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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입니다 출근은 안 합니다

 

디자이너입니다 출근은 안 합니다, 최인호

밀리의 서재

 

 

전자책 서비스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는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인 책이다.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책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1인 기업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이 읽으면 그 시작에 앞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고, 실무 디자이너로서 읽어봐도 미약하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독립한 이후 삼성물산, 교보문고, 한국전력,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 다양한 분야의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비주얼 콘텐츠를 컨설팅 및 디자인"하고 있다.

 

책의 내용 중에서는 출근은 창의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로 여겨보지 않아서인지 출근에 관한 저자의 관점이 기억에 남았다.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디자인의 원천은 크리에이티브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니 크리에이티브도 9시에 발현되기 시작해 6시에 딱 멈춰야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 디자이너나 예술가, 음악가, 발명가들의 크리에이티브가 일반 회사원들과 똑같은 시간에 나올 거라는 발상이 과연 온당할까?

 

디자이너에게 크리에이티브는 정말 중요하다. 아이디어가 없으면 디자인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디자이너들은 오늘도, 지금도, 나오지 않는 크리에이티브를 탓하며 눈이 빠져라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다. 의미 없는 핀터레스트, 레퍼런스 사이트 서핑으로 하루를 소모하기도 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 동안 얼마나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이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으로 출근한다. 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커피와 같은 점심을 먹으며 일을 한다. 이런 습관적이고 획일화된 환경에서 어떤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혼자 일하며 다양한 근무 환경에 대한 실험을 해보고 있다. 회사 다니듯이 사무실을 임대해 매일 아침 출근해보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일해보기도 하고, 카페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집에서 일해보기도 했다.

이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적어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의 출근은 크리에이티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디자이너는 직업의 특성상 '결과물'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시각 디자이너는 비주얼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제품 디자이너는 멋진 시제품을 만들어낸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기발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만 만들어내면 그 디자이너는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9시에 출근을 하든 오후 5시에 출근을 하든 결과물에 대한 퀄리티만 보장되면 되는 것 아닌가? 9시에 출근해 6시에 결과물을 만들어낸 디자이너는 일을 열심히 한 것이고, 5시에 출근해 6시에 결과물을 만들어낸 디자이너는 일을 대충 한 것인가?

근무 태도라는 꼰대 같은 단어 말고 이제 좀 쿨해지면 안 될까?

 


 

그런데 그 거창한 생각(?)에 한편으로는 크리에이티브가 별 거인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디자이너는 출근하지 않더라도 클라이언트는 출근하는 삶을 산다. 그러므로 그 무엇을 하든 대표, 사장, 자영업자라면 고객, 손님, 소비자의 입장에 맞춰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1인 기업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디자이너의 본질이 디자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고객이 있어야 디자인도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디자인의 본질은 고객 만족이 아닐까?

 

 

어쨌든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것은 출근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오롯이 모든 것을 한 기업의 대표로서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이고, 그 누구도 언젠가는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는 하다.

 


 

우리는 왜 회사를 그만두지 못할까?

대답은 대개 이것이다. "사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첫 번째 답변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삶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건데, 나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그럼 지금 당신의 삶은 안정적인가?"

 

디자이너에게는 수명이라는 것이 있어 나이가 들거나 머리가 굳으면 이 전쟁터에서 퇴장(혹은 퇴출)하게 된다. 하지만 국내에 있는 수많은 디자인 대학에서 매년 2.5만 명의 신규 디자이너를 이 전쟁터로 내보내고 있다. 전쟁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통계에 따르면 국내 디자이너의 근속 연수는 4.31년이다.(2012년 기준, 통계청, 2012년 이후는 조사 없음.) 물론 평균이긴 하지만 매우 충격적인 수치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유명무실해진 사회이긴 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애초에 상관없는 말인 듯하다.

최소 5~6년, 길게는 10년 넘게 준비해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4년 남짓 일하고 퇴사나 이직을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다. 당장 내일 아침에 내가 다니던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

대기업은 안정적인가? 일반 기업보다 더 효율을 따지는 게 대기업이다. 오늘 이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 내일은 저 회사가 구조조정을 한다. 명예퇴직 신청하라는 메일이 하루아침에 날아온다. 진행하던 사업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제일 먼저 쳐내는 게 홍보 계열과 디자인 계열이다.

회사에게 디자이너는 싼 가격에 언제든 새로 찾을 수 있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아직도 내 밥통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퇴사 이후의 삶이 아름다운 꽃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퇴사 이전의 현실도 어차피 꽃길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거의 알 법한 이야기로 평이하게 읽혀서 다소 아쉬웠던 디자인에 관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

브런치 출판 책이나 글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브런치북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작' 그 느낌 그대로.

 

 

 

그래도 프리랜서 디자이너, 1인 디자인 기업에 관심 있다면 무던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므로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다면 한번쯤 읽어보기에 나쁘지 않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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