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이즈 하드, 키어런 세티야
민음사 출판
Life is Hard
삶에서 그 누구나 겪기 마련인 질병, 외로움, 상실, 실패, 불공정, 부조리, 희망 등을 철학으로 살펴보는 책이다.
누구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시련들이 있다. 외로움, 질병, 상실의 고통, 실패, 부조리... 이런 고난들과 함께 우리는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 키어런 세티야는 인간이 살아가며 시련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좌절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흔히들 사는 건 고되다고 하는데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지금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동시에 다시금 그 시련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장애와 외로움에 관한 내용이 그렇다.
좋은 것을 빼앗기면 불행한 것 아닌가?
실제로 좋은 삶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이며 불완전하다.
그 속에 좋은 것들이 있지만 많은 게 빠져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삶을 더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라파엘 전파의 미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울타리 치는 법을 모른다고 해도 내 삶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나의 삶은 이미 풍성하기 때문이다.
실없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신체장애가 일반적으로 잘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다.
장애는 우리가 소중한 일을 행할 수 없게 만들므로 어떤 면에서는 유해하다. 그러나 어차피 소중한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러 가지 좋은 것들에서 소외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대부분의 장애에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보다 결코 나쁘지 않은, 때로는 더 나은 삶의 가치가 충분히 남아 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두려움과 편견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유의미한 증언을 통해 얻은 믿음인가?
통증은 그 자체로 나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좋은 것을 얻거나 누릴 수 없게 만든다.
건강할 때 우리가 육체를 이런 식으로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육체를 통해 감각'함으로써 우리가 교류하는 사물과 사람들을 직접 인식하는데, 그 교류에 쓰이는 복잡한 육체적 도구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육체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수록 육체는 사라져 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된다. 자기 자신을 자신의 육체가 아닌 뭔지 모를 무형의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통증은 우리에게 인간의 유형성, 즉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대개 통증이 사라지면 육체는 더 이상 주의를 끌지 못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아픈 사람만 외로운 것도 아니다. 외로움은 전반적인 사회적인 문제이며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 겪는 시련이다.
나는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무렵에 철학자가 되었다. 텅 빈 운동장에서 그 외로움에 관한 시를 끄적이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나를 철학적으로 만든 건 외로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이감과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근심이었다.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
"세상이 '무'이더라도 자네는 여전히 투덜거릴 걸세!"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불행이나 악에 다르게 반응하는 건 새로울 게 없는 사실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모순적이게도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 길의 핵심은 우리가 그들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그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냥 받아들인다.
인간은 사회적 필요와 씨름하며 사는 존재다.
어쨌거나 각자가 정의하는 행복이 무엇이든 행복하게만 사는 사람은 없다.
또 성공만 하는 사람도 없고 실패만 하는 사람도 없다.
시련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왜 힘들고 고되냐고 묻는다면 책에 적혀 있던 글대로 "삶은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그냥 사는 것이다"인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다 해서 삶이 더 불행한 것도 아니고, 고통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꼭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상실의 슬픔은 잘못이 아니며, 상실의 슬픔이 누그러지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삶은 "절정에 이를 때까지 고조되고 긴장이 계속되는" 서사가 아니다.
일의 성취와 완수가 전부도 아니다.
정의에 대한 책무는 비난에 근거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할 만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부조리하지 않고 희망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누구나 알 법한 내용들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읽으면 조금이나마 위안과 도움이 될 책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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