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과 순간, 박웅현
인티N
출판사의 책 소개 글
"광고인 박웅현이 6년 만의 신작으로 돌아왔다. 전작 <책은 도끼다> <다시,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에서 책 깊이 읽기의 즐거움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책은 에세이로, 광고인이자 독서인으로서 틈틈이 기록해온 문장과 일상의 단상이 산뜻하게 담겨 있다."
좋았던 글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 날에 수영을 하러 가야겠다고, 산책하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한다.
햇빛이 눈부셔 방아쇠를 당기고, 사형을 선고받고 재판소를 나오면서도 짧은 한 순간 여름 저녁의 냄새와 빛을 느낀다.
그는 햇빛과 공기와 냄새, 색채, 사랑하는 여인에게 닿던 손의 느낌을 '감각'하던 인간이었다.
그렇다. 뫼르소는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감각'하는 인간이었다.
꽃은 백 퍼센트 만개하는 순간,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인간에 빗대어 표현한다면 전성기가 지나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아쉬움에 한숨 지을지도 모르지만 자연은 그저 의연하다.
자연은 그저 제 시기를 따라 피고 지며 흘러간다.
"수십만의 사람들이 좁은 땅덩어리에 모여 자기들이 발 딛고 북적거리던 땅을 망가뜨리려 갖은 애를 써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돌로 땅을 메우고 풀들의 싹을 깨끗이 없애고 석탄과 연기를 뿜어내고 나무를 메고 동물과 새를 전부 몰아내도, 도시의 봄 역시 봄이었다."
-레프 톨스토이, '부활1' 중에서
"오후는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허망한 꿈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자네는 포도알을 입 안에 넣고 으깨어 그 즙을 다 마신 게야."
이 활자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
"그 어떤 신기루도 꿈꾸지 않고 인생의 성숙기라는 길모퉁이를 돌게 되었다"에 이르게 될 테다.
감상
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말이다.
"공중에 흩어지는 말을 붙잡아두는 게 책이다."
생전에 뵀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지금까지 축적해놓기만 한 활자들을 정리해 기록해두는 것은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앞서 저자가 그렇게 써두었듯이 어떠한 명성이나 기대를 걷어내고 보면, 이 책은 한 사람이 영감받은 글을 모으고 그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의 내용은 '감각하는 인간'처럼 그 감각을 전혀 모를 리 없어 공감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다 글이 자연에 대한 찬사, 경탄처럼 읽혀서 작가의 명성으로 봤을 때 살짝 기대에 못 미친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의 나이, 감정, 경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광고인 또는 책은 도끼다로 대중 및 독자에게 유명한 저자가 쓴 새 책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를 많이 덜어내 비움이 많아 보이는 책이라서 아쉬웠다.
어쨌든 감각하는 인간. 그것만큼은 분명히, 선명하게 와 닿아서 좋았다.
그리고 불현듯 읽다가 '삶이 끝났다' 같은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삶이 끝나면 결국 죽음인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고,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괜히 슬퍼졌다.
내 삶은 아직 안 끝났지만 지금 삶이 끝나려고 한다면, 혹은 삶이 끝난 사람이 있다면...
그래, 종종 햇살 보면서 하는 생각인데 삶이 끝나면 나는 그 햇살을 다시 못 본다는 것이 무척 아쉬울 것 같다.
그 햇살이나 바람을 이 공간에서 다시 못 느낀다는 것이 슬플 것 같다.
책에서 이야기한 감각하는 인간으로서.
그러고 보면 그 감각 때문에 자연이 좋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풀면 자연은 왜 이렇게 심심하고 흐리멍덩하고 무디게만 다가오는지...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인데 설명되어지려고 하니 그런 걸까.
책의 글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닌데 그 소재가 나에게는, 공간 아닌 지면에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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