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안톤 숄츠
문학수첩 출판
한국에서 살고 있는 독일인 저널리스트가 쓴 한국에 관한 책이다.
삶을 모험적으로 살아가고 열린 태도를 가진 듯한 저자의 모습이 글에서 느껴져 좋았다.
그러나 책에서 저자가 짚은 한국 사회 모습은 누구나 한국인으로서도 공감하며 다 아는 모습이기도 했다.
즉, 그 말은 냉철하게 관찰하고 분석한 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는 뜻도 된다.
더러 어떤 글들은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공정과 워라밸을 말한 글들이 그랬다.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자기 입장에서 따져보면 손해를 본 것이고, 불공정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당연하게도, 스펙을 쌓느라 책상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취준생들은 몇 년 전 인천항공사의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을 때 청와대 청원 게시판까지 찾아가 불만을 토해냈다. 당연하게도, 영혼을 끌어모아 내 집 마련을 한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들이 국민주택의 특별공급 대상자가 된다는 제도에 항의했다. 나처럼 공부해서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면 정규직으로 채용될 자격이 없고, 나처럼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도 집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
이들에게 공정은 딱 자신을 위한 장치이다.
같은 상황에서 입장이 뒤바뀐다면 "누군가의 공정을 해치는 일이니 나는 거절하고 비정규직으로 남겠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외침이 나에게 불공정할 바에야 모두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마음을 담은 일은 고용주나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다.
"마음을 주라고? 회사는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데, 왜 나만 마음을 줘?"
내 말에 이렇게 항변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상사를 무조건 참으며 일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에게 주어지고 맡은 일을 하게 되면 그런 태도로 임하라는 이야기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잘해주면 나도 잘해줄게' 하는 마음은 논리적으로 그럴싸해 보이고, 서로 손해 없는 거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꽃은 꽃향기를 내뿜을 때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할 일에 마음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대상을 가릴 필요는 없다.
워라밸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열심히 일하는 순간도, 삶을 만끽하는 순간도 모두 내 인생이다.
물론 누군가(한국인)는 이러한 글들조차 편안하게 읽히거나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인, 한국사회라고 하기에는 두리뭉실하게 읽힌 면이 커서 좀 더 직설적으로 썼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글을 바라고 읽은 거라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너희 나라는 이런 점이 문제야라고 혹독하게 말한들 그 사회에서 한 개인이 벗어날 수 있을까.
게다가 책의 내용도 행복은 내 안에 있다 같은 메시지로 요약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 누군가의 말로 모두가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면 세상은 불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끝내 바람은 가질 수 있지만 현실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왜 안 바뀔까.
저자는 교육을 말한 내용에서 이렇게 적기도 했다.
정말 마음이 아픈 것은 이처럼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빼앗으며 이토록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이는데도 결과가 너무도 시시하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투자를 정당화해 주는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
공부에 쏟아붓는 셀 수 없는 시간과 돈을 생각한다면, 한국의 대학가는 수많은 천재가 활보해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결과는 초라하다.
결국 시험을 거쳐서 남는 것은 별로 없다. 가르치는 방법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험을 통과하고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면 과연 그 교육이 얼마나 유효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교육 시스템을 바꾸자고 하면 말이 달라진다. 여러 말들이 있지만 속내는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바뀌더라도 내 아이가 지금까지 한 건 인정받아야 돼. 내 아이가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바꾸자. 지금까지 투자한 걸 손해 볼 순 없어."
이런 태도는 님비 현상과 비슷하다. 녹색 에너지는 좋아하지만 우리 집 근처에 풍력발전소가 세워지는 건 반대하고, 외국 노동자들이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는 건 싫고, 장애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근처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는 건 내키지 않는 것과 같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않는 것, 이런 자세 때문에 변화는 더디다.
덕분에 시스템은 꿈쩍않고 유지된다.
어쩌면 이게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한국이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라고 본다.
즉 내가 지금까지 한 건, 나의 노력은, 나의 성취와 성공은 인정받아야 해. 혹은 나만 아니면 돼.
물론 어느 개인의 성취로 보면 노력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받는 건 마땅하다. 하지만 때로 그르게 보이는 시스템 안에서 이뤄낸 성취가 정말 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종국에는 이런 시스템을 만든 이를 탓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역사적으로 교육이 그래왔다고 해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들이, 이룬 자들이 그것을 놓으려고 할지가 의문이다.
오히려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것 속에서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하며 물질적인 것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 것이 한국사회다.
그래서 좋은 직업, 좋은 집, 좋은 차 등에 행복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만다. 그런 알 수 없는 굳건한 믿음과 시스템이 함께 존재한다.
게다가 혼자 행복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옆의 불행한 이들이 결국 행복한 사람도 끌어내릴 것이기에.
그건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런지 한국만 그런지 알 수 없는 일이나 그건 또 왜 그렇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역시 나는 사회의 피해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생각인 걸까.
어쨌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행동은 소용 없을지 몰라도 이런 사회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적어도 책에서 저자는 그런 자세와 취지를 가진 듯이도 보인다. 당연히 어떤 나라에서 살든 삶은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적은 글을 끝으로 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나는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고요. 여행은커녕 취직도 쉽지 않아요. 결혼은 애초에 포기했단 말입니다."
이러한 말 또한 사실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커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소유한 게 별로 없고, 이루어질 게 별로 없으면 포기하기도 쉬워요. 포기하는 게 어렵지 않으면 상황을 더 빨리 바꿀 수 있습니다."
'포기하는 게 어렵지 않으면 상황을 더 빨리 바꿀 수 있다.'
이 말을 크게 다르게 빗대면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은 안 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모두가 공정하게, 또는 다 가질 수는 없을 텐데.
마찬가지로 내가 삶에서 무엇을 쥐고 있든 타인에게도 그것을 놓으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러한 어떤 합의들은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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