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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꼭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아방

상상출판 출판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의 에세이다.

굳이 앞에 국내라고 적은 건 작가가 필명이라서 누군가 모르고 보면 외국인인지 알 수 도 있을 것 같아서 (나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만큼 작가와 작품에 관한 구체적 정보 없이 읽게 된 책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몰라도 그림을 좋아하면 누구나 좋아하고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대학 가려면 물감 써야 할 텐데."

"물감 안 쓰고 싶어요."

 

상담 선생님은 내가 전문인이 되기 위해 학원에서 배우는 기간은 얼마나 되고, 그러려면 얼마의 돈을 내야 하며, 다 배우고 나면 어떤 종류의 일을 하게 될지 찬찬히 알려줬다. 전문적이기보다는 기계적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학생들의 그림을 쭉 보여줬는데 놀라운 점은, 놀라운 그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전부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은 그림 수십 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림을 배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내 그림이 결국 저렇게 될 거라면 안 배울래.'

 

학원에서는 내가 원하는 그림을 배울 수 없었다. 그 후로 어디 가서 다른 건 배우면 배웠지 그림만큼은 배울 생각이 없었고, 그림은 연습하는 것이지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 멤버 상권이나 나한테 "쌤은 뭘 가르쳐 주진 않잖아요" 라고 스치듯 말했다. 상권이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왜 스친 미술학원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그럴 거면 안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건지. 하고 싶은 대로 못 해서였다. 그냥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건데 이래라저래라 잔말이 많았다.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내버려 두질 않았다. 못 그려도 즐겁게 그리던 마음이 꼬맹이 시절 동네 미술학원과 학교를 거치면서 쪼그라들었다.

 

역시 그림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우면 쪼그라들 뿐이다.

 

고로 나는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럼 우리 멤버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내가 겪은 경험치, 실패를 거듭하며 생긴 노하우다. 멤버들은 눈치 보지 않고 본능에 몸을 맡기는 시간, 자기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돈 내고 산다. 나는 그들이 각기 다른 겉모습과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색깔로 그리는 그림을 보면 즐겁다.

 

역시 남이 보기에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그리 신경 쓸 바가 아니며, 칭찬과 비난 또한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나 자신 있게 '나'를 표현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처럼 작가가 가진 그림에 관한 생각과 고민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기술로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멤버들(수강생)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꼭 좋은 선생님이자 아티스트 그 자체로 보였다.

이런 사람들이 그림을 가르치면 훨씬 더 배우는 사람도 유연하게 사고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이래저래 현재까지도 그림은 국내 '정규교육'에 갇혀있는 듯 해 아쉽다.

 

게다가 대개 우리나라 교육은 미술 뿐 아니라 이걸 하고 저걸 하고 나면 나중에 너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 제도권에 순응해 배우면 정말 교육이 말하는 대로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싫다. 

 

 

저자의 말처럼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잔말이 많고 사람을 쪼그라들게 하는 게 싫다.

그리고 대개 왜 다 뭔가를 배울 때 학원에 가야만 배울 수 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그 제도를 부정하던 사람조차도 후에는 그 제도권 순응해 다 학원에 쪼르르 가는 것도 싫고, 그런 교육이 싫다.

그리고 그걸 배우고 나면 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려 하고 이건 이래서 좋다, 싫다 하는 게 너무 이상하고 모순적으로 여겨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모든 교육은 과정이 있다. 지나고 보면 그게 맞다고 여겨질 때도 많다. 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남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연습해야죠.

진짜 그리고 싶은 게 있으면 연습을 많이 하면 됩니다. 다른 방법은 포기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싶지 않거나 연습할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세요. 욕심내지 말고 자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아요.

 

내 앞에 놓인 물건을, 길에 핀 꽃을 아주 자세히 관찰해본 적이 있나요? 제대로 뜯어본 적이 없다면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그에 대해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 것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있는 그대로 옮기겠다는 생각보다 자기 그림이 어떻게 보이면 좋을지 먼저 상상해 보세요. 사진을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려야 해요. 그다음은 자기 그림만의 매력이 뭔지 생각해 봐요.

 


 

하지만 배우는 과정에서는 잘 납득되지 않을 때가 많으므로 그 과정에서 '쪼그라들게 만드는 교육' 잘 모르겠다. 아니면 배우는 입장에서는 단지 미성숙하게 어려운 단계를 하기 싫으니 제도와 교육을 거부하는 꼴인 걸까.

그러나 누구다 다 처음이 있기 마련이고, 특히 예술은 정답이 없는 것이므로 그 분야에서만큼은 정답을 찾으려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네 그림이니까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하세요."
보통 이렇게 대답했다. 쏘아붙인 건 아니고, 그런 사소한 선택은 취향 차이기 때문에 내가 정해주는 건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일일이 지시하면 그건 내 그림이지, 그의 그림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작가 말처럼 그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자기 그림 좀 예뻐하세요. 자기 그림을 예뻐하지 않으니까 자신이 없는 거라고요. 사랑하는 자식 창피해하는 부모 봤어요?"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지 이런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는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 매번 다르고, 어쩌면 매번 비슷한 결과물이었지만 메시지는 늘 그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에 한 우물을 판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릇을 남의 그릇과 비교하는 게 맞긴 한 걸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잘하고 싶으면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에 앞서 누군가 재능을 운운하거나 혼자 쭈그러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책의 내용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글이고 작가가 '아방이와 얼굴들'이라는 수업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및 그림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적혀 있으니 그림을 좋아하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같이 모여서 그림을 그린다는 일 자체가 이미 재밌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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