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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뇌과학

 

기억의 뇌과학, 리사 제노바

웅직지식하우스 출판

Remember 

 

 

하버드대 신경학박사이자 소설 '스틸 앨리스' 저자가 집필한 기억 및 망각에 관한 책이다.

책 제목만 보면 마치 읽기 어려운 과학서일 것 같지만 기억, 알츠하이머, 망각 등에 관한 내용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쓰여 있어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요근래 자신이 무언가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다거나 알츠하이머에 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책의 내용은 요약하면 간단하다.

기억에 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망각에 관해서는 보관된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자리를 내줘야 할 따름이며 인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알츠하이머는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시냅스에 찌꺼기를 형성하며 시작되고 인지 활동을 한다고 해서 노화에 따른 기억의 망각을 늦출 수는 없다.

뇌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나이가 들면 기억력에 장애가 생긴다.

 

아마 책의 내용이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 뇌가 인지한 바에 따르면 책의 내용들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에 관한 자세한 책의 내용은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 뇌는 애초에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세세한 경험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뇌가 불완전한 것은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출고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듯이 기억을 읽거나 동영상을 재생하듯 기억을 재생할 수는 없다.

우리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지, 동영상처럼 재생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의 인출은 기억의 일부가 자극을 받아, 기억회로의 활성화를 촉발할 때 일어난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디에 저장될까? 기억은 한곳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최초의 경험을 접수한 뇌의 각 부위로 분배된다. 뇌에 담당 부위가 정해져 있는 인지나 운동과는 달리 기억은 저장을 전담하는 신경세포나 기억 피질 같은 것이 따로 없다.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기억은행' 같은 곳에서 기억을 인출해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 기억은행 같은 것은 없다. 장기기억은 뇌의 어느 특정 영역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RI스캐너에 들어간 사람에게 특정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원하는 정보를 찾아 말 그대로 '뇌를 뒤지는' 모습이 관찰된다. 처음에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뇌 여기저기가 활성화된다. 하지만 처음 해당 정보를 학습했을 때 만들어진 활성 패턴과 일치하는 형태의 패턴이 나타나면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피험자는 "기억났어요!"라고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경험한 일 대부분을 내일이면 잊는다. 결국 인생 대부분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뇌는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도록 진화했다. 의미가 없으면 잊는다.

 

 

안경을 못 찾아서 답답해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기억 때문이 아니다.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기억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안경을 잃어버린 이유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다(그리고 안경은 아마 머리에 쓰고 있을 것이다!).

 

뇌는 기억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주의가 분산되어 있다면 기억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힘들다. 강력하고 정확한 기억을 심기 위해서는 주의가 하나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뇌가 어떤 정보를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그 정보는 한시적인 작업기억에서 벗어나 해마로 전달되고 강화 과정을 거쳐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학습하고 떠올려야 한다. 새로운 정보를 효과적으로 학습하려면 습득하려는 정보에 뇌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물론, 학습한 정보를 반복해서 꺼내야 한다.

 

신체기능을 요구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더 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고, 뇌의 더 많은 부분이 해당 근육기억에 할당된다는 이야기다. 무엇이든 반복하면 뇌는 달라지고, 뇌가 달라지면 몸을 움직이는 방식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특정 신체기능을 다른 사람보다 잘해낼 수 있는 뇌와 몸을 타고난다. 하지만 뭐든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의식적이고 집중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반복은 근육기억을 숙달하는 데 필수적이다.

 

오늘 경험하고 배운 것을 내일이면 잊을 것인가, 세세한 추억과 지식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간직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의 기억은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동시에 허점투성이인 채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에 장애가 생긴다. 알츠하이머병이 공격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해마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분자 영역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아직 논의 단계이긴 하지만, 대다수 신경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병이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시냅스에 찌꺼기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활발한 인지 활동이 알츠하이머병에 강한 뇌를 만드는 데 유용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노화에 따른 기억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예방하거나 늦춘다는 것을 입증할 확실한 데이터는 없다.

뛰어난 체스 선수, 교수, 비행사, 의사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 모두 계속 뇌를 '사용하는' 사람들조차 기억을 인출하는 기능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억의 기능이 나이와 함께 저하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한 기억이라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40세를 넘은 뇌라면 지금이라도 아밀로이드 찌꺼기가 쌓여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내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시던 순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4년간 자신만을 돌보던 딸 메리를 자신이 온정을 베풀어 집에 들인 노숙자라고 생각했다.

건조기 작동법도 기억나지 않았고, 옷장에서 마른 옷을 꺼내 입으면 된다는 새로운 계획으로 사고를 전환할 수도 없었던 그렉은 그냥 젖은 옷을 입고 나왔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아니라면, 배우자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기만 했어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렉의 경우는 내 말을 귀 기울여 열심히 듣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일이 어렵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기억을 만들어야 할 해마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기억소실은 광범위하고, 치명적이고, 비극적이며, 결코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 아니다. 새로운 신경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알츠하이머병에 저항할 힘이 있는 뇌를 만드는 인지자극이란 피아노를 배우고, 새 친구를 사귀고, 안 가본 도시를 여행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설단현상은 찾고 있는 단어와 연관된 신경세포들이 일부만 활성화되거나 약하게 활성화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저 여자 이름이 뭐더라? L로 시작하는 것은 확실한데 그다음을 모르겠네. 신경활성화가 추가로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거기서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비슷한 사례는 이 밖에도 수없이 많고, 대개는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들이다. 기억인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흔한 대상이 이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도 매주 여러 차례의 설단현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 기억손실, 알츠하이머병, 노화, 죽음이 아직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생각나지 않던 단어는 언젠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잠시도 그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면, 검색을 하면 된다.

