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유유히 출판
작가가 쓴 작가 생활과 출판계, 문학 등에 관한 글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연재칼럼을 엮은 책인 듯한데 나로서는 모든 글은 처음 읽는 것이고, 평소 작가와 출판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인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 당연히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름의 작가라 그렇지 않을 리 없지만 이 책에서도 그렇게 느껴지는 점이 많아서 좋았다.
이를테면 레지던스와 하루키의 관한 글에서.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특히 나처럼 자가용이 없는 저탄소 뚜벅이에게) 엄청난 이점임을 알게 됐다. 갈 곳이 없으니 딴 마음을 먹지 못한다. 구내식당에서 주는 밥을 규칙적으로 먹으며 오전에도 쓰고 오후에도 쓰고 저녁에도 쓴다. 너무 심심해서 냉장고에 캔 맥주를 쟁여놓고 밤에 혼자 마시기는 한다.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서 사 온다.
심지어 방에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도 장점으로 드러났다. 방이 달아오르기 전에 옷을 차려입고 걸어서 2분 정도 걸리는 도서관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 거리가 절묘하다. 오가는 길이 피곤하지는 않지만, 심리적 장벽은 되어준다. 이래서 작업실을 마련하는구나. 집필실을 구하는 작가들을 한때나마 우습게 여겼던 자신을 반성한다.
37세의 촉망받는 소설가였던 그는 갑자기 일본을 떠나 그리스와 이탈리아, 영국에서 3년을 살았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 가서 원고를 파고들었고, 그렇게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를 완성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완전히 다른 작가가 되어 있었다.
당장 나더러 그런 결행을 하라면 무서워서 못 한다.
그러다 잊히는 거 아닐까?
3년 동안 매달리면 과연 목표로 삼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간신히 다 썼는데 그게 망하면 어떡해?
37세에서 40세 사이에 하루키에게 일어난 일을 나는 혼자 '퀀텀 점프'라고 부른다.
가끔 작가도 양자처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도약한다.
그때 그 안팎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외부인은 잘 알 수 없다. 누구나 그렇게 도약할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가야 할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위험하고 위태롭긴 하지만 거기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려준다.
'자신 있는 나만의 요리'에 대해 잡지에 에세이 100편을 실어봤자 문호가 되지는 못한다고. 선택을 해야 한다고.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깨달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린다.
비단 그 글만 그랬던 것은 아니나 유독 왜 저 글에서 그런 인상과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읽던 순간 건너가는 작가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지고, 좋아하는 하루키에 관한 글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하고 흐릿한 적과 작가들의 공부'에 관한 글도 그랬고, 문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 느껴진 글들도 좋았다.
한국의 치킨집 매장이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수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빵 집도 이만큼은 아니지만 매장이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중 한 분은 바로 이웃 빵집 주인과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밤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가게에 돌을 던져 창문을 깨고 싶은 충동도 몇 번 느꼈다고 합니다.
옆집 가게 주인을 타자화하는 대신 '왜 한 동네에 이렇게 빵집이 많은가, 왜 갑자기 중장년층이 너도나도 빵집을 열게 되었는가'를 궁금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나 산업구조, 고용 시장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그런 질문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침대에 누워, 또는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각각 소설을 씁니다. 그 소설들은 자기변명이라는 목적을 완전히 털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저자이자 독자인 두 등장인물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강하게 드러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소설을 쓰고 읽을수록 '도대체 뭐가 잘못됐지?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자문하게 될 겁니다. 저는 이것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내용은 나는 독자를 보았다, 작가님, 이 작품의 의도는 무엇인가요, 작가님은 이 글을 못 읽으시겠지만, 표지 정하기, 제목 정하기 등의 목차에서 알 수 있듯 평소 독자로서 작가에게 궁금해할 내용들이 한가득 적혀 있어 좋았고, 출판계에 관한 내용 또한 현실적으로 적혀 있어 좋았다.
정작 소설로는 많이 읽지 않아서 잘 모르나 생각해 보면 이런 글은 장강명 작가라서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놀라운 면이 세 가지 있었다.
작가는 천 페이지도 넘는 책도 읽는다는 것.
작가는 글 쓰기가 싫으면 하루에 책을 세 권도 읽는다는 것.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몇 권 팔렸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
600페이지만 넘어가도 두껍다 느끼고, 많이 읽으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 작가는 작가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하물며 출판계의 이런저런 점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졌지만 작가들조차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잘 모른다니! 게다가 장강명 작가도 그랬다니.
그 이후 개선된 점도 있는 듯 보이나 요즘 같은 때에 그럴 수가 있다니! 하고 놀라운 사실이다.
모두 무언가를 파는 세상에서 단지 파는 것이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관행처럼 출판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나 보다. 또 판매부수를 부풀려 마케팅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점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봐왔던 많은 책들이 몇 만부 팔렸다는 사실도 사실이 아닐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긴 제대로 집계가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면 그것 또한 퉁쳐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정작 작가의 소설은 거의 못 읽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느 시점부터 소설은 잘 안 읽게 됐다.
나도 내가 어떤 이야기를 읽고 싶은건지 파악이 안 되기는 하는데, 소설은 읽고 싶어 찾아보면 죄다 국내나 해외나 추리, 스릴러, 범죄 그런 장르뿐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런 편견이 생겨 더 안 찾아보게 됐다.
그렇게 소설은 나와 점점 멀어졌다.
작가는 책에서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또는 유명한 작가의 책만 읽는 건 적절한 추천을 받지 못해서라고도 했다.
그래도 나는 베스트셀러 위주보다는 우연히 알게 된 줄거리나 한 두 문장에 관심이 가면 그 책의 독서가 시작되는 편이긴 한데, 정말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소설이 좋아서를 보며 한국소설을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소설. 그 문학의 인상이나 분위기나 한국 작가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재미있게 읽은 책도 있고 작가들이 그 나라의 문화나 사회 배경을 삼는 것도 당연하지만, 유독 한국소설에는 현실을 반영하고, 무겁고, 사회적이고... 그런 나만의 편견이 있다. 그 탓에 손이 잘 안 간다.
그래서 장강명 작가의 소설도 읽으려고 시도는 해 봤는데 못 읽은 게 많다. 미뤄뒀다고 해야 하는 게 좀 더 맞을 것 같다.
한국 작가들은 열심히 쓰는데 이런 한국독자는 반성해야 할까.
어차피 많이 읽지는 않지만 단지 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한국소설을 말해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취향이 아니라서 못 읽는다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작가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넓은 의미에서 재미있다. 글도 빼어나다.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에게 호감인데, 표지와 제목도 호감이다.
'내용보다 외양에 더 쉽게 굴복' 할 수 있는 나는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좋았다.(사진의 출처가 궁금하다)
편집자의 제목 후보 중 하나였던 '소설가와 회색 양말'(어쩐지 하루키스럽다)이었어도 개인적으로 호감이었을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런 완벽한 제목이 또 어디 있나 싶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는 "난 지금 장강명을 읽고 있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은 작가다. 아마 겸손의 표현들이었겠지만,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작가는 작가의 스타일이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가 되길 희망하거나 작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무릇 글을 쓰고자 한다면 좋은 글을 읽어야 하고, 작가 지망생이라면 소설가에게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당연히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 보기에도 이 책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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