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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유성호

21세기북스 출판

 

 

법의학자가 쓴 죽음에 관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관한 책도 즐겨보고 거부감 없이 보는 편인데 법의학자가 쓴 책이므로 죽음에 관한 사유보다 검시, 부검 등에 관해 적혀있길 바랐는데 그렇지는 않은 책이라 아쉬웠다.

즉 저자도 적었듯이 이 책에서는 법의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는 않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일부 부검한 사연들이 적혀있긴 했지만 그런 내용들만 계속 이어졌어도 또 읽기는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통해서는 흔히 죽음 하면 자연사, 사고사만 떠올리게 되는데 사망의 종류는 다양하며 그 원인을 결정하는 일 또한 알고 보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망 원인은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인 구체적 개념으로 의학적으로 검토되고 과학적으로 타당한 결정이어야 한다. 특히 법의학적으로는 사망 원인의 결정에 죽음에 대한 법적 책임의 유무 또는 책임의 경중 등이 걸려 있어 매우 중요하다.

 

사망 원인은 의사의 진단명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암이다, 간암이다 하는 것은 사망 원인이다. 추락사로 사망했으면 그것이 사망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망 종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연사, 즉 병사다. 두 번째는 외인사, 즉 외적 원인에 의한 사망이고, 여기에는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한 불상不詳이 포함된다. 우선 자연사 또는 병사는 이해하기 쉽다. 의사가 "돌아가셨습니다" 하고 말하면 의사에 따른 질병명이 병의 원인인 것이고 병사에 의한 사망이 되는 것이다.

 

사망 종류는 앞서 언급했듯 크게 자연사, 즉 병사와 외인사(자살, 타살, 사고사) 그리고 불상으로 나뉜다.

 

물에서 건져낸 주검을 의학적이나 과학적으로 검사해 사망 원인이 익사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스스로 투신했다면 자살일 것이고, 술에 취한 채 수영하다가 익사했다면 사고사이며, 강제로 물을 먹여 죽였다면 타살이다.

한편 수영 중에 심근경색의 발작이 있어 그 때문에 익사했다면 병사일 것이다. 높은 곳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사망 원인과 사망 종류를 결정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의학의 한 분야인 법의학은 입법, 사법, 행정에 모두 적용되며 그중 사법의 형사상 문제에 가장 많이 활용되며 법의학자는 법원, 검찰, 경찰, 보험 회사로부터 자문을 의뢰받아 사망의 원인을 판단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학이 말하는 신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일까.

일부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된다.

 


 

사람의 몸은 특수한 기능과 특징을 갖도록 다양하게 발달하는 분화의 과정을 거친 약 400조 개의 무수히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분화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같은 종류의 세포는 모여 '조직'을 만드는데, 조직은 체내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몇몇 조직이 모여 '장기'를 이룬다. 이른바 간, 심장, 폐, 콩팥, 위는 장기의 이름이며, 장기는 특유한 형태와 독자적인 기능을 가진다.

다시 여러 장기 가운데 가깝거나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것들이 서로 연결되거나 서로 의존해 '계통'을 이룬다. 그리고 계통을 이룬 모든 장기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인체라는 독특한 틀 안에 조립되어 하나의 개체를 만든다.

 

순차적으로 주요 장기인 순환계통, 호흡계통, 중추신경계통의 심장, 폐, 뇌 특히 뇌간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불가역적으로 기능을 멈추면 개체는 반드시 생명 활동을 영구히 종지하게 되는데 이를 장기사라 한다.

장기사는 심장의 박동이 종지해 결국 개체가 죽는 심장사, 호흡 정지가 먼저 나타나는 폐사, 뇌 특히 뇌간의 기능이 종지하는 뇌사로 다시 분류하기도 한다. 이 중 심장사와 폐사는 오래전부터 죽음의 정의로서 사용되어 '심장이 멈추었다' '숨을 거두다'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이렇게 장기가 사망하면 그다음에 세포들이 사망하게 된다. 심장이 멈췄다고 해서 세포가 바로 다 죽는 것은 아니라서 사망 직후에는 각막이라든지 뼈를 이식할 수 있다.

 

의사들이 임상에서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죽음의 판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흡계통 기능의 정지, 순환계통 기능의 정지, 중추신경계통 기능의 정지

 

이러한 장기가 불가역적으로 정지하면 개체로서 생명 활동은 필연적으로 종지하는데 이를 개체사라 한다. 이러한 개체의 죽음은 바로 한 개인의 죽음으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사망을 일컫는다. 이렇게 사망 판정을 받은 후 동사무소나 지방자치단체에 가서 사망 진단서나 시체 검안서를 내면 사망자의 모든 권리와 의무는 사라지게 되고 사망자로 확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 사망 진단서나 시체 검안서는 대법원과 통계청으로 간다. 대법원에서는 가족 관계를 정리하게 되고 통계청에서는 사망 원인을 조사함으로써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기초 자료로 쓴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스스로 대비하지 못하고 죽는 일이 많고, 그 이후의 일은 유가족의 몫으로 남겨져 알 수 없기 마련인데 한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과정을 보니 인간으로서의 기록도 정말 종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게 되든 끝내 죽어야 하는 인생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마치 죽음은 병원의 일로 남겨두고 사는 동안은 죽음을 회피하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지는 않나 보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중요하고 죽음 또한 삶처럼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마무리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그런데 아무리 직업이더라도 매주 죽은 사람을 만나러 가면 무섭지 않을까.

역시 관념적으로 사유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죽음은 쉽지 않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체의 수명이 다한 것일텐데 죽음은 너무 인간에게 가져가는 게 많아서일까.

꿈, 계획, 미래, 후회, 살면서 못해본 일 같은 것들.

그럴수록 하루도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의 노인 된 삶도, 내일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래서 노인까지 살아냈다는 것은 실로 존경스러운 일일 수 있다.

흔히 누구나 오래 살면 노인이 된다고 여기겠지만 노인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책은 법의학보다는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에 더 가까워 나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고 할 수 있지만 죽음에 관해 의학적으로 알고 사유해보고자 한다면 읽기에 나쁘지 않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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