토니 소프라노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을 검색해본다고 해서 내 기억력이 약해지는 일은 절대 없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 힘으로 기억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써봐야 기억력이 좋아지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기억력을 위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산드라 블록과 풋볼 선수가 나오는 그 영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건 내버려두면 저절로 떠오른다. 아니면 검색만 해도 당장 알 수 있다.

1센트짜리 동전에 숫자가 앞면에 있는지 뒷면에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런 세세한 것까지 신경 안 쓰고도 지금껏 잘 살았다.

혹시라도 다음번에 유명한 서퍼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거나 마트에 갔다가 우유를 깜빡하고 사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느긋하게 마음먹길 바란다.

 

누구나 잊어버린다. 잊어버린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도 의미 있는 것만 남기고 모두 잊어버리길 바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질까? 오랜 시간 활성화되지 않은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고 말까, 아니면 어떤 경우든 흔적을 남길까?

 

기억은 결국 희미해진다. 사용하지도 반복하지도 않고, 큰 의미도 없다면 대부분의 기억은 재빨리 사라진다.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점점 줄어든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뇌에 겨우 저장한 정보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계속 활성화하라.

 


 

그렇다면 만약 망각이 불완전한 뇌의 기본 옵션이라면 어떤 날들은 왜 기억에 남는 걸까.

정말 책에서 예로 든 "그 초여름 밤 생각나? 굴이랑 스모어를 먹으면서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들었잖아. 애들이 해변에서 축구를 했는데 막내 수지가 해파리에 쏘였었지" 라는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 기억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 하나하나는 우리의 경험에 대응하여 뇌가 물리적으로 영구적인 변화를 겪음으로써 만들어진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고, 오늘을 경험하지 않은 어제의 내가 또 다른 하루를 경험한 내가 되었다. 이제 오늘 있었던 일을 내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뇌가 변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변할까? 우선 우리는 경험 가운데 감각, 감정, 사실 등을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낀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초여름 저녁 좋아하는 해변에 친한 친구들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러 가지 광경 중에서도 아이들이 해변에서 축구를 하고 하늘이 석양에 근사하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가장 좋아하던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가 휴대용 스피커에서 들려온다. 딸이 울면서 달려오더니 빨갛게 부어오른 발목을 가리킨다. 해파리에 쏘였다. 다행히 한 친구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는지 작은 병에 연육제를 담아 왔다. 연육제를 잘 개어 발목에 발라주니 아픔은 거의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이거 정말 효과가 있다). 나는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 향기와 모닥불의 연기 냄새를 맡는다. 톡 쏘는 맛의 차가운 화이트 와인, 신선한 바다를 머금은 굴, 찐득하고 달콤한 스모어를 맛본다. 행복을 느낀다.

 

아이들이 축구하는 모습은 레이디 가가나 해파리 또는 굴의 향과 아무 연관이 없지만, 이 찰나의 개별적인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 뒤 하나의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으려면, 즉 "그 초여름 밤 생각나? 굴이랑 스모어를 먹으면서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들었잖아. 애들이 해변에서 축구를 했는데 막내 수지가 해파리에 쏘였었지"라는 기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험에 대응해 서로 무관하게 일어나던 신경 활동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후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 구조가 변화하면서 이 패턴은 지속성을 갖게 된다. 이제 새로 형성된 신경회로가 점화되면 영구적으로 달라진 신경 배선과 연결 구조를 재경험, 즉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이 기억이다."

 


 

즉 어떤 날의 기억은 평소와 다르고, 처음 겪은 새로운 경험이고, 공감적이고, 연결되는 것이 많고, 행복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기억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떠올리려는 것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스트레스는 뇌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그러므로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의 내용처럼 스마트폰과 구글 등의 검색을 이용하는 게 낫다. 메모나 기기, 또는 맥락에 의지한다고 해서 기억에 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전문가이자 인공지능 시리의 공동 개발자인 톰 그루버는 "기억을 외부장치로 확장한다고 해서 기억을 잃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기억의 기능 중 많은 부분을 스마트폰과 나누어 수행하고 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는 원하는 정보를 인출하기 위한 대체 경로일 뿐이다." 그는 말한다.

 

어차피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우리는 기억을 오로지 뇌에만 의지해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점점 기기에 의지해 갈수록 사람들은 산만해지고, 부주의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책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원래 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망각 또한 기억처럼 우리 뇌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럽게도 여겨졌다.

물론 지금 나에게 중요한 정보는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면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니 잊혀진 정보는 나에게 불필요한 정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알츠하이머에 관해서라면 지금 겪고 있을 사람들과 언젠가 내가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두렵고 슬프지만 어쩌면 "우리의 뇌가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지금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가장 적합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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