속 누워 있었더니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여왕님은 일어나지 않는 나를 보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계속 누워 있었는데, 별안간 내 눈꺼풀 위에 압력이 가해졌다.

깜짝 놀라 눈을 떴더니, 물론 발톱을 세우진 않았지만 여왕님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오른쪽 앞발로 내 왼쪽 눈꺼풀을 억지로 벌리려 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냐아옹 냐아옹."

여왕님은 입을 우물거리며 밥을 달라고 재촉했다.

 


 

어떻게 보면 그 내용들은 팔불출 반려인일 작가가 멋대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레 요코 작가가 말하는 여러 고양이들 이야기를 보자면 정말 동물에게 다정다감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분명 애묘가라면 더더욱 좋아할 책이 틀림없다.

그 외는 새롭게 안 사실인데 일본에는 고양이가 사라지면 도를 닦으러 산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조스케는 팔 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도대체 고양이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지인에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녀는 어릴 때 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내게 해줬다.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는 모두 온타케산에 올라가 수행을 한대."
평소 자신의 품행이나 행동거지가 미숙하다고 생각한 고양이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온타케산에서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너희 고양이도 친구네 고양이도 죽은 게 아니야."
그러면서 친구는 위로를 건넸다. 아마 옛날 사람들은 예뻐하던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 그런 전설을 믿으며 충격을 견뎌냈던 것 같다.

 

강아지가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에는 고양이에게 그런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고양이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쓸쓸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비슷한 맥락에서 책에는 이런 글도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언제 행방불명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양이, 개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도 그들의 짧은 수명 탓에 빠지지 않고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기도 한데 이 책에도 전혀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말을 또 다르게 쓰면 고양이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언제 이별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어 덧붙이면 이것은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사람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경우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 것 같다.

 

우리 집 도라는 자유롭게 바깥을 드나들게 키웠기 때문에 밖에서 죽는 걸 선택한 것 같다.
죽기 전에 인사를 하러 왔지만 도라의 주검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어쩌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쨌든 있던 존재가 갑자기 없어지는 건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디선가 읽기를 사람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에 두려움도 같이 가지는 거라고 했는데 그것을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보면 그 또한 같은 일인 걸까.

 

 

"진짜 자고 있는 건가. 혹시 죽은 건 아니겠지?"
고양이가 자고 있을 때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는데 몸이 살며시 위아래로 달싹여야 마음이 놓였다.

 

 

그 글을 읽으며 괜히 곤히 자고 있는 고양이 아닌, 옆의 강아지를 쿡쿡 찔러 본다.

어느 반려동물이나 기르는 사람에게 그렇겠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우리 강아지는 미래 같은 건 상상하지 않아.

 

 

"입 냄새도 심해지고 이도 다 빠지고, 비실실하다 죽겠지."
아리즈카 씨가 말하자 비는 다시 "오아아앙" 화를 냈다.

 

그렇게 반려묘를 쉬이 놀릴 수 있는 아리즈카 씨처럼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이 너무 무겁고 슬프게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처지는 비슷하니까 사는 동안 사람과 동물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강아지, 고양이 모두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런 마음들에 공감하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좋았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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